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미디어 시대, 문학 창작과 향유 방식의 변화
전성원(계간 황해문화 편집장 ‧ 성공회대 교양학부 겸임교수)
1.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뉴미디어(New media)’ 그런데 과연 뉴미디어란 무엇일까? 뉴미디어, 멀티미디어, 디지털미디어, 인터랙티브미디어, 사이버미디어, 온라인미디어 등등 뉴미디어의 여러 속성과 특징에 따라 다양한 용어들이 혼종되거나 현재도 경합을 벌이는 중이지만, 이 글에선 편의상 “정보ㆍ통신 기술의 발달로 지금까지 독립적으로 기능해 온 여러 가지 미디어가 디지털화하여 복합적 기능을 갖게 된 것”이란 의미에서 ‘뉴(매스커뮤니케이션)미디어’로 통칭하도록 하겠다.
그리스는 로마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로마제국은 그리스의 철학과 문화에 종속되었다. 그 증거 중 하나가 우리가 그리스・로마신화라고 부르는 신화의 세계이다. 제우스(Zeus)는 유피테르(Jupiter)로, 아프로디테(Aphrodite)는 베누스(Venus)가 되어 로마의 수많은 신들 중 하나가 되었지만, 유일하게 로마신화에만 나오고 그리스신화에는 나오지 않는 신이 있다. 바로 문(門)의 수호신인 야누스(Janus)다. 고대 로마인들은 문에 앞뒤가 없다고 생각하여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으며, 때로 미술 작품에서는 4개의 얼굴을 가진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하였다. 야누스 신은 집이나 도시의 출입구 등 주로 문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하였는데, 문은 시작을 나타내므로 모든 사물과 계절의 시초를 주관하는 신으로 숭배되었다. 영어에서 1월을 뜻하는 ‘재뉴어리(January)’는 ‘야누스의 달’을 뜻하는 라틴어 ‘야누아리우스(Januarius)’에서 유래했다.
야누스는 모든 종교의식에서 여러 신들 가운데 가장 먼저 제물을 받았다는 점만 보더라도 야누스 신은 새로운 시작(New)을 알리는 신이었다. 로마 중심부에는 야누스 신전이 있었는데, 이 신전의 문은 평화로울 때에는 닫혀 있고, 전쟁 중에는 열려 있었다고 한다. 끊임없이 팽창해갔던 로마제국의 속성상 전쟁이 끊일 사이가 없었던 탓에 누마와 아우구스투스가 통치할 때에는 단 한 번만 닫혀 있었다고 한다. 전쟁의 신 아레스(Ares)가 따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야누스 신전의 문이 열려 있을 때가 전쟁의 시대였을까? 그것은 아마도 야누스가 지닌 두 얼굴, 새로움과 더불어 혼돈(chaos)의 시대를 상징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옥중수고』에서 “위기는 바로 오래된 것은 죽어가고 있으나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못한 시기이다. 이러한 공백기에 대단히 다양한 병적 증상들이 나타난다.”라고 했는데, 그런 의미에 가장 잘 부합되는 존재가 바로 ‘야누스’였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만약 ‘뉴미디어(New media)’의 신화에도 수호신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야누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디어란 인간 사회에서 자신의 의사나 감정 또는 객관적 정보를 서로 주고받을 수 있도록 마련된 수단(매개)을 가리키는 말로 한정되어 있었지만, 오늘날 뉴미디어의 등장과 매스미디어의 보급이 가장 중요한 현대사회의 특징으로 부각된 이후 미디어는 나와 타자, 나와 세계를 연결해주는 매개 수단인 문(門)을 넘어 인간이 사는 사회 전체를 통괄하고 제어하는 기능까지 담당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지구상에 생명체가 등장한 것이 40억 년 전이고, 인류가 직립보행을 한 것이 356만 년 전, 석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260만 년 전이며, 불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140만 년 전의 일이다. 인류에게 ‘문화의 시작(Anno Zero)’이라고 할 수 있는 매장문화가 시작된 것이 30만 년 전의 일이며, 문학이 시작될 수 있는 원천인 문자가 탄생한 것이 3200년 전, 알파벳은 기원전 1700년경에 처음 등장했다. 인류 역사를 이와 같은 원근법(遠近法)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15세기의 인쇄혁명은 ‘문자의 발명(the invention of writing)’이 일어나고 1700여 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구텐베르크 인쇄혁명이 일으킨 충격으로 중세가 막을 내리고 근대가 시작되었다. 인쇄혁명이 이끈 문화적 충격과 변화는 인류에게 너무나 큰 것이었기 때문에 이를 일러 ‘구텐베르크 은하계’라고 부르기도 했다. 앞서 장황하게 살펴본 인류사의 중대한 변화들은 장구한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점차 변화의 간격이 짧아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20세기 말에 등장한 인터넷과 디지털, 뉴미디어는 반세기가 흐르기도 전에 우리 삶의 곳곳을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뜨리고 있다.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빠른 변화는 뉴미디어의 보급이 문학의 위기를 초래하였다고 진단하게 만들었다. 과거 문학이 담당했던 정보와 오락 기능을 뉴미디어가 대체함으로써 현대인들의 문학에 대한 외면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관점이 그것이며, 디지털 기기들의 편리함 때문에 사람들이 점차 기계의 노예로 종속되어가고 있다는 디지털 디스토피아의 전망 또한 이것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이와 같은 새로운 미디어의 보급 덕분에 문학이 과거 ‘종이로 만든 책(book)’이라는 저장물의 형태만 달라질 뿐 매체를 달리해가며 지속될 것이며 도리어 새로운 방행의 가능성과 만나게 될 것이라 예측하기도 한다.
