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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절멸시키는 일이다.
타인에 의해 자신의 모든 욕망이 정의되도록
자신을 방기하는 일, 그것이 여성이 되는 길이다.
만일 이를 거부한다면? 그녀는 마녀이거나 유령이다.
<제프리 윅스, 섹슈얼리티 : 성의 정치, 87쪽에서>
동화 "백설공주(Schneewittchen)"는 그림 형제가 채록한 전래 동화이다. 눈처럼 흰 피부, 앵두처럼 붉은 입술, 흑단처럼 검은 머리를 가진 아름다운 공주를 죽이려는 계모의 음모를 피해 달아난 백설공주는 일곱난장이의 보호를 받는다. 그러나 마법의 거울을 통해 백설공주가 살아있음을 알게 된 계모는 독이 든 사과를 백설공주에게 먹여 죽이려 한다. 죽어가는 백설공주는 갑자기 나타난 왕자에 의해 구원받게 되고, 계모는 결국 벌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이다(제임스 핀 가너의 "정치적으로 올바른 베드타임 스토리"란 책은 이런 동화의 스토리를 역전시키는 내용으로 한동안 각광을 받았던 책인데, 불행히도 나는 이 책을 읽지 못했으므로, 지금부터 내가 하고자 하는 백설공주의 이야기가 이 책에 수록이 되었는지 혹여 제임스 핀 가너의 관점과 일치하더라도 우연의 일치다). 우선 백설공주의 외모에 대한 묘사는 너무나 확정적이라 이견의 여지가 없는 미인상이라 할 수 있다. 앵두처럼 붉은 입술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에서도, 신윤복의 미인도에서도 일치되는 여성의 외모에 대한 일관된 바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계모가 백설공주에게 먹이고자 한 독이든 사과에 의문이 들었다. 왜 하필이면 독이든 사과였을까? 하고 많은 과일 중 하필이면 "아담의 사과(남성의 목적에 있는 후두)"를 연상시키는 사과였던 거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든 생각은 이 작품에서 독이 든 사과보다 치명적인 물건은 계모가 늘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아름다운지 말해다오."라고 했던 거울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계모의 외모가 어땠는지에 대해선 백설공주에 비해 특별한 묘사는 없지만, 그녀 역시 상당한 미모였던 것으로 나타나는데 그런 계모가 어째서 백설공주를 죽이지 못해 안달하게 된 걸까? 그 원인은 "제프리 윅스"의 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타인에 의해 자신의 모든 욕망이 정의되도록 자신을 방기하는 일, 그것이 여성이 되는 길이다." 캐서린 H.S.문의 "동맹 속의 섹스"에는 어떤 전직 기지촌 여성이 속눈썹을 붙이고, 짙은 화장을 하고, 절대로 할머니라고 부르지 못하도록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녀의 나이는 환갑을 훌쩍 넘겼다. 말지 2004년 12월호에 수록된 김동심 선생(두레방 상담실장)의 글 <묵직한 트렁크에 담긴 '낯선 미래'>에 소개되고 있는 지수 아줌마의 이야기를 보자.
지수아줌마는 80대의 할머니지만 우리는 모두 그 분을 아줌마라 부른다. 두레방과 알고 지낸 시간을 따지면 제일 오래된 분 중 한 분이지만, 또 제일 마음을 안 여신 몇 분 중에 한 분이다. 우리는 아직도 지수아줌마가 어떻게 기지촌에 들어오게 됐는지는 잘 모른다. ...<중략>... 아주 오랫동안 젋고, 예쁜 것이 가치가 있는 공간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자신의 나이나 늙음에 대해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말, 2004년 12월호, 94쪽>
자본주의의 쇼케이스에 장식된 인간은 남녀노소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집창촌에 줄줄이 늘어선 성매매여성들과 다를바 없는 강박을 지니게 된다. 그건 젊음과 외모에 대한 것이다. 페미니즘 아티스트 바바라 크루거는 1989년 워싱턴D.C에서 벌어졌던 낙태법 철회와 관련된 여성 시위와 관련해 낙태의 권리가 여성의 것임에도 이를 결정하는 일이 여성이 아닌 남성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사실에 대한 절망과 분노를 담아 유명한 작품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Your body is a battleground)"를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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