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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은 오래된 옛 이야기도 생명이 있다고 믿었다. 이야기를 불러내 아이에게 들려주는 것은 아이를 위해서인데도, 할머니는 이야기가 굶지 말라고 해주는 거라 하셨다. 글이 아닌 말로 된 이야기(민중서사)는 이처럼 망각에 저항해 기억을 전승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하나 풀어내면 그 뒤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아랫글은 “길 위의 독서”를 읽고 어느 분이 남긴, 당신이 체험한 생생한 이야기이다. 87년 6월이 대학생의 것, 7~8월이 노동자의 것이었다면, 89년은 중고등학생의 것이었으리라... 필자가 친구공개로 올린 글이라 허락을 받고 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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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원 작가의 ‘길위의 독서’를 마지막 구절까지 읽고 책을 덮었다.
이미 화석이 돼버린 오래된 기억들이 한꺼번에 소환되는 느낌, 잊었던 상처들이 너무나 생생히 살아나서 읽는 내내 몇 번이나 숨고르기를 했다.
작가는 1987년 서울지역고등학생운동연합을 결성해 교육민주화를 외치며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벌인다.
나는 1989년 고3이었고, 명신여고에 재학 중이었다. 사학비리문제로 학내에서 농성이 벌어졌고, 8분의 선생님이 해직됐고, 7명의 학생이 퇴학, 무기정학, 유기정학을 받고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100일이 넘는 시간동안 1천여명이 넘는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산곡동 도로에서, 평민당사, 카톨릭회관, 답동성당, 인권위원회에서 농성을 이어갔다. 철야 농성을 벌이던 중 새벽에 전경차가 들어왔고, 백골단이 투입됐다.
교정은 아비규환이었다. 선생님들은 옷이 갈기갈기 찢어져 머리채를 잡혀 길바닥의 개처럼 끌려갔고, 청카바를 입은 백골단은 아이들을 장작 쌓듯이 교실 모서리에 던져 넣었다.
카톨릭회관에서 단식하다 실려나간 선생님들의 초췌한 얼굴...학교에 들어갈 수 없어 인권위원회에서 ‘봄이 오는 소리’라는 소식지를 만들어 학교 앞 도로에서 뿌리다 부평경찰서에 연행되기도 했다. 형사라곤 ‘수사반장’의 최불암 밖에 몰랐던 나는 형사들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쌍욕을 들었고, 블랙리스트 명단에도 올랐다.
서울로 상경한 7명의 친구들은 인권위원회에서 단식농성, 피켓팅을 했고, 나는 대외연대사업부로 신맹순선생님과 신부님과 함께 경북, 부산, 충청 지역의 학생들을 만났고, 흥사단, KSCM 학생들과도 교류했다.
노태우 군부독재 정권이 얼마나 악랄했는지 이론이 아니라 온전히 몸으로 느낀 시간들이었다.
아이들은 그저 존경하는 선생님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었다.
나는 유난히 국어수업을 좋아했는데 그때 국어선생님이 #임병구선생님이다.
수업시작 전에 늘 시를 써주시곤 했는데 그때 기억나는 시가 김남주시인의 ‘사랑은’이다.
‘불량제품들이 부르는 희망노래’,‘꼴찌에게 보내는 갈채’같은 책들을 소개해 주시며 아이들에게 ‘함께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학교축제 때는 머리에 땜방을 하고, ‘영구’로 나오셨고, 배고프다고 하면 주저 없이 용돈을 주셨다. 담임선생님도 아니었는데 내가 입원했을 때는 ‘깨죽’ 선물셋트를 사서 병문안을 오셨었다. 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어서 ‘태백산맥’도 읽고, ‘시사저널’도 구독하고, 선생님 집 책꽂이에 빼곡했던 책들을 탐독했다.
그 때 책을 통해 만났던 시인이 신동엽, 김수영, 김남주였다. 그 시절 가장 좋아했던 시집이 김남주 시인의 ‘나의 칼 나의 피’였다.
너무 어린 나이에 교과서와 다른 학교 현장을 목격한 휴우증은 컸다.
새벽에 인권위원회를 몰래 빠져나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7명의 무지개파(학교 나온 7명의 친구들)과 둘러앉아 안주도 없는 깡소주를 마셨다.
전성원작가가 막노동을 하던 시기에 아마도 세상에 버려진 듯한 자괴감속에서 검정고시학원을 다녔던 거 같다.
활동가로 성장하기엔 심약했던 나였기에 늦깎이로 대학을 들어갔고, 지금껏 소시민으로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길위의 독서’에는 외롭고, 쓸쓸한 작가의 유년과 격동했던 청소년기. 절망 속에서도 자신을 곧추세우려는 작가의 절절함이 있다.
책들에 대한 정보도 있지만 삶에대한 작가의 끈질기고, 따뜻한 시선이 감동적이다.
눈물 없인 진짜가 될 수 없다고 했는데 나는 정말 진짜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책을 읽고 나서 나는 느리게라도 그가 걸어온 과정을 더듬어 보고 싶어졌다.
늦지 않았다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