과연 문학은 뉴미디어 시대를 만나 위기에 빠진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동안 잠시 겪고 있는 일시적 혼란에 불과한 것을 두고 호들갑을 떠는 중일까? 과연 ‘뉴미디어 시대’의 문학이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뉴미디어 문학’이란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등 다양한 의문과 질문들이 혼재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것은 뉴미디어의 등장이 ‘문학은 언어의 예술’이란 기본 속성과 정의에 영향을 줄 것인가? 다시 말해 ‘문학의 위기’를 초래할 것인가란 의문이자 문학이 종이란 매체에 기록되기 이전에도 이미 구전(口傳), 나무, 돌, 조개껍질, 파피루스, 양피지 등에 기록되어 왔던 것처럼 “문학은 언어의 예술”이라는 기본 속성을 바꾸지 않는 방식의 변화, 단지 언어의 새로운 저장장치로서의 뉴미디어에 국한된 변화일까를 묻는 일이 될 것이다. 이제부터 뉴미디어가 지닌 야누스적 속성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오늘날 우리 문학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 현실과 새로운 가능성으로서, 창작과 향유 방식의 다양화에 대해 모색해보고자 한다.
2. 뉴미디어 시대의 문학은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확장된 우주’인가, ‘블랙홀’인가?
우리나라에서 뉴미디어 문학의 맹아는 1990년을 전후해 PC통신과 더불어 출현했다. 대개 무명의 아마추어 작가들에 의해 PC통신망의 동호회 게시판(BBS)에 연재물 형식으로 게재되었던 소설들을 일러 ‘PC통신문학’ PC통신문학이란 명칭 이외에도 ‘통신문학’, ‘PC 문학’, ‘컴퓨터 통신문학’, ‘사이버문학’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지만, 현재 인터넷을 기반으로 발표되고 있는 ‘웹소설’ 등 ‘디지털문학’과 구분하기 위해 ‘PC통신문학’으로 통칭하며 인터넷 기반의 문학은 편의상 ‘뉴미디어 문학’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이라고 불렀던 것이 그 시초라 할 수 있다. 당시 PC통신망은 지금의 인터넷과 달리 운영하는 기업들(예를 들어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등)에 따라 공유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되는 일종의 CUG(Closed User Group)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PC통신 천리안이 1990년을 전후하여 시범서비스를 개시할 무렵, 이성수의 「아틀란티스 광시곡」, 방재희의 「사형수」, 남인환의 「모성」 등의 작품이 연재되기 시작하면서 이후 PC통신문학은 1992년 하이텔, 1994년 나우누리, 1996년 유니텔 등 새롭게 PC통신 서비스사업을 개시한 통신망의 주요 콘텐츠가 되었다. 초기에는 SF과학소설이 중심이었으나 점차 추리소설, 로맨스소설 등 다양한 분야로 영역이 확장되었고, 시와 수필을 쓰는 작가들까지 합세하면서 점차 하나의 독특한 문학현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PC통신문학이 지닌 열린 가능성의 세계는 그동안 등단이라는 엄숙한 진입장벽의 문 앞에서 돌아섰던 일련의 새로운 작가들을 문단에 수혈하는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PC통신문학이 대중으로부터 각광을 받게 되자 기존 문단은 이들 가운데 일부를 수용해 정식 작품을 출간하기도 했고, 반대로 통신망 기업들이 문단의 대표적인 작가들을 초빙하는 형태의 교류를 통해 장르문학에 치중되어 있던 PC통신문학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PC통신문학은 점차 새로운 작가들의 등용문으로 부각되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인물들이 현재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송경아, 김영하 등이다. 이들은 PC통신문학을 통해 이름을 얻은 뒤 기성문단으로 영역을 넓혀가는 데 성공한 대표적인 작가들이었다. 그런가 하면 반대로 기성문단 출신의 작가가 PC통신문학으로 영역을 넓혀간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1992년 하이텔에 복거일이 「파란 달 아래」를 연재했던 것인데, 이후 한수산, 주인석, 이순원, 박상우, 윤대녕, 하재봉 등이 이런 흐름에 동참했다.
