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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젠가 "이제 그만 자유롭게 살아도 되지 않느냐? 프리랜서로 나올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는 이들은 이미 아는 이야기일 테지만, 출판계가 아무리 짜다고 해도 "황해문화"가 그리 넉넉한 곳은 아니다. 편집말고도 해야 할 일은 많고, 기대치는 높고 게다가 영감님은 물론 다른 동료들과 형성된 특별한 관계와 분위기 역시 좋을 때는 좋지만, 때로는 큰 하중으로 돌아온다. 언젠가 내가 이곳을 떠나게 될 날이 올지라도 나는 한 줌의 후회도 남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온마음과 정성으로 일했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만22년, 편집자 생활 24년의 경력으로 어디 가서 월급 이야기를 하기 남부끄럽다. 솔직히 나처럼 게으른 사람, 또는 글이 돈이 되는 일, 말이 돈이 되는 것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 때로 돈독 오른 사람처럼 일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월급만으로 살기 빠듯해서다.
안 그런 사람 어디 있겠냐만, 어쨌든 나는 그렇다. 새얼에서 "황해문화" 만드는 일을 내가 할 수 있는 하나의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토록 오랜 시간 버텨내지 못했을 게다. 저술가의 삶을 살든, 저술과 강연, 강의를 병행하는 프리랜서 또는 자영업자로 산다는 것은 주변의 사람들을 살펴보아도 결코 쉬워보이지 않았다는 것도 큰 이유였다. 나말고, 내가 나의 가족들에게 허용할 수 있는 '자발적 가난'의 한계가 딱 여기까지이기도 했다.
그것은 나의 문제이고, 결국 내가 해결하면서 짊어지고 가야할 몫이지만, 1인 출판사 3,000개의 시대, 우연한 행운으로 만들어지는 베스트셀러를 제외하곤 1쇄도 넘기기 어려운 출판의 현실, 출판종수는 어마어마하게 늘어나고 있지만 돌아서면 절판되고 마는 현재 우리 출판의 구조에 대한 생각은 결국 우리 사회의 구조로 연결된다.
2.
지식이 힘이라고 말하고, 너도 나도 앞장서서 공부를 이야기한다. 공부에는 두 가지 갈래가 있다. 하나는 개인의 입신출세를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식이 힘'이라는 말을 반(半)만 믿는다. 다시 말해 공부, 또는 우리가 지식을 얻는 수단을 여전히 책에 의지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한다면 어떤 이들이 말하는 책이 이렇게 안 팔릴 이유가 없다. 문제는 사회가 요구하는 공부나 지식이 지혜이거나 비판적 지성이 아니란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의 공부는 절대적으로 개인의 입신출세를 위한 공부이며, 이 공부의 핵심은 변별력에 있다. 나는 이에 대한 비유로 종종 탤런트 고현정 씨에 대해 떠도는 이야기를 예시하곤 한다. 대재벌가의 며느리로 결혼한 고현정 씨가 가족과 마주한 식탁에서 가족들은 모두 영어로만 대화한다. 영어를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식탁에서의 대화에 참여할 수 없었던 고 씨는 죽어라하고 열심히 영어를 공부했다. 드디어 말문이 트여 식탁 위의 대화에 참여했더니, 그 순간 가족들은 곧바로 불어로 대화하기 시작했다는 떠도는 이야기 말이다.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
출신이나 가문 등 선대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이 아닌 능력이나 실적으로 평가받는 이른바 '학력주의 또는 실적주의, 실력주의'는 그 자체만 놓고 보면 공정성과 투명성을 담보한 변별력을 기준으로 삼는다. 이와 같이 남과 다른 변별력을 쌓기 위해 하는 공부가 실제 삶을 영위하는데 도움을 주거나 업무에 필요한 능력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런지는 알 수 없다. 우리 사회의 과잉 학력주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대학 졸업장만 양산하고 있으며, 대학의 위기, 학력거품만 부풀리고 있다.
돌려막기 하고 있는 이 풍선 폭탄은 조만간 우리 머리 위에서 터지고 말 것이다. 출판의 위기에 대해 말하면서 너무 멀리 온 것 같지만, 결국 딜레마는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지식, 인재의 선발 기준과 그 모습이 변화하지 않고서는 결코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우울한 전망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지식의 모습은 '진지충'이라 불릴 수밖에 없는 고민하는 출판편집자들에게는 답을 제공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는 계기나 기회가 외부로부터 오고, 외부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는 사람을 나는 '노예'라고 부른다. 국민 대다수를 노예화하는 공부와 지식을 향해 달려가도록 만드는 사회와 교육현실 앞에서 그 답을 자신의 내부에서 찾고, 사회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책을 읽는 자는 언제나 불온한 존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회적 인재로 인정받기 위해 죽어라 공부해도 결국 그보다 나은 출발선에서 시작한 사람들과 경쟁하는 것을 공정하고 평등한 기회라고 부르고 믿는 사회에서 정의는 결코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젊은이의 양지"에서 조지 이스트먼의 희망은 어떻게 좌절되었던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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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한 바가지의 물이 필요한 사람에게 장강의 물을 끌어들이고 말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