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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교회 - 권력에 중독된 한국 기독교 내부 탐사』의 저자인 김지방 기자는 어린 시절부터 보수 기독교회에서 자랐고, 대학시절 진보적인 기독학생운동 단체에서 활동하다가 현재는 기독교계 신문인 <국민일보>에서 일하고 있다. 저자의 신분과 부제가 말해주듯 이 책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독자적인 권력을 창출하려고 시도하는 한국 기독교회의 실태를 탐사 보도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주제가 명확하고, 내용을 끌어가는 방식이 기자의 문장답게 매우 간결하고 힘이 있다. 이전에 출간되었던 혹은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태를 전후해 출간된, 한국의 기독교 교회를 비판하는 여러 책들도 각각의 장점이 있지만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 학문적인 차원이나 추상적인 이데올로기 비판을 대신해 '좀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비판을 가하고 있는 점이다. 한국교회 내부에서 자각과 반성이 나오길 기대하는 마음에서 저술했다는 저자는 오랫동안 기독교 신자로서, 취재현장에서 실제로 접했던 교회 내부의 실상과 모순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면서도 따스한 시선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2007년 여름, 우리는 분당 샘물교회 선교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세력에 의해 납치된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정부의 사전 경고조차 무시하고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이슬람 국가에서의 선교활동을 감행한 신도와 교회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비난여론이 빗발쳤다. 이와 유사한 납치 사건들이 발생할 때마다 강력한 민족주의와 인정주의로 무장한 여론의 지지를 받아왔던 전례와 비춰봤을 때 다소 이해가 안 될 만큼 격렬한 비난이 쏟아졌던 이유는 무엇일까. 두 명의 인질이 살해되는 와중에도“이보다 더한 희생이 있더라도 앞으로 이슬람지역에 선교단을 계속 보내겠다”는 샘물교회 담임목사의 발언이 기름을 부은 탓일까. 딸이 인질로 잡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일을 진행시키고 결과를 내실 것인지에 기대가 크고 참 신나고 재미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동영상이 공개된 탓일까.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와 관련해서 탈레반에게 막대한 금품을 제공했다는 의혹 때문일까, 아니면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테러단체와 협상했기 때문에 국익에 보탬이 안 된다는 판단을 내린 탓일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그동안 우리 사회 구성원의 20%를 차지하는 한국의 개신교회가 국민 대중에게 보여 왔던 모든 행태들이 이번 사건을 통해 한 눈에 드러나는 최악의 결과를 빚은 탓일 것이다. 작게는 주일 날 아침 도로를 막고 주차해있는 교회 신도들의 불법 주차 차량부터 꿀 같은 주말 아침을 깨우는 초인종 벨 소리의 주인공들, 숨 막히는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울려 퍼지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협박인지 저주인지 알 수 없는 일방적인 외침이 우리 사회의 대중이 가지고 있는 개신교에 대한 이미지로 자리매김한지 오래 되었다. 간간이 들려오는 목회자들의 대를 이은 교회 세습이나 매매, 여성 신자들에 대한 성폭행과 불륜 뉴스가 한국 교회 대부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대중이 접하는 한국 개신교회의 이미지 중 중요한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 앞에서 내가 어리둥절했던 이유 중 하나는 그간 내가 접하고 알아왔던 뉴스 이미지 속에서 샘물교회는 그나마 말이 통하는 교회이고, 목회자였다는 것이다. 그 정도가 저 지경인데, 말이 안 되고,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나머지 교회들은 어느 정도일까. 그리고 이제 한국의 보수파 개신교회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장로님 대통령이 10년 만에 재탄생되었다. 과연 우리는 이런 상황을 예수님 탄생처럼 함께 기뻐할 수 있을까?
지난번에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말했다가 이방 종교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았지만, 우리는 모두 '장로님이 역시 장로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이 어른이 큰 일을 한다면 우리나라 어떻게 될 것인가를 꿈만 꿔도 행복합니다. -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 <본문> 246쪽
교회와 정치 - 정교 분리
유신독재와 전두환 독재정권 아래에서 비폭력적인 양심과 신앙을 지녔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미친 트럭 운전사가 인도로 차를 몰고 가면서 수많은 생명을 죽일 때 교회는 그들의 장례식을 치르기만 할 것인가, 아니면 그 트럭 운전사를 당장 끌어내어 무고한 시민들을 죽음에서 구할 것인가?”라는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의 질문과 마주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변은 영화 <미션>에서 ‘가브리엘’과 ‘로드리고’라는 두 명의 신부가 보여준 행동이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교회 본래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에 치중할 것인가 아니면 예수가 교회에 부여한 목자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현실정치에 개입할 것인가의 문제는 교회가 오랫동안 고민해온 근원적인 질문이다.