또한 천리안과 나우누리에서는 ‘릴레이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출현시키기도 했다. 전문 추리작가가 등장인물과 기본 구도만 설정하고, 나머지는 독자들이 자유롭게 줄거리를 이어가는 형식의 집단창작 형태를 띤 글쓰기였다. PC통신문학은 ‘등단’이라는 문학의 장벽을 완전히 무시한 새로운 형태의 작가 만들기 프로젝트로서의 역할도 일정하게 수행하였다. 1995년에는 PC통신문학이 방송의 영역에까지 진출했다. SBS는 PC통신을 통해 연재되었던 하민의 『아프로디테의 아이들』을 16부작 미니시리즈로 방영했다. 그러나 PC통신문학을 주도한 것은 그동안 주류문학에서 외면되어 왔던, 심지어는 대중으로부터도 특별한 각광을 받지 못했던 판타지 문학이었다. 1993년 7월부터 하이텔문학관의 ‘납량특집’으로 연재되었던 이우혁의 『퇴마록』은 이후 2001년에 이르기까지 국내편, 세계편, 혼세편, 말세편에 이르는 4개의 시리즈, 총 19권 구성으로 출간되어 모두 1백만 부 이상 팔리는 성과를 거두면서 영화화되기도 했다. 이후 1997년 10월부터 하이텔 게시판에 연재되었던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 역시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모두 12권의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고, 머드게임과 만화 등 멀티미디어의 콘텐츠로 활용되었다.
비록 PC통신은 인터넷이 본격화되기 직전 과도기적인 통신 서비스로 잠시 존재했다가 채 10년을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지만, PC통신문학은 앞으로 도래할 뉴미디어 시대의 개막과 특징 대부분을 보여주는 중요한 전주곡이었다.
1990년대 말 인터넷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하면서 PC통신시장은 사라지게 되었다. 인터넷이 우리 일상생활에 들어오고 불과 20여 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지만, 인터넷이 초래한 변화의 급물살은 현대 대중의 삶과 존재 방식 전반을 바꾸어 놓았다. 특히 인터넷은 가장 효율적인 의사소통 수단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여러 매스커뮤니케이션 매체들을 위협하며 새로운 변화를 추동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은 문학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PC통신문학 시절부터 시작된 뉴미디어 문학의 출현은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
1) ‘작가’와 ‘작가’, ‘작가’와 ‘독자’ 사이의 경계 허물기 - 진입장벽의 약화
구텐베르크 인쇄 이후 저자의 권위는 점차 강화되어 갔다. 인쇄술의 등장 이전까지 책(문학)이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처럼 구전에 의해 전승되는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이들의 집단창작 과정이 반복적으로 수행되어 오늘날의 정전으로 구축되었다. 중세 시대까지 책은 필경사의 수고를 거쳐 일일이 손에서 손으로 옮겨지는 것이었기 때문에 필경의 과정에서 윤문이나 내용의 부분적 삭제, 개작 등이 이루어졌다. 단적인 예를 들어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의 경우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였기 때문에 무려 120여 종의 필사본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인쇄술의 발전으로 저자가 집필한 문학작품은 더 이상 수정이나 윤문 등의 개작을 행하기 어려운 체제가 되었다.
또한 인쇄술을 통해 ‘책’이 일부 부유한 귀족들이나 고위사제들만이 소장할 수 있는 ‘보물’에서 대중의 ‘문화상품’으로 변모하게 되면서 성공한 책들은 높은 수익을 얻었고, 작가의 권리는 훨씬 널리 인정받았다. 1750년대가 되자 독지가들이 작가들을 후원하는 관행은 사실상 중단되었다. 새뮤얼 존슨 같은 작가는 “우리는 후원에서 졸업했다” 브리태니커 편찬위원회 지음, 『근대의 탄생』, 아고라, 2014, 160쪽.
고 말했다. 이처럼 작가들이 미술이나 음악 같은 다른 분야의 예술종사자들에 비해 일찌감치 경제적 독립을 성취할 수 있었던 까닭은 인쇄술의 발달로 책이 상품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독지가의 빈자리에 일반대중이 들어섰고, 작가의 경제적 독립은 귀족이나 교회에 종속되지 않은 지식인으로서의 독자적인 권위를 부여했다. 인쇄술과 1709년 영국에서 시작된 저작권법 덕분으로 인쇄된 텍스트의 권위는 더욱 커졌다.
