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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상황도 끝이 가까워졌단다. 많은 이들이 바로 그 끝이 다가왔을 때 죽었지. 내가 또 하루를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어, 한 러시아 농부가 내 꼴을 보고는 자기 집으로 들어가더니 나에게 줄 고기 한 조각을 갖고 나왔단다."
"그 농부가 할머니 목숨을 살렸군요."
"난 먹지 않았다."
"안 드셨다고요?"
"돼지고기였어. 난 돼지고기는 절대 먹지 않아."
"어째서요?"
"어째서냐니?"
"그게 코셔가 아니라서 안 드신 거예요?"
"하지만 먹으면 목숨을 구할 수 있는 데도 안 드셨단 말이예요?"
"중요한 게 아무 것도 없다면, 지켜야 할 것도 없는 법이란다."
- <물건 이야기 : 너무 늦기 전에 알아야 할> | 애니 레너드 (지은이), 김승진 (옮긴이) | 김영사 | 2011년 5월, 28~29쪽.
* 코셔(Kosher)는 유대인의 율법을 따르는 정결한 음식
1980년대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1990년대를 '거대한 변절의 시대'로 기억한다. 우리가 운동에 대해, 정치에 대해 냉소하게 된 까닭도 그 시대를 거치면서 받았던 충격과 실망이 너무나 컸던 탓이다. 그때의 충격과 실망은 우리 안에 체화된 냉소와 무관심으로 남았다.
우리는 모두 한때 운동가였고, 기꺼이 스스로를 희생해 좀더 큰 대의를 위해 헌신할 것을 맹세했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세상은 좀더 섬세한 민주주의를 요구했고, 우리는 구체적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일상의 현장으로 돌아갔다. 이후 어떤 이들은 정치를, 또 어떤 이들은 학원이나 기타 여러 분야에서 사업체을 운영하는 사람이 되기도 했다.
나는 일상의 현장에서 무슨 일이든 밥벌이 자체를 뭐라고 나무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저자 애니 레너드의 할머니가 했던 말이 아닐까 싶다.
"중요한 게 아무 것도 없다면, 지켜야 할 것도 없는 법이란다."
당신이 정말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을 지켜야 한다. 일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일단 생존이 우선이기 때문이란 미명 아래 조금씩 양보하는 동안 당신은 본래의 당신이 사랑하고 지키고자 했던 그 사람에서 우리가 그토록 극복하고자 했던 그 사람으로 변모해 가기 때문이다.
68혁명 당시 어떤 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이 해결의 편에 서지 않는다면 당신도 문제의 한 부분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