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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가 보기에 공화정이 타락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무기를 독점하고 또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이 무기를 쓰는 상비군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상비군은 ‘자유’가 ‘폭정’으로 타락하는 주된 원인이기 때문에, 공화정을 수호하고 폭정으로의 타락을 막는 방법 중의 하나는 개별 시민이 시민인 동시에 전사가 되는 것, 즉 시민으로 구성된 민병대가 상비군의 역할인 대내 질서의 유지와 대외 방위를 수행함으로써 권력이 인민의 자유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부단히 견제하는 것이었다 (…) 제임스 매디슨이나 조지 워싱턴이 시민의 무기 소지를 보장한 미국 헌법을 두고 ‘미국의 우월성’이라고 평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 권용립, "미국의 정치문명", 삼인, 2003, 193-194쪽.
1.
미국에서 총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등장하는 '국립총기협회(National Rifle Association)' 이른바 NRA문제와 총기난사사건에 대해 과거에 썼던 글을 조금 수정하고, 추가하여 올려본다.
국립총기협회로 번역하니까, 미국 정부에서 만든 단체쯤으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미국에서 '내셔널'이란 그저 역사와 정통성 있는, 약간 더 우월한 단체란 의미이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국가가 설립한 단체란 의미에서 '국립'과는 무관하다. 우리가 일본의 가전제품 메이커인 파나소닉의 브랜드 중 하나였던 '나쇼날'을 '국립'으로 번역하지 않듯이 말이다.
위의 권용립 선생의 글을 인용한 것을 보면 알겠지만, 미국에서 총기 문제는 미국의 건국 이데올로기(신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런 차원에서 한국의 반공이데올로기와 흡사하게 작동된다. 미국의 보수우파에게 '리버럴'이란 말은 우리의 '빨갱이'란 단어가 지닌 뉘앙스와 비슷한 편이다. 물론 미국에서 '리버럴'로 분류된다고 해서 감옥에 가거나 죽음에 이르는 경우는 드물지만 말이다.
어느 사회든 정치적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 중요한 갈등 요소가 있기 마련인데, 미국에서는 '낙태'와 '총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우리가 주의해서 살펴보아야 할 대목은 한국에서 '리버럴'이 '진보적 의제'에 대해 호의를 갖고 있는 '개인주의'적 성향의 사람으로 분류된다면, 미국에서 '개인주의'는 '보수적 의제'이며 공화당 지지자들의 의제이기도 하다.
수정 헌법 제 2조는 "잘 규율된 민병대(militia)는 자유로운 주(State)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사람들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에서 '개인주의'가 '보수적 의제'가 되는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으며, 앞으로 한국의 보수도 그나마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 변모한다면, 그렇게 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이에 대해선 나중에 R.니스벳과 같은 신보수주의 학자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다면 다뤄보도록 하겠다. 미국의 독립전쟁에서 민병대는 중요한 군사자원이었고, 이들의 참여가 군사적 의미에선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정치적으론 매우 큰 의미가 있었다(이 지점에선 영화 <패트리어트: 늪속의 여우> 같은 것들을 참고하시라).
이후 남북전쟁은 흑인노예해방에 대한 연방정부의 지침과 정책에 대해 지방자치정부(주정부)의 독립성과 관련한 이슈가 무력충돌로 비화된 사례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개인은 시민계약론에 기초한 정치적 주권자로서 연방정부의 통치(또는 독재)에 대해 시민 개개인은 총기로 무장하여 봉기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런 의미에서 NRA는 단순한 총기로비단체가 아니라 일종의 시민단체이며, 시민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분투하는 정치단체가 된다.
이렇게 보면 'NRA'가 마치 보수적인 미국 남부에서 자생한 단체로 여겨지기 쉬운데, 그 출발은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사격술이 너무나 엉망이란 사실에 경악한 북부에서 시작되었다. 미국하면 총기의 나라이고, 사격술이 뛰어날 것 같지만, 1~2차 세계대전은 물론 베트남전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물론 베트남전에서 승리한 것은 아니지만)은 보병의 뛰어난 사격술이 아니라 놀라운 병참능력 덕분이었다.
2.
뉴욕타임스는 지난 1999년 4월 콜로라도 주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컬럼바인 총기 참사' 이후에 태어난 세대를 '총기 난사(Mass Shooting) 세대'로 규정했다. 우리에게 IMF 외환위기 이후 태어난 세대가 경제위기가 기본 탑재(디폴트)된 세대 출현의 분곡점이라면 미국 역시 컬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이후 출생한 세대에게는 총기 난사가 일상화되었다는 의미다.
“악마가 찾아왔다.”
2012년 12월 14일에 일어난 미국 코네티컷주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참사에 대해 코네티컷 주지사 다넬 맬로이(Dannel Malloy)가 내뱉은 탄식이다. 20살 먹은 범인 애덤 랜자(Adam Lanza)는 AR-15 반자동 소총을 난사해 6~7세 어린이 20명과 교직원 6명을 살해했다. 당시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은 희생자 추모집회에 참석해 애도 성명을 발표하면서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훔치며, ‘폭력’을 근절하는 데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동원하겠다고 했지만, 끝끝내 ‘총기 규제’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오바마는 며칠 후인 19일 백악관에서 연 특별 기자회견에서 총기규제법안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개인의 총기 소유를 보장한 수정 헌법 2조는 존중한다”는 말을 해야만 했다. 그로부터 한달 보름 정도가 지난 2013년 2월 2일 백악관은 오바마의 사격 장면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공화당 하원의원 마샤 블랙번(Marsha Blackburn) 등이 "오바마 대통령은 총을 쏴 본 적이 없을 것이다"고 비판한 것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이번에 일어난 플로리다의 총기난사사건 역시 지난 2012년에 문제가 되었던 코네티컷과 동일한 총기 AR-15로 벌어졌다. 참사 직후 번번이 그랬던 것처럼 '총기 소지 자유화' 문제는 뜨거운 이슈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조짐은 총기 자유화 폐지가 아닌 이제 교사들도 무장하라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벳시 디보스 미국 교육장관은 학교가 교사들을 무장시킬 '선택권'이 있다고 밝혔다. 한 인터뷰에서 다보스 장관은 "총기 참사이 일어나는 것을 막고, 안전한한 학교 환경을 보장하기 위해 논의돼야 할 일 가운데 하나라며, 교사도 총기를 소지할 수 있도록 검토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총기 폐지가 아닌 총기 소지를 강화해 교내 총기 범죄를 막야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이 아니라 교사의 총질은 누가 막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3.
이런 상황이고보니 한국은 총기가 자유화되지 않아서 그나마 살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슬프게도 한국의 현실이 청소년들에게 살기 좋은 나라라고 말하기는 좀 어렵다. 우리 청소년들이 총기를 난사하여 타인을 살해하지는 않더라도, 반대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너무나 자주 목격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10대~3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고, 인구 10만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10.1명인데 비해 자살은 그 2.5배인 25.6명에 이른다. 한국은 지난 2003년, 한 해 자살자 1만 명을 넘어선 이래 2015년까지 해마다 1만 명이 넘게 자살하는 OECD 기준 부동의 자살률 1위 국가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