그러나 ‘정교분리’의 원칙이 현실정치 공간 속에 제도적으로 구현되기 시작한 근대 이전의 역사 속에서 종교, 특히 기독교와 정치는 예수 이래 언제나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정식으로 인정한 이후 피핀이 이탈리아 로마 인근의 토지를 교황령으로 지정해 교회에 헌납하는 순간에도 교회는 정치권력과 밀접한 연관을 맺었고, 때로는 종교권력 자신이 정치권력을 행사했다. 루터와 캘빈에 의한 종교개혁도 다른 의미에서 살피자면 가톨릭교회가 종교정치를 통해 세속화되어 부패했던 결과 기독교 내부에서 벌어진 일종의 정신적 / 종교적 쇄신 운동이었다. 개신교회는 이때의 역사적 경험을 중요한 원칙으로 삼아 정치권력과 종교권력 사이의 상호견제와 균형을 매우 중요한 가치로 인식했다.
역사 속에서 교회는 언제나 각각의 교회가 처한 정치적 현실과 지역적인 특성에 따라 정치권력과 독특한 관계를 형성해왔다. 유럽의 개신교회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상호견제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면, 미국의 개신교회는 종교전쟁과 억압의 과정에서 억압받았던 개신교도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체득한 그들만의 복음주의 신앙을 고수해왔다. 한국 개신교회의 모태가 미국이었다는 점, 이후 대한민국의 건국과 발전 과정에서 미국의 역할이 지대했던 것을 생각하면 한국 개신교회가 미국 개신교회(기독교 복음주의)와 유사한 특성을 지니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늘날 기독교 복음주의(evangelicalism)는 종종 기독교 우파의 다른 이름으로 동일시되지만 복음주의는 하나의 종교적 태도를 의미하고, 비록 기독교 우파의 정치적 태도를 결정하는 뿌리와 인적 구성은 겹치더라도 정치적 지향을 갖는 일종의 정치세력이란 점에서는 구분될 필요가 있다.
미국의 복음주의적 전통
미국의 건국 시조들이 종교적 억압을 피해 이주한 청교도들이었다는 점에서 미국의 건국 과정과 이후 발전 과정에서 기독교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그동안 우리가 접해온 미국의 대중문화들을 통해서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1910년대에 이르러 종교적 자유주의가 미국 사회에서도 성장하면서 기독교 복음주의는 기독교 근본주의로 회귀하면서 성서를 인간에 대한 신의 계시로 파악하는 성서주의(성서의 무오류성), 복음전도의 행동주의,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처녀 탄생, 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 성서에 기록된 기적들의 실재성, 예수가 재림해서 천년왕국이 시작된다는 천년왕국설을 강조하는 특성을 지니게 된다.
해리슨 포드 주연의 1985년 영화 <위트니스(Witness)>에서는 미국의 근본주의 기독교도(재침례파)들이 형성한 ‘아미슈’ 공동체를 묘사하고 있는데, 이처럼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는 전통적으로 교회와 세속의 관계를 동일한 연속선상에서 파악하여 문명과 역사의 발전에 대해 ‘비순응주의’적 태도를 지녀왔다. 기독교 근본주의 운동은 신정정치의 환상이 깨지면서 미국의 세속화, 자유주의라는 사회적 변화를 전통적 가치의 위기와 붕괴로 받아들였고, 이 같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자신만의 공동체를 구축하는 분리주의자 운동으로 발전했다. 아미슈 공동체는 18세기 산업혁명 이전 유럽의 농촌 풍경을 연상하게 하는데, 종교적 자유를 위해 투쟁했던 18세기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의 ‘최소한의 정부가 가장 좋은 정부’라는 정치철학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즉, 정부의 역할은 시장과 사회에 대한 간섭이 아니라 사회의 도덕성을 배양시키는데 있으며, 모든 성공적인 사회는 이 같은 공통의 전제 속에 형성되었다는 믿음이 미국 기독교 우파의 사상적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비순응주의, 분리주의라는 복음주의적 전통 속에 있던 기독교 우파가 정치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은 1940년대부터 신학적 자유주의가 교단에 널리 퍼지면서 신흥교단이 성장하고, 1960년대 미국 사회에서 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급진적 평등주의와 개인주의가 사회에 널리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기독교 우파는 이것을 가족과 공동체라는 기독교의 전통적 가치를 훼손하는 사회적 위기의 징후라고 판단하여 보수 우파인 공화당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기독교 복음주의 운동은 일종의 종교적 근본주의로 최근에는 스스로 ‘복음주의’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고 자신들을 ‘고전적 기독교인(Classic Christians)’, ‘역사적 정통 그리스도인(historic orthodox Christian)’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을 만큼 ‘정통주의’에 집착한다. 미국의 기독교 우파 운동의 지지를 받아 탄생한 부시 정권의 독트린들이 펼치는 수사와 세계관, 정책들이 ‘악의 축’과 같은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분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기독교 우파는 공화당 내에서 그들이 지지할 만한 마땅한 후보를 찾지 못해(동성결혼, 낙태, 불치병 치료를 위한 줄기세포 연구와 같은 사회정책상의 윤리적 기준과 도덕적 가치관의 문제) 자체적으로 제3의 독자후보를 출마시키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한국개신교회의 정체성
2002년 가을부터 2003년 봄까지 시청 앞 광장 대중 집회에서 몇 차례 강한 반공 설교를 했어요. 조용기 목사와 같이 했지요. 가장 큰 이슈가 친북 반미 세력 척결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였어요. 여중생 사망 사건으로 촛불 시위가 벌어지면서 반미 감정이 고조되자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려 했어요. 그걸 우리가 막은 겁니다.