서구에서 작가의 권위가 높아지던 시기와 맞물려 진행되었던 또 하나의 흐름은 ‘아카데미’의 출현이었다.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붕괴된 구체제(앙시엥레짐)의 신분적 위계를 대신하게 된 부르주아지들은 사회 지배계급으로서 신분적 권위를 실력지상주의, 엘리트주의, 학벌주의로 대체했다. 이런 변화는 구체제의 지배계급은 물론 대중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지식인 계층에게 중요한 지위를 부여했다. 지식인들은 사회적 신분, 출신계급에 상관없이 그가 지닌 지식(또는 학위)으로 높이 평가받았다. 중세 이탈리아에서 처음에는 고전문학을, 나중에는 이탈리아 문학을 연구하기 위해 형성되기 시작한 아카데미는 18세기에 이르러 광범위하게 성장하기 시작하는데,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문학 아카데미인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출범한 것은 1635년이었다. 이처럼 권위 있는 기관의 설립은 작가 또는 지식인이 된다는 것에 대단히 높은 권위를 부여했고, 이후 작가는 서구 소설문학의 전성기로 손꼽히는 18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독자에 비해 우월한 존재로서의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뉴미디어 시대의 문학은 PC통신문학으로부터 시작된 변화에 의해 변함없이 고정된 매체인 ‘책’으로부터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고, 작가와 독자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매체에 몸담게 되었다. 과거 작가와 독자의 만남은 책을 매개로 한 독서행위를 통해서만 이루어졌다. 하지만 오늘날 작가와 독자는 인터넷 공간에 펼쳐진 다양한 커뮤니티와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통해 실시간으로 만난다. 이처럼 작가와 독자의 관계가 대등해지고 있으며 작가이자 동시에 독자인 관계도 만들어지고 있다. 이제 창작 작업을 통해 수익을 거두는 경험은 전문적인 훈련과 일정한 통과의례를 지나온 작가만의 몫이 아니다. 이제는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웹소설’ <북팔, 웹소설 콘텐츠 누적 1억 뷰 달성>, <해럴드 경제>, 2014. 11. 14일자 보도에 따르면 “2014년 웹소설 콘텐츠 구독이 1억360만 뷰를 달성, 1억 뷰를 돌파”했으며 이는 지난해 860만 콘텐츠 뷰에 비하면 10배 이상 성장한 수치로, 최근 웹소설 시장의 성장을 나타내는 지표라 볼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 http://gvalley.heraldcorp.com/detail.php?number=14295
의 형식으로 보다 손쉽게 누구나 작가의 길을 갈 수 있게 되었다.
2) 문학 활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독자
뉴미디어 시대의 문학 독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문학 활동에 보다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비단 창작 활동의 용이함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 PC통신문학 시절부터 드러났던 뉴미디어 시대 문학의 특징 중 하나는 독자의 즉각적인 반응, 수동적인 수용자가 아닌 능동적인 참여자로서의 독자의 존재에 있다. 과거 작가들이 골방에서 혼자 집필한 뒤 완성된 작품을 가까운 지인 몇몇과 편집자, 비평가들에게 열람시키는 과정을 통해 대중독자의 반응을 점쳐볼 수 있었다. 반면에 PC통신문학의 등장 이후 뉴미디어 시대의 문학은 창작의 결과가 공개되는 즉시, 조회 수와 댓글 등을 통해 독자의 반응을 신속하게 대면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실시간적인 양방향성(인터랙티브)에 의해 문학은 근대문학에서 도리어 과거 구비문학 시대의 특징 - 청중의 반응에 따라 작품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는 구술성 - 을 지니게 되었다. 이것은 근대 이후 단절되었던 문학의 공동창작, 집단창작이라는 오래되었지만 낯선 전통으로의 회귀를 의미했다.
