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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을 하다가 도착한 곳이 "바람구두의 문화망명지"였다. 그 곳은 여느 블로그와 달랐다. 방대한 넓이와 깊이를 지닌 자료들이 적재된 보물창고 였다. 문화, 예술, 시, 사진...심지어 음악까지! 즐겨찾기를 해 놓고 가끔씩 들러 그가 읽은 시를 야곰야곰 빼먹었다. 당연히 누가 방대한 자료를 축적했는 지 궁금했다.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그렇군... 그러다가 그의 삶의 이력을 알아가면서 요즘 말로 깜놀 했다. 문화망명지에서 읽은 글의 깊이에 비해 속세에서 흔히 말하는 '가방끈'과 걸어온 길이 예사롭지 않게 남달랐기 때문이다.
그 뒤로 학생들에게 공부와 책읽기의 올바른 예를 들어 이야기하고자 할 때 그를 교실에 불러오곤 했다. 학벌이 아닌 독학으로 일구어 낸 그의 공부 과정을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본받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얼마 후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를 통해 그가 관심갖고 공부하여 축적한 지식과 지혜에 다시 탄복했다.
운좋게 페친이 되어 궁금한 점이 있으면 그에게 질문을 하곤 했다. 답변은 늘 막힘이 없었다.
'도대체 이 사람은 모르는 게 뭐야? 늘 바쁘다를 입에 달고 살면서 그 많은 책은 언제 읽는거지? 왜 책을 또 안 펴내는 걸까?'
그러던 차에 "길 위의 독서"가 세상에 나왔다. 내 짐작과는 다른 내용의 책이었다. '헝겊 토끼의 눈물', '떠돌이 개',...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라니!
물방울에도 작은 우주가 깃들어 있다는 말처럼 그는 쉬운(?) 책으로 자신이 걸어온 길을 들려주었다. 같은 길을 걸어도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것을 본다. 어린이 책이라 분류되는 책에서 삶을 읽은 그의 심성이 새삼 기껍다.
<1부 자기성장의 길>에서 다룬 책들은 독자가 편하게 여정에 동참할수 있도록, '나도 이 책은 읽었어!'라 할만한 책으로 풀어 나갔다. <2부 타인의 고통>에서부터는 조금씩 무게감을 더해간다. 하지만 등산으로 비유하자면 암벽등반이 아니라 전문안내인과 함께하는 히말라야 평원 트래킹 정도라 읽기에 좋다. 물론 읽는 이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하는 예리함이 적절하게 자리하여 마냥 긴장을 놓을 수 만은 없는 것도 장점이다.
"아프리카의 스와힐리족은 사사 sasa와 자마니 zamani 라는 독특한 시간 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죽은 이를 기억하는 한, 죽은 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여전히 '사사'의 시간 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그를 기억하는 이들마저 모두 죽어서 더 이상 기억해줄 사람이 없을 때 망자는 비로소 영원한 침묵의 시간, 즉 자마니로 떠나게 된다."
위의 내용을 보고 어떤 영화가 떠오르지 않는가?
"코코". 요즘 좋은 평을 받고 관객도 많이 드는 애니메이션이다. "토토"의 줄거리는 '사사와 자마니'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상에나! 저자는 이런 지식을 어딘가에서 읽었다가 적절한 문맥에 가져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일까? 그의 책읽기가 부럽다.
'사사와 자마니' 처럼 곳곳에서 빛을 발하는 인용구들.
"막스 베버에 따르면 권력이란 권력욕이기 보다는 권력감정이다."면서 베버의 글을 가져와 폭력을 본질을 설명하는 문장처럼 인용구들은 적절하게 쓰여, 뽐내려고 인용하는 현학적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나도 책을 읽으며 밑줄은 많이 긋는다. 하지만 옮겨쓰고 정리하며 나의 생각을 덧붙이는 작업은 거의 하지 않는다. 저자처럼 명철한 생각을 담은 글을 쓰려면 필요한 작업일터인데 이제라도 흉내 내볼까 잠시 고민하다가 곧 접었다. 지금까지 해왔듯이 최소한의 문장, 아래처럼 내가 관심 갖고 있는 분야의 글들 정도만 꼭 챙겨둘 생각이다.
"예술(스토리텔링)은 수많은 기억의 다발들을 묶고(텍스트화), 편집(의미부여)하여, 독자들에게 이해와 공감을 얻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다."
나는 저자가 좀 더 자주 책을 펴내주기를 바란다. 그가 페북에 올리는 글들만 잘 정리해도 좋은 책이 만들어 질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성공회대에서 강의하고 있는 "책과 사회의 문화사"를 펴내주면 어떨까 싶다. 그가 간간히 소개하는 강의 개요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데 강의 내용이 자세히 보태지면 무난함을 넘어 좋은 책이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앞으로 저술에서 정치를 대상을 하는 사회분석과 비평류의 책보다는 문화와 예술을 주제로 다루어주었으면 좋겠다.
저자가 책에서 밝혔듯이 "얼마간의 굴욕을 지불해야 살아갈 수 있는" 삶에서 신물나는, 그렇지만 외면할 수 없는 권력과 자본에 대한 비판도 필요하다. 그런 일은 저자의 능력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문화와 예술'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넓히고 밝혀주는 것이 더 파급력이 크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이것은 온전히 개인적인 욕심에 근거한 제언이다.)
나는 불행하게도 학교에서 '삶의 선생님'으로 새기고 싶은 분을 만나지 못했다. 대신 사회에서, 책을 통해 '선생'으로 점찍은 분들을 만나왔다. 저자도 그런 분 중의 한 사람이다. 그가 알려준 책 중에서 '절망의 끝'을 구입했다. 그가 걸은 '독서의 길'을 나도 걷고 싶기 때문이다.
* 사실 이제 책의 딱 절반을 읽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소감을 밝히는 까닭은 나의 벗들에게 조금이라도 빨리 #길위의독서 를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혜량하시기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