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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원의 <길 위의 독서>에서 이상한 점을 하나 꼽을 수 있는데, 그것은 제목이다. 책은 '바람구두 인생 서평'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고 각 장마다 책의 제목이 부제로 달려 있는데, 많은 글에서 전성원의 사유의 중심이 막상, 비평의 대상이 되어야 할 책에서 살짝 벗어난 위치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책 바깥에서 책으로 접근하는 느낌이랄까.
이건 내가 생각하는 (혹은 내가 '안다고 착각해 온') 전성원의 글쓰기 방식은 아니다. 전성원의 서평은 책의 외부로 멀리 나가지만 그 중심엔 '그 책'이 있다. 책의 세부를 낱낱이 뜯어 외부의 이벤트들에 결합하는 행위는 사실 '그 책'을 역사적/사상적 맥락 안에 재정위시키는 행위이고, 외부에서 호출되어 들어오는 책들은 '그 책'이 놓인 맥락 속에서 '그 책'과 함께 공명한다. 오뒷세우스의 세상유람처럼 온갖 곳을 헤매이나, 이타카를 바라보다, 결국은 돌아온다. 수많은 이야기들을 거둔채로 말이다.
이 책의 서평은 약간 다르다. 'D에게 보내는 편지' 이야기처럼 책 밖으로 나간 이야기가 '돌아오지 않'기도 하고, '금서, 세상을 바꾼 책'처럼 박사과정 연구 내용과 계속 갈마드는 듯한 서평서술도 반복된다. 이것을 두고 '거칠다'고 말하거나 '핀트가 나갔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쓴 사람은 잡지 편집장이거든... 전체적인 특집의 흐름을 파악하고, 각각의 저자를 섭외하여 '작업시방서'를 보내고, 그 글이 전체적으로 책 한 권 내에서 정확히 자리를 잡도록 고치고 다듬는 일을 20년이라는 아득한 세월 동안 반복해 온 글'장이'가 최종적으로 컨펌한 글에는, 그렇게 마무리한 '의도'가 있다.
따라서 질문은, 그가 '서평'의 중심에 '그 책'을 정위치시키는 대신 설정한 다른 또 하나의 무게중심이 무엇인지에 대해 묻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 글이 퇴고를 끝내고 발표된 순간에 전성원의 마음 속에 크게 자리잡고 다급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글을 매끈하고 완결적으로 마무리하는 것보다 중요하고 다급하게 말해야만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의 글들을 꾸준히 읽어 온 '편집자' 정선우가 이 책에 실어야겠다고 글을 고른 판단 기준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전성원이 편집자와의 협업과 퇴고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확정해 낸 텍스트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말이다.
나는 그것이 '인생', 혹은 전성원이라는 사람이 극복해 온 / 극복 중인 '상처'들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부제가 ‘인생’서평인 것은 그래서 이해할 만한 일이며, 이 책의 추천사를 김명인 교수가 쓴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전성원이 수동혁명에 포섭당한 민주화의 패배에 절망했고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었다면, 김명인은 타의에 의해 육신이 감옥에 갇혔던 사람이다. 두 사람은 그 상처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그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과정을 통해 도저한 사유의 깊이를 획득했고, 그렇기에 타인의 상처에 민감하고 불의에 분노할 수 있는 따뜻한 가슴을 가졌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이 또 있는데, (자기가 대단한 상처를 입었음에도) 남이 겪은 일이 자기보다 더 신산한 일이라 강조하고, (자신들이 성취한 바가 매우 큼에도) 다른 사람들의 성취는 자신보다 훨씬 더 대단한 것이라 말하곤 하며, 심지어 그 말을 하기 위해 상대방의 강점과 자신의 약점을 아주 샅샅이 분석해 내는 이상한 버릇이 그것이다. 게다가 말이지요... 앞서 말한 그 모든 분석들은 아주, 아주 정확하다. 이게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이 책에 실린 글들에 대해 가장 정확한 통찰을 주는 글은 내 글이 아니라... 이 책 맨 마지막에 실려 있는 김명인 교수의 추천사라는 얘기다. 추천사를 읽다가 울컥하는 경험은 또 오랜만이었다....
여튼 나는 개인적으로 힘들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남의 상처에, 시대의 요구에 잘 반응하지 못 하는 사람이다. 너무나 아픈 이야기들은 직면하기보다는 돌아서기를 원하고, 개인의 아픔에는 눈을 질끈 감는 경우도 많다. 모래에 머리를 묻는 타조 같달까. 그렇기에, 참 의리롭게 책을 들고 착착착 읽어 나갔지만, 이 책에 실린 그의 글들은 나를 아주 힘들게 했다는 것을 고백하고 싶다. 글은 거칠게 달려나가고, 글의 단단한 근육질 표면에 치솟은 단단한 흉텃자국들은 읽는 내내 가슴을 긁어왔다.
그런데, 누가 그랬더라? 사람은 상처와 비밀을 공유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자신의 가까운 자리를 내준다고? 전성원은 자신의 인생을 드러내는 책을 통해 자신의 내밀한 부분들을 독자에게 공개했다. 꼼꼼히 읽고 같이 가슴아파하고 되새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와의 심적 거리를 많이 좁힐 수 있을 것이고, 운이 아주 좋다면 무릎을 맞대고 앉는 우파니샤드의 자리에도 앉을 수 있겠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읽기 전에 잠시 마음을 단단히 먹는 시간을 갖는 게 좋을 것 같다. 누군가와 친구가 된다는 건, 누군가와 비밀을 나눈다는 건, 가벼운 마음으로 소풍가듯 할 일이 결코 아니다. 비록 그 초대장이 17,000원이라는 화폐를 내면 누구나 구매할 수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