이와 같은 문학 활동의 양방향성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다. PC통신문학이나 웹소설의 연재방식, 작성된 원고를 적당한 분량으로 나눠 순차적으로 통신공간에 올린다는 것은 기존의 신문연재소설과 같은 형식을 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을 과거의 집단창작 전통으로의 회귀, 문학의 대중화와 민주화로 바라볼 수도 있겠으나 다른 한 측면에선 신문연재소설이 지녔던 문제와 한계 역시도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능동적인 대중독자의 존재는 분명 새로운 것이나 이것이 결과적으로 작품의 수준을 높이는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고급문학 또는 엄숙문학으로도 불리는 기성 문학과 달리 사이버컬처와 대중의 욕구에 부응하는 문학작품의 수요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런 뉴미디어 시대의 문학이 보이는 독특한 양상들은 기존의 문학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새로운 독자층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 다른 한 편으로 최근 개인의 생애사 쓰기의 형태의 저작들이 다양하게 시도되고, 출판되는 현상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라면 전문적인 작가의 작품을 통해 대리표현되고, 대리만족하던 방식을 넘어 이제는 독자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기술하고 싶어 한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3) 다매체(멀티미디어) 시대의 문학
기존 문학은 문학적 완성도를 중시하는 태도 또는 문학적 엄숙함의 태도를 취했기 때문에 다른 매체로의 전이가 쉽지 않았다. 오로지 문학만이 해낼 수 있는 상상력과 묘사는 문학만의 특성과 장점으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문학과 내러티브라는 영역을 공유하고 있는 영화는 출현한 지 100여 년에 불과하지만, 최근에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과거에는 문학만이 가능하리라 보았던 상상의 영역까지 이미지화해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기술력의 발전으로 인해 문학은 디지털 매체들과 결합하여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었다. 처음부터 영상매체로의 전이를 꿈꾸는 콘텐츠로서의 문학적 경향들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이 빚어지게 된 원인 중 하나는 독자들을 둘러싸고 있는 매체환경이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출판인쇄매체가 대중의 유일한 오락거리였던 시대에서 이제는 어떤 매체도 독점적인 위치를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다시 말해 문학작품이 다양한 다른 장르의 매체들 ― 예를 들어 스마트폰, 게임기, DVD, IP-TV 등 ― 과 치열하게 경쟁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딸랑이보다 리모컨을, 부모의 까꿍하는 달래기보다 스마트폰이 아기를 달래는 데 특효인 시대에 태어난 어린이들은 문자 매체보다 영상 디지털 매체가 더욱 친숙하다. ‘호모사피엔스(지능을 가진 현생인류)’에서 ‘호모디지쿠스(디지털 시대의 신인류)’로 진화해 가고 있는 ‘디지털 네이티브의 시대’에 문학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이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정전(正典)으로서 문학의 위치가 취약해졌다는 의미는, 반대로 그만큼 새로운 미디어로의 확장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독자들에게 문학은 ‘책’의 형태로 다가오는 것만이 아니다.
그다지 종이책 독서를 즐기지 않는 한 중학교 2학년 아이가 이문열의 『삼국지』를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숙독하는 것을 보고 기특해서 물으니, 게임 ‘삼국지’를 더 잘하고 싶어 그랬다고 답했습니다. 제가 이 예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게임을 옹호하거나 여타 뉴미디어를 옹호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각 매체간의 관계는 위계적 관계나 배타적 관계가 아니라 독서의 동기를 부여해 줄 수 있는 상호보완적 관계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김경연, 『우리들의 타화상 - 아동청소년문학의 세계』, 창비, 2008, 395쪽.
위의 예에서 보여지듯 오늘날 베스트셀러가 된 문학작품들과 영상매체는 대단히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처음부터 드라마나 영화로 재매개화될 것을 염두에 두고 집필되는 창작방식은 은연중에 작가들에게 내면화되어가고 있다. 영상매체를 통해 문학에 대한 흥미를 갖게 되어 역으로 문학작품에 관심을 갖는 독자들의 존재는 베스트셀러 문학작품 리스트를 살펴보면 누구라도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독자들의 존재는 문학이 대중의 삶을 재현하는 도구로 지속될 수밖에 없는 원인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문학작품의 대중화 경향은 대중의 교육 수준과 문화 향유 수준이 높아지면서 창작자와 수용자의 격차가 현격하게 좁혀진 결과이다. 과거에는 저자가 일방적으로 재현한 세상을 수용하던 독자들이 이제는 수동적인 소비에 만족하지 않고, 작품의 수용과 재창조에 훨씬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스타워즈>와 <스타트렉> 시리즈의 외전 창작물들이 유투브 등을 통해 생산되고 있으며, 대중 스타를 주인공으로 한 팬덤(fandom) 현상인 팬픽(fan fic)이 쏟아져 나오는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4) ‘창작’에서 ‘편집’으로 - 두루마리와 코덱스의 차이
고대의 책들은 ‘권자본(券子本, scrolls)’, 다시 말해 두루마리 형태였다. 동양의 죽간(竹簡)도, 서구의 스크롤도 모두 두루마리 형태의 책자였다. 권자본의 문제점은 끊임없이 다시 말아야 했기 때문에 특정한 페이지를 읽기 위해 건너뛸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중간에 필요한 부분을 찾기 위해서는 필요한 부분이 나올 때까지 두루마리를 말고 펴는 일을 계속 반복해야만 했다. 또한 책을 읽는 동안 한 손으로는 펼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말아야 했기 때문에 책 읽는 중에 메모를 하기 힘들었다. 초기 두루마리 형태의 책들은 책꽂이에 보관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튜브 모양으로 말린 책을 주제에 따라 항아리 같은 그릇에 보관했다. 쿰란에서 발견된 사해문서(Dead sea scrolls)가 항아리에 담겨있던 까닭도 그와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그에 비해 후대에 등장한 ‘책자본(冊子本, codex)’은 두루마리처럼 ‘말기(scroll)’에서 ‘접기(fold)’로 변한 형태였다. 초기 책자본인 코덱스(codex)는 파피루스나 양피지를 아코디언 주름처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었다. 코덱스의 출현으로 독자들은 책을 보관하고 소지하기가 한층 쉬워졌으며 독서 중 언제라도 자신이 필요한 부분으로 건너뛸 수 있게 되었다. 로마제국의 기독교 박해시기에 성경이 코덱스 형태로 출현하게 된 것은 성경을 몰래 품 안에 숨겨놓고 보관하거나 필요한 부분을 찾아서 읽기 편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책의 형태가 단순히 변화했을 뿐임에도 독서 형태가 변화되고, 그에 따른 집필 형태가 변모했다. 그렇다면 컴퓨터로 글을 쓰는 행위는 작가에게 어떤 변화를 주었을까, 또 뉴미디어 시대의 독자들에게는 어떤 변화를 초래했을까?
