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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2월 31일(그러니까 내 나이 5살 때 일어난 일이지만 내가 했다는 건 아니고). 그때는 대학시험 본고사가 있던 때였다. 그러니까 대입 본고사일을 10여일 정도 앞두고 서울 중앙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다.
내가 국민학교(초등학교 아님) 다닐 때까지도 그랬지만, 당시엔 시시때때로 학생들 가슴에 리본을 달아야 했다. 리본에 적힌 내용은 그때그때 달라지긴 했지만 겨울철엔 '불조심'이라고 쓰인 리본을 달았다.
그런데 이날 몇몇 학생들이 '불조심' 대신 가슴에 '자유언론'이라는 글귀가 적힌 리본을 달고 학교에 갔다. 당시는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태로 국민적 관심과 공분이 일어나던 무렵이라 학교에서 그냥 몇몇 어린(?) 학생들의 치기로 보아넘겨도 될 일이었지만(예나 지금이나 학교란 그런 곳이 아니다), 이를 본 교사가 리본을 빼앗는 등 한바탕 난리법석을 피우면서 학생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몇몇 학생들은 수업이 끝난 뒤 ‘진짜‘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이들은 교사 몰래 ‘언론자유 보장‘ ‘광고탄압 중지‘ 등의 구호를 적은 피켓을 준비하고,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이렇게 해서 당시 중앙고 학생 20여명이 밖으로 뛰쳐나와 피켓시위를 벌였다.
시위 주모자들은 이 시위가 주동자가 없이 이뤄진 것으로 하자고 사전에 입을 맞췄다. 왜냐하면 본고사를 코앞에 두고 한명이라도 다쳤다가는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내심 아무리 유신치하의 학교라도 한꺼번에 20여명을 모두 자를 수 없을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 이 시위에 임하는 경찰과 학교 당국의 추궁이 매서웠다. 그러자 한 학생이 나서서 “내가 모든 걸 다 했다“고 나섰다. 실제로 그는 시위를 준비한 학생도 아니었다. 그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연락을 받고 나온, 이를테면 '단순가담자'였다.
고등학생이란 예나 지금이나 뜨거운 존재들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대학생들 보다 더 뜨겁다.
경찰은 이날 모두 8명의 학생들은 연행했는데, 주동자도 아닌 친구가 십자가를 자청하자 너도나도 “내가 진짜 주동자다“라며 앞으로 나섰다. 이들의 ‘아름다운 우정‘에 감복했을 리 없지만, 경찰은 이들을 모두 훈방조치했고, 학교 역시 이 일을 불문에 부쳤다.
MB스러운 어투로 말해보면, '나도 87년에 해봐서 아는데, 경찰이나 학교가 이런 일을 불문에 부치는 진짜 까닭은 긁어 부스럼 만드는 일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렇게 서로 주동자들이라고 우겼던 중앙고 학생 8명은 모두 그해 서울대에 합격했고, 이들은 훗날 서울대 학생운동권 내부에서 이른바 '중앙고 삼총사'라 불렸다.
그리고 이들 세 사람은 박정희 유신정권 아래에서 차례차례 감옥에 갔다.
조희연 선생의 별명은 한때 '조가재'였다. 그의 별명이 '조가재'가 되었던 까닭은 유신시대 긴급조치 9호시대(유신독재에 대한 저항이 커지자 박정희는 긴급조치9호를 발령한다)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긴급조치 9호의 주요 내용은 참으로 맹랑하여 지금 다시 읽어보아도 개그같다.
일단 대통령을 체육관에서 뽑기로 결정한 유신헌법에 대해 집회·시위 또는 신문·방송 기타 통신에 의해 (유신)헌법을 부정하거나 폐지를 청원·선포하는 행위가 금지되었다. 일체의 집회나 시위행위도 모두 금지다. 게다가 이 (긴급)조치에 대해 비방하는 것도 금지인데, 거기에 더해서 이 금지 사항을 위반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 내용을 방송하거나 보도하거나 알리거나 표현하는 행위도 모두 금지이며. 이런 명령이나 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위반자는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사실, 오늘날 우리는 우스개 비슷하게 박근혜 정부 아래에서는 어떤 것이든 문제가 되기만 하면 금지되고 해체된다고 웃지만,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대통령 시절엔 그걸 가지고 웃기만 해도 감옥에 가고, 이름 앞에 빨간 두 줄이 가는 시절이었다. 게다가 박정희 대통령이 얼마나 오래도록 대통령을 했느냐 하면 무려 18년이었다. 지금 대통령은 아무리 밉고 싫어도 5년 후면 빠이빠이지만, 박정희의 경우엔 1979년 10.26으로 죽지 않았다면 그의 자연적 수명이 다하도록 대통령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시절이었으므로 이런 시절에 데모를 한다는 건, 인생을 걸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광화문연합시위를 성공시킨 뒤 1978년 10월, 제2차 광화문연합시위를 준비하던 이우재(인천의 그 '이우재' 선생) 등에게 은신처를 마련해준 것은 박우섭(인천의 그 '박우섭' 청장, 아니 지금은 후보)이었다. 경찰은 이들을 체포하기 위해 현상금과 2계급 특진까지 걸었다. 그리고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조직의 뒷받침 없이 개인의 역량에 크게 의존하던 당시의 학생운동 능력으로는 장기간에 걸친 도피생활을 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들이 체포되고 얼마 뒤 조희연이 체포되었는데, 그는 광화문연합시위의 배후주동자이던 김준묵이 체포되고 조사받으면서 곁다리로 걸려들었다. 즉 '도랑치다가 잡은 가재'란 의미에서 조희연 선생의 별명이 한동안 '조가재'였다. 사실, 당시 조희연은 감옥에 갈 순번은 아니었다고 한다. 유신시대 초반만 하더라도 가혹한 탄압과 감시 아래 놓여있던 학생운동은 조직도 없었고, 개인적인 울분으로 학생운동을 했기 때문에 한 차례 타격을 받으면 그 뒤를 이을 세력이 없었다.
이런 조직이 학내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 긴조세대부터였다. 워낙 소수의 사람들만이 비밀리에 참여하고, 점조직 형태로 보안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시위를 직접 주동하는 사람과 그 시위에 쓰일 유인물조와 배후에서 뒤를 봐줄 팀이 따로따로 있었다. 조희연은 당시 예비조로 유인물조였기 때문에 표면상으로 드러날 이유는 없었지만 김준묵이 체포되면서 그의 행적까지 드러나게 되어 결국 구속당하고 만다.
그러나 조희연은 다른 긴조9호세대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감옥에 가게 된 것을 마음의 짐을 더는 일로 여겼다. 훗날 그는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나의 경험으로 볼 때, 암울했던 유신시대에 일체의 것을 박탈당하고 앞길이 꽉 막힌 것 같은 조건 속에서 감옥에 가게 되니, 그동안 존재적 구속으로 지체되었던 의식 발전이 가속된 것 같다. 나는 감옥에서 비로소 돕, 스위지, 루카치 책을 읽었고 밖에서 읽지 못한 많은 책을 읽었다. 감옥은 학교라는 생각이 든다. 서대문은 나에게 비판적 연구자가 되게 하는 학교였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교육이 정의롭지 못하고, 교육자가 올바른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는 누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서울 사람들은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
그 중에 한 명이 요기 아래 이진순 교수가 인터뷰한 '조희연' 교수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00660.html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