나는 이북에서 살다 온 사람이기 때문에 공산주의 사상과 그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아요. 원래 북한에 교회가 더 많았어요. 그런데 공산당이 집권해 다 파괴했거든요. 예수 믿는 사람은 거의 다 잡혀 죽거나 남한으로 넘어왔죠. 공산주의는 무신론이고 교회말살론이죠. 노무현 정부나 김대중 정부가 싫다기보다는 이 나라가 공산화되면 우리가 예수를 못 믿고 다 죽게 되기 때문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한 겁니다. … <중략> … 이건 좌파 사상을 가진 정권이 교회를 파괴하려는 음모에서 비롯된 거예요. 전에는 없었어요. 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일어난 일이지 공산주의는 기독교를 가장 미워합니다. - <본문> 108 ~109쪽
이 말은 지난 2007년 7월호 신동아에 실린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이다.
조선 땅에 종교의 자유를 확보하는 방안으로 조선을 청나라에 병합하거나 아니면 서양 군함이 들어와 무력시위를 벌여야한다고 주장했던 황사영의 백서 사건이 보여주는 것처럼 초기 가톨릭 신자들에게 프랑스가 신앙적 조국으로 간주되었다면, 19세기 말 처음 전래되기 시작한 한국 개신교회의 역사 속에서 미국 역시 그렇게 간주되었다.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한 아프리카의 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그들(선교사)이 처음 올 때 우리는 성경과 십자가만 빼놓고 모든 걸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이 빈손으로 들어와 우리에게 십자가와 성경을 전해준 뒤 우리들에겐 빈손과 십자가 그리고 성경만 남았다.” 고종이 을사늑약으로 조선의 국권을 빼앗기기 전에 헐버트 박사를 미국의 시오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밀사로 파견했던 것은 당시까지만 해도 미국이 강대국이지만 식민지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다른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과 달리 양심적인 국가로 전해진 덕분이었다. 당시 조선의 백성들이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는 기독교도가 되었던 것은 예수가 ‘유일신’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가 다른 귀신들보다 강력한 힘을 지녔다고 믿었고, 아무런 조건 없이 조선에 와서 서구 선진의학과 교육을 베풀어 주는 미국이라는 선한 강대국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가렴주구와 일본의 침탈이 극심했던 시대, 특히 서북지역에서 기독교가 적극적으로 수용된 까닭은 이 지역이 홍경래의 난 이후 조선의 전통적인 통치전략 속에서 천시 받았기 때문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기독교도가 된다는 것은 전통적인 신분계급의 억압, 봉건적인 질서 속에서 서구 신문물과 근대화된 교육의 혜택을 받고, 통치체제로부터 정치적, 정신적 보호막을 얻는 효과를 주었다. 초기 한국 개신교의 주요한 지역적 토대는 서북지역이었고, 근대의 혜택을 먼저 받았던 서북지역의 민족자본이 출자해 만든 신문이 바로 <조선일보>다. 분단 이후 ‘문전옥답(門前沃畓)’에 성씨가 새겨진 밥주발을 깊숙이 묻어두고 도망치듯 피난해야 했던 대다수 피난민들은 남한 사회에서 다시 교회를 중심으로 뭉쳤고, 이들은 한국전쟁을 통해 남한을 더 이상 피난할 수 없는 마지막 방주로, 그 같은 방주를 지켜준 미국을 구세주로 경험한다.