니체는 1879년 건강이 악화되어 바젤대학교 철학 교수 자리를 강제로 사임해야 했다. 서른넷이라는 젊은 나이에 건강과 직장을 잃은 그는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유럽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1881년 말 니체는 이탈리아의 항구 도시 제노바에서 다락방을 하나 빌렸다. 시력이 점점 나빠져 책상에 시선을 고정하는 것 자체가 매우 고되고 고통스러운 일이 되었다. 때로는 머리가 쪼개지는 듯한 두통과 구토 증상이 그를 괴롭혔다. 니체는 어쩔 수 없이 글쓰기를 줄였고, 조만간 아예 글쓰기를 못하게 되는 건 아닌지 두려워했다.
이때 니체가 찾은 돌파구는 바로 덴마크제 몰링 한센 타자기였다. 그는 1882년 초에 이 기계를 주문했고, 이 놀라운 장치는 1분에 800개의 글자를 칠 수 있었다. 이것은 당시 발명된 타자기 중 가장 빠른 것이었다고 한다. 타자기는 얼마 동안 니체를 구했다. 타이핑을 익히고 나자 곧 눈을 감고 손가락 끝만으로도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런데 니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글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난 것을 알아차렸다. 빠른 시간에 글을 쓸 수는 있었지만 어쩐지 예전 글보다 만족도는 떨어졌다.
나는 10대 시절 수동식 타자기에서 20대 시절 전동 타자기와 286, 386, 486 컴퓨터를 거쳐 지금에 이른 세대이다. 기계에 대한 적응력 하나는 끝내주는 시대를 살아온 셈이다. 처음에는 노트에 적어서 그걸 타자기나 컴퓨터로 옮겼지만, 모니터에 직접 입력하는 방식으로 옮겨나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펜을 쥐고 종이에 적어나가는 방식보다 모니터에서 직접 쓰고 지우고, 자르고 이어붙이는 글쓰기의 자유로움에 흠뻑 빠지게 된 것이다. 정희재,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갤리온, 2013, 133~135쪽.
니체는 타자기를 이용한 글쓰기만으로도 자신의 글이 미묘하게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권리』의 저자 정희재는 컴퓨터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한 글쓰기에서 자유로움을 느꼈다.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한 글쓰기의 장점은 자유로운 편집에 있다. 우리는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해 거의 생각하는 속도와 비슷한 속도로 글을 쓸 수 있고, 글을 쓴 뒤엔 이것을 자유롭게 수정하고 삭제할 수도 있다. 이런 편리함과 자유로움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들은 다시는 종이 위에 직접 글을 쓰는 작업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워드프로세서가 한참 대중화되던 무렵, 그리고 최근 들어 다시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에 대해 고민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마도 니체가 느꼈던 불편함과 만족도의 상실이 그 원인이었을 것이다. 자유연상에 의존하듯 빨리 글을 쓰다 보니 생긴 문제이다. 글쓰기의 문제만이 아니라 읽기의 문제도 발생했다.
대량생산과 표준화가 중요했던 산업화 시대의 읽기는 주로 주어진 텍스트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서로가 공통된 이해에 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하나의 지문을 제시한 뒤 그 지문을 적절히 이해했는지 묻는 선택형 읽기 평가의 관행은 이와 같은 산업화 시대에 필요한 읽기 능력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21세기 지식 기반 사회에서 접하게 되는 상당수의 읽기 문제는 읽을 텍스트를 제대로 찾고 이를 관리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옥현진, 「디지털 시대의 읽기 능력」, 『새국어생활』(2012년 겨울, 제22권 4호)
- http://www.korean.go.kr/nkview/nklife/2012_4/22_0404.html
2014년 1분기 통계에 따르면 세계에는 2억 7천6백만 개 이상의 도메인이 존재하며, 하루에 1억 개 이상의 새로운 글이 생산되고 있다. 이문규, , 2014. 08. 19. (http://it.donga.com/19020/)에 따르면 미국 도메인 업체 베리사인(VeriSign)이 '도메인 이름 산업 보고서(Domain Name Industry Brief)' 최신호를 발표했다. 2014년 1분기 동향이 실린 이번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약 5백만 개의 도메인이 새로 등록되면서 전체 도메인 개수가 2억 7천6백만 개를 넘어섰다.
