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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발매된 앨범, 공연의 주제가 천국과 지옥이던가? 천사와 악마던가? 그렇다고 들었는데 실제 무대 스크린에 구사된 배경 장면들 역시 고딕풍의 어두움과 크리스마스 같이 밝은 소재들이 번갈아 교차되는 방식으로 꾸며졌다. 지금의 이미지만으로는 솔직히 어느 것이 지옥인지 천국인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 재단이 주최하는 공연의 공식, 비공식 사진작가로 공연 촬영을 제법 많이 했지만 공식으로 사진을 촬영할 때조차 스트로보 촬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공연 중 촬영 금지'는 무대에서 공연하는 뮤지션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본인과 주변 사람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서울 공연 당시엔 사라 브라이트만 본인이 공연 중에 사진 촬영을 자제해 달라고 부탁까지 했다고 하는데 인천 공연에서는 이미 포기했는지 도중에 스트로보가 터지는 데도 아무 말 없이 공연에 임했다.
어제 간만에 사라 브라이트만 내한 공연에 다녀왔다. S석이었는데 가격이 무려 120,000원이었다(VIP석 180,000원/ R석 150,000원/ S석 120,000원/ A석 90,000원) 물론 제 돈 내고 간 것은 아니고, "사라 브라이트만 심포니 코리아 투어 2009 공연" 중 하나였던 인천 공연을 저희 재단에서 후원한 덕분에 나온 무료 초대권이었다(제법 가운데 좌석이라 비교적 좋은 자리에 배당받았다). 인천 송도 컨벤시아 메인 전시홀에서 열렸는데 아무리 100억대 음향 시설을 공수해왔다고 하더라도 음악공연은 공간이 기본이란 사실을 절감했다. 개인적으로 사라 브라이트만 스타일의 맑고 곱지만(Cool & Clear) 톡 쏘듯 메마른 고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취향 탓도 있지만 전시홀이란 본래의 공간 용도와 맞지 않는 콘서트 장소의 단점 때문에 사라 브라이트만의 장점은 많이 발휘되지 못한 반면에 단점들이 좀더 두드러지게 들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아마 부산 벡스코 공연이 남아있을 텐데 이곳에서도 이런 문제점들이 두드러져 보이게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8시 정시 공연이라고 했지만 역시 공연 시작 이후에도 입장권 수익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늦게 도착해서 입장하는 몇몇 사람들로 인해 부산한 가운데 공연을 알리듯 조명이 착착 꺼진 시간은 5분쯤 뒤였다(가끔 공포영화에서 긴 터널의 조명이 칸칸이 꺼질 때 효과음이 '촥촥'나는 것처럼 공연장 조명이 꺼질 때 보니 정말 똑같은 소리가 나더라는). 기다리는 동안 무대의 이모저모를 비교적 관심 있게 지켜봤는데, 이 역시 1년에 두 번씩 크로스오버된 클래식과 퓨전 국악 공연(얼마 전만 해도 '정통' 장르만을 고집했었지만)을 개최하는 재단에 근무하는 직업 정신이 발휘될 수밖에 없었다. 중(中)자형 돌출 무대가 있다는 것과 조명 트러스트에 세 부분으로 분리된 사각(ㅁ)형 금속 아치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을 제외하곤 생각 외로 단출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서 사각형 금속 아치가 실제로는 여러 멀티미디어 기능을 구사할 수 있도록 정밀하게 짜인 장치의 일부란 것을 알았다.
조명이 꺼진 잠시 후 등 뒤에서 강렬한 한 줄기 조명을 받으며 등장한 사라 브라이트만은 예상 밖으로 흰색 드레스 차림이었는데 잠시 후 8명의 여성 무용수들이 나와 옷을 좌우로 '확(?)' 벗겨주면 공연 포스터에 등장했던 새틴 처럼 반짝이는 느낌의 강렬한 붉은색 드레스가 나타났다. 이번 공연 자체가 사라 브라이트만의 새로운 앨범 출시에 맞춰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공연 내용도 1부에서는 새로운 앨범에 수록된 곡들을 위주로 편성되었고, 사라 브라이트만하면 떠올릴 수 있는 곡들은 대부분 2부에 편성되었다. 처음 서주로는 웅장한 느낌의 "Gothica"기 흘러나오고, 서주가 잦아들 무렵 곧바로 "Fleurs du Mal"을 부르는데 익숙치 않은 곡이기도 하고, 사라 브라이트만 역시 본격적인 발성 전의 일종의 워밍업 상태라 그런지 약간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디바, 천상의 목소리라고 하더라도 어느덧 그녀의 나이(1960년 생)도 내일 모레 쉰 살을 바라본다. 유명 뮤지션들의 한국 공연을 본 뒤에 흔히 하는 말들이 전성기가 지나 퇴물이 다 되어서야 돈이 궁해서 다녀간다는 식으로 혹평을 하는 경우들이 잦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맞는 말이긴 하지만 다른 한 편에선 지나치게 혹독한 평가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전반부 공연 내내 나 역시 그런 생각이 일부 들긴 했다. 하지만 저 나이가 되도록 현역으로 활동하며 솔로 활동을 할 수 있는 뮤지션, 그것도 보컬리스트가 드문 우리 현실을 생각해볼 때 사라 브라이트만을 폄훼하기엔 너무 이르다. 공연이 진행될수록 사라 브라이트만 특유의 새처럼 톡톡 쏘는 맑고 고운 음색이 살아나면서(물론 마이크 믹싱이나 이펙트의 효과를 무시할 순 없지만 이 역시 기본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스튜디오도 아닌 데) 안정적인 느낌이 들었다. 다만 스피커 쪽에 너무 가까이 앉을 수밖에 없는 좌석의 저주를 받은 이들은 고역 부분에서 귀가 고역이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기왕에 좌석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전문공연장이 아니다 보니 의자가 24시간 편의점에 앉아 컵라면 먹을 때 쓰는 의자들이다. 좌석에는 가격에 매겨져 있지만 의자는 공평했다. 다만 VIP석엔 검정색 방석들이 깔려있었다는 차이는 있었다. 전체적으로 객석을 향해 중자형 돌출구조를 갖춘 무대였기 때문에 사라 브라이트만이 앞으로 나와 노래 부를 때는 무대를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었지만 좌우 양측 끄트머리에 앉은 청중들은 메인 무대에서 공연할 때는 감상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스크린 설치 같은 보조 장치가 필요했다. 그래서 다음부턴 반드시 소형 망원경을 지참하리라(아직 없지만)는 결심했다.
