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 시절에 나는 꽤나 먼 거리의 학교를 다녔더랬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무렵의 내가 엄청난 날씬했던 것은 죄다 학교가 엄청 먼 곳에 있던 덕을 본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현재의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당장이라도 그만한 거리를 걷도록 날 부추길지도 모르겠다만.....흐흐. 하여간에 버스 정거장 식 계산 법으로 하더라도 일곱 정거장 정도를 걸어가야 했으니, 이만저만 먼 것이 아니었을 텐데.
지금 인터넷으로 곧잘 팔리는 왠갖 불량식품을 파는 문방구 겸 떡볶이 가게들이 즐비한 골목이 학교 들어가는 입구에 좌악 펼쳐져 있었다. 그때는 떡볶이 판매의 기본 단위가 10원 단위이었는데 10원에 한 접시 줄 정도는 아니고, 접시 단위로는 50원부터 한 접시였다.
50원 어치에 떡을 한 20개 정도(정말로 그때는 세서 팔았다. 지금처럼 아줌마가 어림짐작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마치 떡꼬치에 떡 꽂듯 그렇게 말이다. 흐흐, 팔면서 동강난 녀석은 비슷하게 동강난 다른 녀석을 가져다 맞춰서 한 개를 만들어 주곤 했다.) 주었는데 10원 어치면 이쑤시개(포크) 들고 서서 마치 오뎅 꼬치 먹듯 갯수를 세서 먹어야 했다.
나는 초등학교 다니는 내내 그놈의 떡볶이에 한 맺힌 기억이 있었다. 늘 얻어먹기만 하고, 친구들에게 떡볶이 한 번 제대로 사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돈이 없으니 사줄 수가 없었고, 그 때는 왜그리 융통성도 없었는지 어른들에게 고지식하게 물건값을 10원 단위까지 정확하게 말하고 돈을 타가야 하는 줄 알았다.
이미 좀 깨친 부모들은 아이들 생일에 친구들 불러다 요새처럼 피자 파티는 못해줄 망정, 동네 제과점에서 케익이랑, 집에서 만든 떡볶이랑 해서 한 상 푸짐하게 차려줄 줄 알았던 시대의 시작이 바로 내 세대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도 가끔 소수의 눈삔(?) 불행한 여 급우들이 챙겨주는 생일선물과 카드 이외에는 생일 같은 건 꿈도 못 꿀 일이었다.(심지어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의 생일과 또 언제더라 하는 생일엔 온 가족이 기억못하고 넘어가는 일도 있어, 아침 밥상에 은근히 미역국과 잡채 정도는 있겠지 기대했던 내 맘을 슬프게 한 일도 있었다.) 3학년 때까지 아침반, 오후반이 있는 2부제 수업을 했고, 담임 선생님이 도시락 뚜껑을 열고 일일이 혼분식 검사를 하기도 했던 시절의 학교 생활이었고, 온나라 어린이들이 가슴팍에 새마을 운동 구호가 새겨진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노란색 이름표를 달고 다녀야 했던 시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무렵 학교에서 일괄적으로 통장을 만들게 했다. 아마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새마을금고'란 금융기관에서 나와 전교생들에게 일괄적으로 통장을 만들게 해 적금 통장 식으로 저금을 하게 만들었는데 졸업할 때까지 돈을 부으면 나는 한 천오백원 정도되는 돈이 생기게 되어 있었다. 물론 적금은 당연히 부모님들이 내는 돈이었지만...그것도 제때 안 맞춰 내면 담임선생님의 눈총을 받아야 했던 그런 시절이었다. 하다못해 초등학교 육성회비가 얼마나 된다고 내가 다니던 학교 아이들의 3분지 1 정도는 그나마도 밀리곤 했다.
하여튼 졸업할 무렵이던가, 아니면 중간에 그런 제도가 없어져 버렸던지 해서 아이들에게 일괄적으로 새마을 적금이 지불되었는데 한 1000원 정도 되는 돈이 나와서 그걸 집에 가져다 드린 적이 있다. 그때 그 돈이 내게 얼마나 큰 돈으로 여겨졌는지는 불문지사.
바지춤에 꼭꼭 접어넣고, 한 손으로 꼭 쥔 채 집에 갈 때까지 그 손을 빼지 않았다.
그리고 그 돈을 당시 집안 회계를 담당하던 작은 어머니께 드리면서 아마 나는 처음으로 혼날 각오를 하고, 500원을 타낸 것 같다. 초등학교 4학년 소풍 때 김밥 도시락 대신에 돈으로 1000원만 달라고 했다고 막내 고모부터 시작해서 집안 어른들에게 치도곤을 당한 생각을 하면 간뎅이가 부어도 이마저만한 일이 아니었을 텐데...작은 어머니는 무슨 생각에서 이신지 내게 500원을 주셨고, 나는 그 돈으로 평소 은혜(먹을 걸 사줬다던지, 예쁘게 보인)를 입은 친구들을 정확히 10명을 선발해 학교 앞 떡볶이 집으로 데려갔다. 그래봐야 한 사람 앞에 떡볶이 50원어치 였을 텐데....
지금도 그날의 내 호기롭던 목소리가 기억나는 듯 하다.
"아줌마! 여기 떡볶이 50원 어치씩 담아서 나눠주세요. 그리고 오뎅 국물은 마음대로 가져다 먹어도 되죠."
......지금 상상해봐도, 어쩜 저리도 궁핍했을까 싶게 지지리 궁상을 떤 셈이지만, 나는 그날 하루만큼은 하늘을 날아갈 것처럼 황홀했고, 내내 알 수 없는 떳떳함에 몸서리를 쳤다. 그깟 떡볶이 50원 어치가 뭐 그리 대수였을까.
그러나 늘 얻어만 먹던 내내 나의 심장은 오그라들 대로 오그라들었으리라. 그 때 내게 떡볶이 얻어먹었던 녀석들은 그런 내 마음을 알았을지..... 나는 지금도 떡볶이 매대 앞으로 지날 때마다 그날의 떡볶이 50원어치 한 접시를 생각한다. 분명한 건 그날의 떡볶이 맛을 능가하는 떡볶이는 아직까지 만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늘 먹을 것에 감격해 하는가 보다. 떡볶이 50원 어치의 행복은 그후 먼길 떠나는 친구에게 삼겹살 1인분과 소주 한 병이 되어 날 또 그렇게 소갈머리없이 감동시키기도 했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따뜻한 한 사발의 밥에 대한 기억이 오늘날까지 날 버티게 해주는 것이리라 믿는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