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천문학"에 원고를 하나 넘겼다. 마감을 며칠씩 늦춰가며 글을 썼지만 글이 탐탁치 않았다. 마음속에 불이 있어야 글이 잘 써지는 법인데, 내 마음에 불길을 태워줄 연료가 바닥난 기분이다. 몇 년 동안 쉬지 않고 글을 써댄 결과라고 한다면 차라리 속이라도 편할 텐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마음속 불길이 헉헉대는 이유는 그게 아닌 성 싶다.
후배에게 글을 보여주었더니 형 같지 않게 글에 매가리가 없다 한다. 쓰는 동안에도 너무 평이하단 생각이 들었으나 아마도 그건 내 안에 불길이 잦아든 결과가 아닐까 싶다. 내가 믿지 못하겠는 상황에 대한 글쓰기가 쉬울리 없으므로...
잠시 전 한겨레 기자가 전화(아마도 인터뷰한 모양이다)를 해서 "금서연구" 중이지 않느냐고 묻기에 논문 준비 중이라고 했더니 국방부에서 병영의 병사들에게 읽지 말라고 하는 책이 있다고 한다. 책의 목록을 들어보니 "소금꽃나무", "착한 사마리아인", "대한민국사" 같은 이른바 양서로 손꼽을 만한 것들이 대다수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런 이야기를 했다. 국가가 과거 사상검증을 시도한다는 명목으로 금서목록을 만들고 이를 통제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청산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결과가 현재와 같은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개인이 철저하게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냐, 그러나 국가를, 국가권력을 철저하게 바로잡는 일은 개인이 스스로 철저하게 사는 일보다 몇 배, 몇 십배는 어려운 일이다. 그 때를 놓치면 민주주의는 상식이 될 수 없다. 민주주의가 상식인 나라, 남녀차별이 없고, 개발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 상식인 나라가 되는 일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다시 한 번 그 기회를 놓쳤다.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가 이 꼴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것이고, 저런 것이고, 글로 옮기거나 말로 담기가 힘들다. 아니, 어쩌면 싫은가보다. 그저 물 좋은 곳에서 며칠이고 몇달이고 숨어 살았으면.... 간혹 권리 위에서 잠자는 시민에겐 권리가 없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모든 시민이 자기 권리를 찾자고 나서는 것도 볼만한 광경이리란 생각이 든다. 시민들이 권리 행사를 요구하기 전에 먼저 국가가 나서 권리를 보전해주고, 편하게 행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 그런 나라가 좋은 나라가 아니냐.
그냥 내 한 몸 사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힘든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