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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 : 한가지 비유를 가지고 설명하자.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말이 있다. 중요한 장기가 병들었든, 손끝에 가시가 하나 박히든 그 중요성에 있어서는 마찬가지다. 인간의 육체는 심장이 손가락을 소외시키는 일이 없다. 육체라는 것은 상당히 이상적으로 우정과 사랑, 나와 너가 하나인 대단한 사랑의 조직체이다. 그러나 어떤 국가·사회·제국도 그렇게 순수한 육체의 조화로운 통일과 같은 유기성은 없다는 데 문명의 모순이 있다. 가령 어떤 사회에도 ‘천국이 따로 없다’고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기본적인 물질적·정신적 보장조차 못받는 사람들이 공존한다. 물론 한쪽이 억압받는다고 해서 전체로서의 사회나 국가가 어떤 일다운 일을 못하거나 생산력을 발휘할 수 없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한쪽은 병들어 있으면서도 몸 전체는 위대한 행동을 할 수도 있고 부인할 수 없는 유산도 남길 수도 있다. 어쨌든 그 사회에서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문제는 나머지 부분인데 그 부분을 어떻게, 어느 정도 아파하느냐 하는 것이 인류역사 발전의 척도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건강지수를 수치화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현존하는 모든 국가나 사회와 마찬가지로 이상에 비추었을 때 부족한 사회인 것은 틀림이 없다. 이야기를 간추리면 우리 사회에는 이미 무시할 수 없는 자각한 정신의 소유자들이 방대하게 존재한다. 그런데 그것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씨앗이 있더라도 햇빛이 있고 물이 있고 공기를 유통시키지 않으면 싹이 안나오는 것처럼 가능성이 있더라도 조건이 주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정상적인 발아조건이 안되더라도 생명의 본능적 힘 때문에 생명이 폭발했다. 우리 근대에 있어서 동학혁명, 갑신정변, 실학, 신분질서를 흔드는 방대한 중간주민의 존재가 그것이다. 상류귀족층에 의한 갑신정변은 상류층이라고 다 썩은 인간이 아니라는 증거였고 중간층도 외압이 있지 않았다면 연속적인 비중세적 발전을 가져왔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성공한 혁명이 되지 못했고 3·1운동, 4·19혁명, 군사체제 아래서의 끊임없는 저항으로 단속적인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쉼없이 살려는 꿈틀거림이 있었다. 우리 사회를 병든 부분의 관점으로 보면 어두운 측면도 많겠으나 왜 우리 사회를 병을 가지고 인식해야 되겠는가. 생명의 아름다운 본질에 가깝게 살려는 몸통부분이 이러저러한 불리한 여건 때문에 고전하지만 내면적으로나 외면적으로나 엄청나게 높은 지적, 정치적 대생명의 축적을 이뤘고 승리의 유산뿐 아니라 패배의 유산까지도 전투역량으로써 갖고 있다. 과거에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내부의 반역자들에게 그것을 횡령당하지 않도록 얼마나 현명하게 행동할 수 있느냐, 대한제국말·식민지기간·분단기간에 우리가 바깥세력에 대해 반응했던 것보다 얼마나 굳건하게 대응하고 필요하다면 유리하게 싸우기까지 하느냐는 데 우리 역량의 미래가 달려있다. 전투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경향신문> 2004년 1월 5일자 기사 중에서 발췌....
이 부분에서 특히 나를 억소리 나게 만든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인간의 육체는 심장이 손가락을 소외시키는 일이 없다."
사람들은 간혹 작가나 시인에게 그런 질문을 하고 싶어한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글을 잘 쓸 수 있게 되는가? 어떻게 그런 표현을 생각해낼 수 있는가? 너무나 원론적이고, 원초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이 궁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질문을 하는 이들이라고 해서 글이 어떻게 생성되고 만들어지는지 모를리 없기 때문이다. 이미 그런 질문에는 감동이라는 감정의 한 형태가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미 그 사람은 설복당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작가나 시인은 의미가 없다.
작가나 시인이 늘상 주물러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재료는 지식이나 사상이 아니라 바로 마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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