앞서 무대 위에 설치된 사각형 아치 형태의 설치물을 이야기했는데, 공연 내내 매우 중요한 무대 장치로 사용되었다. 사각형 아치는 알고 보니 얇은 망사 스크린이 설치된 일종의 은막(silver screen)이었다. 사라 브라이트만은 공연에 따라 좌우 복도를 따라 이동하거나 중앙부로 등장했는데, 각각의 동선은 스크린의 활용을 위한 세밀한 동선 활용이었다. 특별한 무대 세트의 변동 없이 스크린 뒤 편 무대에서 공연할 때는 전면 스크린에 각종 멀티미디어 이펙트 효과를 활용한 장면들이 구사되어 사라 브라이트만의 노래에 따라 나무가 솟아나기도 하고, 꽃이 피어나는 장면들이 등장했고, 반딧불이와 별들이 반짝이는 효과 등을 사용했다.
특이한 점은 중(中)자형 무대에서 매몰된 형태로 드러나지 않는 무대 안쪽 공간의 활용인데 공연 중간에 수중 장면이나 달의 여신으로 등장하는 장면에선 무대 안쪽의 드러나지 않는 공간에 드러누운 채로 공연하는 장면을 마치 달에 누워 공연하는 것처럼 무대 스크린에 투영해서 사람들의 갈채를 받기도 했다. 코미디 영화나 액션 영화에서 천장과 바닥이 뒤집혀진 것과 같은 카메라 트릭을 구사했다는 말이다. 멀티미디어 효과들은 마치 영화나 뮤지컬처럼 사라 브라이트만 단독으로(중간에 3곡 정도 듀엣곡을 이탈리아 출신의 팝페라 테너 알렉산드로 사피나와 함께 불렀지만) 2시간여의 공연을 지루하지 않게 채우는데 효과적이었다.
2부 공연에서는 좀더 파퓰러한 곡들로 구성되었는데 You Take my Breath Away를 비롯해 사라 브라이트만을 오늘의 디바로 키워준 Phantom of the Opera에서는 서울 공연에서 말이 많았던 고음처리 불안정을 불식시키는 완벽한 보컬을 선보였다. 뒤를 이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에피소드를 이용한 무용수들의 소극이 진행된 쥐 붉은 두건으로 분장한 사라 브라이트만이 음습한 오솔길을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며 노래하는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3D 그래픽으로 이뤄진 장면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라 브라이트만 뒤로 역시 자전거를 탄 늑대들이 추적하는 장면이 관객들의 흥을 돋궜다.
듀엣으로 등장한 알렉산드로 사피나 역시 전성기는 지났다고 할 수 있는데 보첼리와 상당히 흡사한 음색을 보여주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내 경우엔 새처럼 노래하는 고음의 사라 브라이트만을 알렉산드로 사피나가 적절하게 감싸줄 때 좀더 듣기 편하긴 했지만 두 사람이 듀엣으로 합창하는 대목에선 사피나의 우렁찬 목소리가 사라 브라이트만의 목소리를 넘어서 버리는 대목이 제법 많다고 느껴졌다. 그래서였을까? 마지막 곡으로 안드레아 보첼리와 함께 했던 Time To say Goodbye를 불렀는데, 알렉산드로 사피나와 함께 부를 것이란 일반의 예상을 깨고 끝까지 솔로로 열창해서 사피나의 등장을 예상했던 청중들을 약간 실망시켰다.
이후 두 곡을 더 앵콜곡으로 노래한 뒤 모든 공연을 끝마쳤다. 모든 공연이 그렇겠지만 무릇 공연이란 끝이 있어서 아쉬움도 있는 법이다. 자기 돈 내고 가서 들었다면 내가 이 공연을 어찌 평가할지는 미지수이지만 일정하게는 명불허전이란 감상평이 어울리는 무대였고, 과거 그녀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청중의 한 사람으로서는 절정의 공연은 아니었다는 아쉬움이 함께 남았다. 언제 그녀의 목소리와 공연을 현장에서 들을 수 있겠는가.
* 이번에 새로 나온 음반은 CD+DVD(비엔나 실황) 합본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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