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전 권보드래는 일제 시대 관보였던 <매일신보>를 읽어내는 작업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제목은 "1910년대, 풍문의 시대를 읽다"인데, 일제 시대 조선총독부도 겉으로는 이 나라 백성을 위해 존재했고, 이 나라 백성을 위해 통치한다고 말한 식민지 정부다. 최근 '미네르바' 사태를 보니 100년 전인 20세기 초엽이나 21세기 초엽인 지금의 한반도 상황이 어설프게나마 비교된다.
KBS, MBC라는 양대 공중파가 미네르바의 정체를 놓고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했고, 교수들까지 나서서 미네르바를 지지하고, 두둔하는 글을 쓴다. 하긴 얼마전엔 익명으로 자선단체에 억대의 기부를 했다가 그것이 들통나 곤욕을 치르고 있는 탤런트 문근영 씨의 행적까지 북한 공작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으로 이야기하시는 한 때의 군사평론가를 보아야 하는 상황이다. 거기에 더해 신윤복을 연기한 탤런트가 지난 광우병 정국에서 한 발언도 함께 문제삼고 계시니 바야흐로 난세는 난세인 모양이다.
익명이고, 실명이고 간에 풍문이 풍문에 그치지 않고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데에는 우리 사회의 '지식' 발생과 유통과정에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인지, 저희 나라인지, 저들의 나라인지 모를 이 나라와 사회의 시스템이 모조리 오작동되는 상황이다. 학교에서 정규수업 대신 학원이나 집에서 비정규수업을 받아야 하고, 직장에선 정규직으로 일하는 대신 비정규직으로 일해야 하는 사회, 선출된 정부의 발표나 정책보다 '다음'이라는 인터넷 사회네트워크 게시판에 올려진 익명의 독설이 더 신뢰할 수 있는 사회는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사회다.
사실 경제학은 문과 분야 학문 중에서 가장 과학적으로 평가되는 학문의 영역이다. 여기에서 과학적이란 다른 말로 하자면 비인간적이란 뜻이기도 하다. 다른 문과 학문들이 인간은 어떠하다고 정의하는 대신 인간이란 무엇이냐를 묻고 있다면, 경제학(최소한 '주류 경제학')은 문과로 분류되는 학문 체계 중에서 유일하게 인간은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존재라고 정의하고 출발한다. 다시 말해 모든 인간은 자신의 이익과 가치를 위해 효용을 극대화하는 선택을 하는 존재, 이기적인 존재라고 전제한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학문이 fact를 최우선으로 진리를 추구한다고 말하지만 그런 점에선 자연과학을 제외하고 경제학이 가장 과학적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경제학은 때때로 현실과 엇나가는 예측이나 전망을 내놓곤 한다. 인간이란 그리 쉽사리 정의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미네르바의 예측도 그가 현재 받고 있는 평가에 비해 과잉일 수 있으며 그가 틀릴 수도 있고, 냉정하게 살펴보면 그의 예측대로 진행되지 않은 것들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의 전망을 뒤집을 수 없을 정도로 현 정부의 경제 상황 진단이나 정책적 대응이 형편없다는데 있다. 이 역시 풍문이나 그의 정체에 대해 일각에선 그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실물경제계의 인물이라 한다. 그런 내용의 사실 유무와 관계없이 최소한 그가 이야기하는 내용만 보더라도 최소한 나보다는 경제적으로 잘 살고 있는 이란 걸 유추가능해 보인다.
다시 말해 현정부가 추진하는 경제정책의 수혜자일 수 있는 사람조차 나서서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비판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이제는 하도 많이들 떠들어 하나마나한 말 같은데, 국민들도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을 정도로만 바보지, 그가 도덕적이라고 믿을 만큼은 바보가 아니다. 그런데 이번 정권을 거치면서 유권자들은 새로운 가르침을 얻을 것 같다. 유능과 무능을 떠나서 일단 사람이 안 된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으면 안 된다는 가르침일 것이다. 일국의 대통령과 일국의 경제 수장이 일개 사이트의 일개 네티즌이 올린 경제전망을 놓고, 일일이 대응하고, 청와대 대변인이 논평을 준비하는 상황까지 왔다면 풍문에 지배당해도 어쩔 수 없는 나라다.
풍문이란 정설이 정설로서의 힘을 잃었을 때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에서 풍문 만큼 세상의 속알맹이를 고스란히 드러내주었던 정보(혹은 지식)도 없었다. '뭐뭐 카더라 '하는 풍문을 모르고서는 제 목이 언제 뎅강 떨어질지 몰랐던 시절을 살았다. 한국전쟁이 그랬고, 개발독재 시절이 그랬고, 군부독재 시절이 그랬다. 수도 서울이 북한군 수중에 떨어지던 순간까지 대통령의 유성기 음반이 돌아가던 나라였고, 강남 개발이 한창 진행될 때도 아는 사람들만 알아서 강남 노른자위 땅을 차지하고, 그 시다바리들까지 부스레기를 나눠먹어 우리 사회의 상류층이 되었다. 그러니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백주대낮에 난데없이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날아다니는 거다.
*(첨언) : 미네르바가 신동아 12월호에 기고한 글을 읽고 있다.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의 여파가 한국에 옮겨 붙을 것이라는 예측, 8월에 급격한 환율변동이 오리라는 예고, 9월에 환율 1400원대 진입 예고 등을 족집게처럼 예측했다고 해서 그에 대한 주목이 높아졌다고 한다(사실, 몇몇 부분은 예측 못하는 게 오히려 바보가 아닐까 싶을 만큼 경제지식이 있는 사람이면 상식적인 수준의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다만 지금 경제정책을 운용하는 사람들이 바보가 아닌가 의심하고 싶을 만큼 엉뚱한 짓거리들을 하고 있으니 문제인 거지). 사람들은 그의 예측이 놀랍도록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지점에 주목하는지 몰라도 내가 현재 읽고 있는 미네르바의 글을 읽은 소감을 이야기하자면 그는 실물경제에 남들보다 좀더 전문 지식이 있는 상식적인 사람이란 것이다. 예측가능한 것을 예측하는 것도 능력이긴 하지만 '전문가(expert)'로서가 아닌 '예언자(prophet)'로 받아들여진다면 그건 본인 스스로도 원치 않는 결과인 듯 싶다. 문제는 세상이 자꾸만 그를 예언자로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