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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정 선생님이 써주신 "길 위의 독서" 서평...
감사함을 따로 표할 길이 없는데다, 기억하고 싶은 서평이라 별도로 옮겨봅니다.
1. <길 위의 독서>를 읽으면서 나도 오랜만에 참 기분이 좋았다. 계속 먹고는 싶은데 그럴수록 비례해서 줄어드는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둔 것처럼 꼭꼭 씹어서 아껴 읽었다. 아래 박형준 교수의 서평도 아주 좋다. 책에 대한 호감을 건강한 거리감을 잃지 않고 드러내면서 또한 책 속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을 특유의 명민한 시선으로 잘 톺아서 보여준다. 좋은 책과 그에 대한 좋은 서평을 읽으니 아무 것도 한 것 없는 내가 새삼 흐뭇하다.
2. 책의 저자 전성원은 <황해문화>의 편집장이다. 내가 이 계간지를 정기 구독한 것도 몇 년 되는 것 같다. 예전만큼 꼼꼼하게 읽지는 못하지만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들에게 많이 추천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사회의 지적, 문화적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최전선의 담론을 가장 치열하게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특히 한창 물이 오른 젊은 학자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감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수준 높은 교양지라 해도 좋겠다는 입장이다.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시공간적 맥락도 다른 유럽이나 영미의 이론을 꾸역꾸역 집어삼키고 어디 가서 설익은 얘기하는 것보다는 살아있는 공부를 위해 훨씬 좋은 방법이다. 한편 <황해문화>가 인천 시민들의 기금으로 만들어진 재단에서 발간된다는 점도 오래 전부터 부러운 대목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사는 도시 부산은 어떤지 또 떠올려보게 된다.
3. <길 위의 독서>가 주는 지적 감동의 핵심은 저자가 이 책을 ‘온몸’ 으로 썼다는 점이다. 통상 사람들은 모든 것이 혼재된 어지러운 세계의 참모습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무리해서라도 양분(兩分)하거나 대별(大別)해서 추상하기를 즐긴다. 하지만 긴장감 없이 그렇게 하다보면 어느새 주객이 전도되게 마련이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못하고 사는 대로 생각하게 마련이다. 이론이든 실천이든 둘 다 필요한 것이고 두 마리 토끼는 의지가 없어서 못 잡는 것일 뿐이란 얘기다. 이른바 ‘문사철’ 이라는 인문학 영역의 학자들 글이 가끔은 지나치게 실존적인 차원에만 치우친다거나 순진해 보이는 이유다. 반대로 사회과학자들의 글은 0과 1 사이에 있는 우주만큼이나 많은 숫자를 제거해버린 디지털의 세계로 인간세상을 파악하려다보니 그럴듯하지만 아무 도움 안 되는 경우도 태반이다. 순수문학이니 참여문학이니 하는 논쟁도,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나로서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4. 저자가 자신의 쓸쓸했을 (객관적 차원에서도!) 삶을 이만큼 완전히 열어서 내놓고, 그때그때마다 의지할 수 있었던 책에 기대 자신과 주변, 나아가 시간과 공간의 맥락을 곱씹어보기로 작심한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공자는 학문을 위기지학과 위인지학으로 나누기도 했지만 역시 후학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예일 뿐 실제로 세상 어느 것도 그렇게 칼로 나누듯 깔끔하게 베어지는 것은 없다. 내가 이 책을 즐겁게 읽은 이유는, 저자의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의 깊이만큼이나 사회의 구조를 살피고 대안을 모색하려는 태도가 섬세하고 치열했기 때문이다.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이라는 그람시의 말을 종종 인용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지난 시간을 짧게나마 함께 걸어보는 것 같은 감동이 있어서 좋았다.
“나만의 시선도 필요하지만, 때론 남의 시선을 빌려서 볼 줄도 알아야 한다. 모순이 균형을 이루는 것과 같은 팽팽한 긴장 속에서 겹눈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문화의 속살,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른 세상의 이면을 살필 수 있다.” - <길 위의 독서>, 291p
5. 서구 근대의 계몽사상가 중 대부분은 이른바 문필가들이었다. 학교에 적을 두거나 등단을 거쳐야만 작가로 인정해주는 이상한 풍습이 우리나라와 일본 말고 또 어디에 있는지 누가 알려주면 나도 이번 기회에 작은 지식 조각 하나쯤 더 얻게 돼 기쁠 것 같다. 전성원 편집장은 우리 사회의 귀한 지식인이라고 생각한다. 이전에 쓴 책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책은 특히 사회학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레포트 과제로 내주기도 했었다. 앞으로 또 어떤 책을 펴낼지 벌써 기다려진다.
6. 끝으로, 교양이란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프랑스 사회학자 미셀 마페졸리는 도덕과 윤리를 구분했다. 사회적 시선을 의식해 지키는 규범을 도덕이라 하고, 타인이나 사회적 규범과 상관 없이 자기 자신이 정해놓고 지키는 규범을 윤리라 했던 것 같다. 교양은 이 둘의 균형을 잡는 일이라 생각한다. 천방지축도 꼴 보기 싫고 순둥이도 꼴 보기 싫어해서, 어찌 보면 사실은 아주 소수의 몇몇을 빼고는 사람을 깊게 사귀지 않으려는 내 천성이 못 되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책 속에서도 교양을 이렇게 정의했는데 기억에 남았다. 영어로도 liberal art 라고 표현하니 곱씹어볼 만 하다.
“교양이란 한 인간을 세상 속에서 자유로운 개인으로 성장하도록 만드는 모든 것을 의미하며 진정한 소유는 이 세계 속에 나만의 고유한 자리를 갖는 것이요, 자신만의 자유로운 시간을 소유하는 것이다.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것(교양)을 바탕으로 세상과 교류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세상을 소유하는 일이기도 하다.” <길 위의 독서>, 314p
p.s 저자인 전성원 편집장님은 정말 행복하실 것 같다. 박형준 선생은 워낙 타고난 평론가라 그렇다쳐도 나는 남의 책 얘기는 이렇게 길게 잘 안(못)쓰는데... ㅎㅎㅎ 게다가 독서모임에서 이 책 추천할 참이었는데 벌써 다른 분이 추천하셔서 나는 그저, 뉘에뉘에 동의만 했다는 사실. 많은 분들이 이미 책의 진가를 알고 입소문을 내고 계신 것 같으니 대박 나시길 진심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