양에서 질을 뽑아내기도 어렵고, 신변잡기와 전문자료의 구분이 안 되며 글의 신뢰성을 담보할 수도 없다.
직장인들은 아침식사를 거르는 한이 있더라도 출근길부터 스마트폰으로 날씨, 교통정보, 뉴스에 담긴 데이터를 소비하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직장에 자리를 잡으면 바쁘게 전날 쌓인 e-메일을 확인하고 답장으로 데이터를 생산하며 업무 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온갖 업무가 IT화된 기업환경 속에서 우리는 업무 시간 내내 PC와 모바일기기를 옆에 끼고 지낸다. 더 이상 텍스트는 200자 원고지 몇 매로 환산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용량으로 파악된다. 그렇게 인류가 디지털 공간에 축적한 데이터는 이미 지난 2010년에 1200조 메가바이트(MB), 다시 말해 1.2 제타바이트(ZB)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것은 미국 의회도서관이 소장한 전체 장서의 데이터 1500만 MB의 800배에 이르는 양이다. 채승병, 「지금 기업이 빅데이터를 챙겨야 하는 5가지 이유」, 2011. 5. 4.
- http://www.whatigm.com/bbs/board.php?bo_table=sub0200&wr_id=1527
컴퓨터 워드프로세서와 인터넷의 결합으로 쏟아져 나오는 홍수 같은 정보와 글들을 기업은 ‘빅 데이터(Big Data)’로 쓰고 일반인들은 ‘데이터 스모그(Data smog)’라고 읽는다. 문학인들은 한때 현실이 소설보다 재미있어서 독자들이 소설을 찾지 않는다고 우스개를 했는데, 오늘날 현대의 독자들은 항상 읽을거리에 치이고, 늘 무언가 읽고,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읽기 중독’ 상황에 처해 있다.
3. 뉴미디어 시대의 문학과 새로운 권력의 문제
지난 1999년 한 세기를 마감하면서 <라이프> 지는 지난 1,000년 동안에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 100명과 발명품 100개를 각각 선정한 바 있는데, 그중에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는 가장 중요한 발명품으로 손꼽혔다. 구텐베르크 인쇄술에 의해 근대가 탄생했으며 근대의 기획은 아직 미완의 진행상태란 점에서 보았을 때,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루카치가 소설의 철학을 완성했다면, 소설의 발생 기원을 문화사적으로 완성한 비평가로 손꼽히는 20세기 영국의 영문학자 이언 와트(Ian Watt)는 『소설의 발생(The Rise of the Novel)』을 통해 소설의 발흥 원인 중 하나로 대중독자의 등장을 손꼽고 있다. 그러나 그가 분석한 소설의 발흥 요인은 곧 소설의 쇠퇴를 설명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 시대의 소설은 대중적 인기(대중성)을 획득함으로써 발생했지만, 이후 여러 다양한 경쟁 매체들의 등장으로 쇠퇴의 길에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으로서의 소설은 매우 가치 있는 것이긴 하지만, 소설의 물질적 토대는 매우 저렴한 것이었다. 1650년대 이후 소설이 대대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까닭은 중산계급 여성들에게까지 교육이 확대되어 독자가 증대되었고, 거리의 소설 행상인(chapman)들이 파는 값싼 챕북(chap books)이 대량 소비된 덕분이었다. 허구로서의 소설(이야기)은 이처럼 값싸고 가벼운 매체에 담겨 세상을 넘나들었다. 그것이 바로 문학의 본질을 구성하는 한 요소였던 것이다.
뉴미디어의 등장은 문학과 언어의 존재 방식에 변화를 주고, 이것은 또다시 저자와 독자의 관계에도 영향을 주는 연쇄사슬로 긴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문학과 언어의 존재방식이 변화하면서 언어적 표현력과 상상력이 풍부해지고, 대중 독자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참여로 문학의 외연이 확장된 측면은 분명히 긍정적인 효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학 활동 방식의 변화는 문학 내부 권력관계의 조정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며, 문학의 생산과 향유 방식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책이 지식과 정보, 재미와 감동의 매체란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이것은 디지털 뉴미디어로도 대체될 수 있고, 만족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런 시대에 창작이란 편집이 될 것이며 독서는 정보 선택의 과정을 의미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의 출판은 완전히 열린 구조, 저자가 직접 출판(일인 출판, 셀프 퍼블리싱, 셀프 에디팅의 세계 등)을 통해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플랫폼)만 생성된다면 책의 저자는 좀 더 확장되고 개방된 형태가 될 것이며 독자들은 언제라도 능동적인 저자로 탈바꿈할 것이다.