교회의 권력과 권력의 교회
1872년 프로이센의 철혈수상 비스마르크는 제국통일(帝國統一)이라는 당면한 정치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시 반정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가톨릭정당인 중앙당 세력을 억제할 필요를 느꼈다. 비스마르크는 1871년의 교단조항(敎壇條項)에 이어 1872년 1월 학교감독법안을 성립시키고, 교육을 교회로부터 국가로 이전하도록 강제했다. 이때 국가와 교회 사이에서 교육을 놓고 벌어진 투쟁을 가리켜 ‘문화투쟁(Kulturkampf)’라고 부른다. 교육을 통한 헤게모니 재생산 구조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를 놓고 국가주의 세력과 교회세력 간의 투쟁은 당시 독일 내에서 사회주의 세력의 급성장이라는 공동의 위기 앞에서야 종식될 수 있었다. 양대 세력은 반가톨릭적인 법안들을 폐지하는 대신 국가에 의한 교육관리가 확립되었고, 반정부적인 입장을 취했던 중앙당과도 유화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독일 통일사업의 전개에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종교개혁의 고향이자, 치열한 종교전쟁을 경험했던 독일교회의 전통 속에서 정교분리가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매김하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독일 교회 역시 메시아적인 통치자의 위치에 올라섰던 아돌프 히틀러 앞에 스스로 무릎을 꿇으며 국가기독교로 이용당했다. 당시 독일 그리스도인 연맹은 “그리스도는 히틀러를 통해 우리에게 오셨다”며 히틀러와 국가사회주의 이념을 찬양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이런 시대의 광기에 맞서 싸우며 우리들에게 앞서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2007년 3월 3일 <국민일보>에는 보수교단 중 하나인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의 총회장인 이정익 목사의 인터뷰가 실렸다. 그는 “80년대 신군부 등장 때 아현교회의 40대 젊은 목회자로서 침묵했던 것은 나의 안녕과 편안함만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고백하면서 행동하는 신학을 강조한 본회퍼의 <죽음 앞에서>를 읽은 뒤 설교와 삶을 통해 교회와 교단의 역할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뒤 이정익 목사는 그 같은 깨달음과 뉘우침을 통해 '사학법 재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목사는 “사학법 재개정을 위해 적극 나서고 사회 문제 해결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불의에 침묵했던 지난날을 교단과 함께 반성하고 성결교회의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는 의지의 결과”라고 밝혔다. - <본문> 46쪽
저자는 “이정익 목사가 말한 사회 참여는 과거에 대한 회개와 사학법 재개정, 북한 교회 재건”이라면서 이것은 “보수교회가 사회 참여의 필요성을 적극 인정”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실천에서는 여전히 보수적인 테두리에 머물러 있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일반 독자인 내 입장에서 보자면 이건 말 그대로 ‘말할 길이 끊어졌다’는 뜻에서의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정치도 신앙의 영역이라는 것을 깨달았단 점은 인정할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본래의 뜻은 아전인수 격으로 변질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가장 필요할 때, 가장 필요한 곳에 있지 않았던 교회가 정작 자신들의 사적인 이익을 지키기 위해 나서면서 본회퍼를 인용하는 것은 진실한 반성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일이기 때문이다. 그간 한국의 개신교회는 독재 권력과 타협하거나 의지하여 교회의 양적 성장, 외연 확대에만 치중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는데, 이제는 직접 권력 창출에까지 힘을 쏟고 있다.
교회와 정치의 완전한 분리는 신정정치의 환상만큼이나 비현실적이다. 세속권력(국가와 정치)은 언제라도 인간의 영적 세계를 책임지고 있는 교회를 이용하고자 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권력의 추구라는 정치의 목적은 교회의 목적과 합치될 수 있는가, 교회는 정치가 추구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가, 교회는 정치권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교회공동체를 보호할 수 있는가? 지금 한국 개신교회의 상황으로 보았을 때, 교회 지도자들의 정치참여는 이번 대선으로 한정시켜 그칠 일로 보이지 않는다. 자연인으로서의 개인과 교회의 목회자, 지도자로서의 개인이 분리되지 않는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는 교회지도자들의 정치 참여는 역사가 보여주듯 교회와 교회 공동체는 물론 때때로 인류의 재앙으로 나타났다. 교회의 정치참여는 자기애적인 이익추구가 아닌 사회가 추구해야 할 공동선을 추구하는 한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와 교회공동체가 더 이상 목회자 개인의 사유재산이 아닌 스스로 공동체성과 민주성을 회복하는 절차적 민주주의부터 시행하는 자기구제의 방도를 강구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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