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후소(繪事後素)
子夏問曰巧笑倩兮며 美目盼兮여 素以為絢兮라하니 何謂也잇고 子曰繪事後素니라 曰禮後乎인저 子曰起予者는 商也로다 始可與言詩已矣로다.
(자하문왈교소천혜)며 (미목반혜)여 (소이위현혜)라하니 (하위야)잇고 (자왈회사후소)니라 (왈례후호)인저 (자왈기여자)는 (상야)로다 (시가여언시이의)로다.
자하가 물었다. “‘교묘한 웃음가에 패인 보조개여, 아름다운 눈매에 또렷한 눈동자여, 소박한 마음으로 화려한 무늬를 만들었구나’하였으니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뒤이다[繪事後素]” “예(禮)는 나중이군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일으키는 자는 상(商)이로다. 비로소 함께 시(詩)를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
출전: 『논어(論語)』 「팔일(八佾)」편
-------------------------------------
공자의 제자 중 자하(子夏)란 이가 있었다. 자하는 공자의 여러 제자들 가운데 뛰어난 공문십철(孔門十哲) 중 한 사람으로 시(詩)와 예(禮)에 특히 능한 인물이었다. 지금의 『시경(詩經)』에는 없지만 공자 시대의 시경에는 “교묘한 웃음가에 패인 보조개여, 아름다운 눈매에 또렷한 눈동자여, 소박한 마음으로 화려한 무늬를 만들었구나”라는 시가 실려 있었다. 자하는 이 시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스승인 공자에게 묻는다.
여인이 미소 지을 때 볼에 패는 보조개와 또렷한 눈동자, 아름다운 눈매를 가리켜 화려한 무늬라 표현한 시인의 마음은 알겠는데, 이것을 만든 것이 어째서 소박한 마음이냐는 물음이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스승 공자는 그림 그리는 것에 비유하여 말한다. “繪事後素” 그림을 그려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내는 일 역시 하얀 바탕이 있은 뒤라야 가능하다는 뜻이다.
여인의 얼굴에 피어난 아름다움, 화려한 무늬 역시 그 여인의 본바탕이라 할 수 있는 마음이 아름답기 때문이란 말이다. 가수 남진의 히트곡 <마음이 고와야지>의 가사에 나오는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가사 그대로다. 사실 공자의 “繪事後素”란 말은 동양의 화론(畵論)을 펼쳐가는 제1경(第一徑)에 해당하는 말이기도 하다.
시와 예에 뛰어난 제자답게 자하는 공자의 말을 단박에 알아들은 뒤 그것을 자기 방식으로 응용하여 이야기한다. “예(禮)는 나중이군요”라는 말은 형식으로서의 예보다는 그 본질인 인(仁)이 더욱 중요하고, 인이 있은 뒤에라야 예가 의미 있다는 깨우침을 이야기한 것이다. 『논어』는 사제지간의 담화(談話)를 기록한 책인데, 책을 살펴 읽다보면 스승 공자는 때로 제자를 날카롭게 야단치지만 때때로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는 자애로운 인격을 보여준다.
공자는 자하의 깨달음에 크게 기뻐하며 도리어 제자 자하(商)에게 자신이 한 수 배웠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를 스승과 제자라고 하지만, 공부하는 것을 누구보다 즐겨했던 공자는 평생 배움을 업으로 삼는 학생(學生)으로 살았다. 그는 제자의 반문과 힐난으로부터도 배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열린 스승이었다. “繪事後素”란 말에는 단순히 ‘사람은 좋은 바탕이 있은 뒤에 문식(文飾)을 더해야 한다’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같은 사제지간의 교유를 밑바탕으로 교육이란 단순히 가르칠 교(敎)뿐만 아니라 기를 육(育)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지식만 가르치고 인성을 길러주지 않는다면 먹이를 주되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