책이란 포디즘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이미 포디즘의 미래에서 온 생산물이었다. 근대의 산물이자 근대의 기획이었던 책은 표준화와 산업화의 총아였다. 그리고 이제 근대를 초월하려고 예비 중이다. 미래의 책이란 캡슐에 담긴 커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며 그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머지않은 장래에 오피스디포(Office Depot) 같은 곳에서 인터넷에 연결된 데이터를 다운로드받거나 USB 같은 저장매체에서 옮겨 즉석에서 인쇄하고 제본하는 인스턴트 책으로 읽는 사람들도 보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원한다면 자기 책을 인터넷공간에 올려놓고 판매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작가와 시인이 사라지는 것일 수도 있고, 누구나 작가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말해 뉴미디어 시대의 문학은 뉴미디어 문학을 발견하는 도중에 있다. 뉴미디어 문학은 충격에서 적응으로 다시 새로운 충동으로 나아간다. 이 과정은 뉴미디어가 문학의 내부로 수용되는 일련의 과정들이며 이 과정에서 뉴미디어 문학은 보다 풍부한 수단과 매체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뉴미디어 문학의 충격에서 벗어나 이를 수용하고 적응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같은 정전적 사고를 극복하고, 새롭고 창의적인 뉴미디어 문학을 창작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물론 오래된 것은 죽어가고 있으나 아직 새로운 것은 오지 않은 상황일지도 모른다. 또한 현재의 예술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디지털 테크놀로지 및 새로운 매체 환경이 과거로부터 예술이 고민해왔던 지점들, 즉 주체와 타자간의 문제 및 세계와의 관계성 등에 있어서 보다 직접적인 해법을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 예술 자체가 열린 작품으로서 스스로 작동되는 방식으로 수용자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구성할 수 있다면 우리는 뉴미디어 시대의 문학과 예술을 통해 새로운 세계관을 엿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현재의 위기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현재 공중파 방송에는 단 하나의 문학 프로그램도 존재하지 않으며 책 소개 프로그램도 절멸 상태이다. 그와 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일부 메이저 출판사들을 중심으로 뉴미디어를 활용한 팟캐스트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문학 팟캐스트가 마니아층으로부터 차츰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 콘텐츠의 힘이다. 문학 팟캐스트들은 기존 지상파에서 방영되었던 방송들과 견주어 손색없는 구성은 물론 출판사들이 가지고 있는 문학계 관련 인사들에 대한 섭외력을 십분 발휘해 콘텐츠의 전문성을 살리고 있다. 팟캐스트 프로그램들은 뉴미디어의 장점을 활용한 스마트폰 내려 받기를 이용해 어디서든 들을 수 있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다만 염려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문제는 멀티미디어(다매체)가 뉴미디어의 특성이라지만, 실제로 현재의 상황은 컴퓨터(인터넷) 중심의 매체 독점시대라는 점이다. 김성재, 「역사의 종말」, 『디지털미디어와 예술의 확장』, 아카넷, 2006, 118쪽
이것은 두 번째 문제인 ‘문화 권력의 소수 독점 가능성’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문화 권력(자본력과 점유력)을 지니고 있던 이들(포털사이트와 주류 문학출판사)에 의해 마치 멀티플렉스 영화관처럼 다양성을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뉴미디어 권력을 독점함으로써 상업적이고 대중추수주의적인 형태의 문학만 강요받게 될 가능성이다. 실제로 현재 포털사이트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웹소설의 상당수는 특정 장르(로맨스)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으며 작품의 질이 고르지 못하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또한 기왕에 문학상과 비평을 독점하고 있는 메이저 출판 권력에 의해 운영되는 팟캐스트의 문제 역시 새로운 고민의 대상이다. 이제껏 학문 분야에서 인간관계와 사회구조적 현상으로만 이해하였던 권력의 문제가 컴퓨터 테크놀로지를 구사할 수 있는 기술력과 자본력에 전이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문제는 대중과 만나고 싶다는 작가와 시인의 열망이 작품보다 앞서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미디어의 문제는 거시적이든, 미시적이든 권력의 문제다. 모든 미디어는 권력에서 나온다. 모든 권력이 총구에서 나오듯, 자본주의의 총구는 돈이다. 그런 의미에서 웹소설, 팟캐스트, SNS도 모두 권력이고, 그 권력은 돈과 명성에 대한 갈망에서 나온다. 이들은 작가, 시인들에게 묻고, 또 묻는다. “유명해지고 싶은가? 그렇다면 뉴미디어를 활용하라. 여기 와서 기꺼이 나의 상품이 되라!” 정전의 무거움과 상품의 가벼움, 권력의 인력(引力)과 탈주하고자 하는 작가의 척력(斥力) 속에 놓인, 이 상황 자체가 뉴미디어라는 야누스의 참모습이다. <작가들, 2014년 겨울호(통권 51호)> |
애도(哀悼)의 정치학 혹은 정치의 부재에 대하여<『플랫폼』, (2014년 11·12월호), 인천문화재단> 
바람구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