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전 한 여고생에게 이런 내용의 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아저씨는.. 17,18살때 생각하던것들... 아직도 생각하나요? 그땐 어렸고 아무것도 몰랐었다고 생각되나요. 아저씨 정도 되는 나이의 사람에게 물어보고 싶었어요." 라는....
솔직히 제가 겉으로는 나이를 먹고, 장가도 가긴 했지만 스스로를 어른이라거나 어른스럽다고 여긴 적은 별로 없었어요. 지금의 저는 어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리고, 철딱서니가 없으며, 게다가 싸가지도 없기 때문에..... 하지만 우습게도 저는 국민학교 2학년 무렵에 이미 세상의 모든 비의를 깨우쳤다고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에.... 어른들의 세계가 깜냥없이 우스워보였습니다.
느끼기에 따라 저역시 망각의 강을 흘러 온지 오래인 듯 하지만 저는 17살 무렵의 막막한 제 삶의 한 자락이 지금도 내 마음 속에 시냇물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철따라 피고 지는 꽃들처럼..... 제 마음도 철따라 그렇게 매년 17살 혹은 다른 어느 연대기의 한 시절을 그날그날 기억하는 거죠. 아마도 저는 그 여고생에게 이런 답신을 보낸 듯 합니다.
"누구나 그 나이에서 세상을 보고, 그 순간엔 늘 세상의 모든 것을 안다고 여깁니다. 저 역시 그 순간에 세상을 다 알았고, 지금도 그 순간에 이미 세상을 다 알았었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서도 역시 세상은 알듯 모를 듯 합니다. 우리는 늘 그 나이에 아니, 그 자리에서 모든 세상을 알고 있지만 또한 아무 것도 모르는 거죠. 당신에게 만약 어떤 어른이 좀더 나이가 들어보면 세상을 알게 될 거라고 충고한다면 그 말을 믿지 마세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앞으로도 아무 것도 모를 사람일 테니. 그러므로 지금 당신은 당신의 시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면 됩니다. 다만 이거 한가지만 기억하고 있으면 됩니다. 흘러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거. 그러므로 지금 당신은 당신의 시간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시길."
저는 기타노 다케시를 참 좋아하는데 그의 영화는 거의 대부분을 보았습니다. 물론 그 인간은 욕심도 많아서 시집까지 냈지요. 이 글의 제목인 키즈 리턴은 그의 영화 제목이자 시집 제목이기도 합니다. 이카루스의 운명이 만약 태초에 정해진 것이어서 그가 태양 가까이 비행하면 결국 밀랍으로 붙인 날개가 그 열기를 견디지 못해 녹아 떨어지고 말 것이겠죠. 그것은 이미 태초에 정해진 운명일 겁니다. 이카루스가 그걸 알았다 한들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면 그리고 그가 바로 저였다면 저는 아마도 내가 날아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까지 날아 오를 겁니다. 비록 한 순간이라도 세상의 나의 발밑에 두고 비웃으며 떨어질 겁니다. 그리곤 세상을 향해 곤두박질 칠 겁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무런 허우적도 없이 지상을 향해 곧장 떨어지고 싶습니다. 무서운 속도로 대지와 입을 맞추고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두개골이 터져나오고, 두 눈알이 빠져나오는 정경을 보겠습니다.
영화 <키즈 리턴>이 정말 슬펐던 건... "마쨩 우리 이제 끝난걸까? " "바보, 아직 우린 시작도 안했잖아." 라는 대사 때문이었음을....문득 떠올리게 됩니다. 이카루스가 부러운 건....그가 추락할 만큼 날아올랐기 때문이겠죠. 추락하고 싶다면 먼저 날아오르라! <2003/03/0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