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정 없는 거리에 인간의 얼굴을 돌려주는 그래피티 테러리스트 - 뱅크시(Banksy)
사람은 모든 걸 다 누리며 살기 어렵다. 놀고 싶고, 놀 수 있는 시간도 있으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놀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샐러리맨이 바쁘게 산다는 걸, 다른 말로 하면 '돈도 못 버는 게 죽도록 바쁘기만 하다'는 뜻이다. 지금 내 책상엔 이런 책들이 놓여 있다.
"폭격의 역사, 미래기업의 조건, 내부고발과 윤리경영, 세계500대 초일류 기업의 관리 비법, 전투기 100년 역사, 비행기는 어떻게 진화할까, 전쟁이 만든 신세계, 항공력의 새 지평, 항공력, 무엇이 현대전을 움직이는가, 위대한 결정들, 신화에서 첨단까지, 가격파괴전략, 이재규 교수의 재미있는 기업 이야기, 데드라인, 세계여 경계하라, 비즈니스 리더와 성공, 공습, 인간딜레마, 거상: 대기업이 미국을 바꿨다, 세계는 평평하다, 세계를 바꾼 가장 위대한 101가지 발명품" 등
이번 달 하순부터 다음달 초순까지는 <황해문화> 겨울호 마감이 시작된다. 이제부터는 원고독촉에 마감 준비로 한창 바빠질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기간이 <인물과사상> 마감과 겹친다는 거다. 마감을 다른 말로 "Deadline"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야말로 '사선(死線)'에 올라 선 기분이다. 이렇게 쓰고 있는데도 등으로 식은 땀 한 줄기가 싸늘하게 흘러내린다. 어쨌거나 이건 일 때문에 그러는 것이니 '까라면 까는' 기분으로 며칠 밤낮으로 고민하여 일단 <인물과사상> 원고부터 처리할 생각이다. 그런데 가끔 뭔가 입안이 텁텁하고, 영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든다.
이런 기분이 드는 건 참 오랜만인데, 과거에도 나는 이런 경험과 기분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년간 떠돌이 생활을 하던 마지막 해 겨울, 그러니까 대학에 들어가던 해 12월까지 나는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언저리에서 막노동을 하고 있었다. 성 베네딕도수도원이 발주한 무슨 공사 현장이었는데, 상당히 대규모 단지를 건설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현장에는 많은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이 있었다. 물론 나도 그 중에 한 명이었다.
그런 이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을 이른바 '함바집'이라고 하는데, 내가 경상도 음식, 그중에서 경상북도 음식에 특히 학을 떼게 만든 것이 그 '함바집' 때문이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내내 묵은 김치와 시래기 국(그것도 꽁치와 정어리를 넣고 끓인)만 먹었더니 나중에는 사람이 아주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그래서 나는 며칠에 한 번씩 서는 장날이면 일이 끝난 밤이라도 꼭 읍내에 나가서 저녁을 사먹고, 귤 한 봉지를 사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다 까먹어버리곤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입에서 군내가 날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요즘 내가 딱 그렇다. 평소에도 숫자나 경영, 마케팅 쪽 분야라면 질색팔색을 할 만큼 재미없어 하는 분야인데, 넉넉 잡아 앞으로 8개월은 매일 같이 이런 책들과 씨름 아닌 씨름을 해야 할 판이다. 그러다보니 내가 좋아하는 화가인 '뱅크시(Banksy)'에 대한 책이 올초에 나왔는데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아무리 바빠도 가끔은 스스로를 호사시켜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사람이 지치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뱅크시를 가리키는 말은 제법 많다. 내가 알기로 1974년 생이라고 들었는데,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아서(은둔형이다) 일명 '얼굴 없는 아티스트'라고도 부른다. 그녀가 주로 작업하는 공간은 아웃도어다. 다시 말해 '낙서화가(Graffiti Artist)'란 것이다. 물론 인도어 작업도 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일단 몇몇 작품만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뱅크시의 작품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래피티'와는 약간 다르다. 대개 그래피티를 생각할 때 벽면에 검정색 스프레이를 뿌린 뒤 그 위에 형광 느낌이 나는 색색깔 스프레이로 화려하게 그려진 그림들을 연상하기 쉬운데 뱅크시의 경우엔 스텐실 기법을 즐겨 사용하고, 벽면에 남아있는 여러 흔적들을 기발한 발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쥐를 발견하고 의자 위로 몸을 피신한 소녀와 소녀를 올려다보고 있는 쥐를 보라. 깨진 벽면 속에 드러난 붉은 벽돌의 모양에서 뱅크시는 쥐를 연상했고(솔직히 나는 일부러 깬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쥐의 수염과 귀, 긴 꼬리만으로 한 마리의 쥐가 자연스럽게 표현되고 있다. 마치 본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뱅크시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린 사건은 이름만으로도 사람을 주눅들게 만드는 근엄한 예술공간인 '대영박물관, 런던 테이트 미술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뉴욕 현대예술박물관' 등에 자신의 작품을 몰래 '도둑전시'했던 해프닝들 덕분이었다.
주로 영국에서 활동하고 영국인으로 알려져 있는 낙서화가다. 영국인이든 아니든 영국적인 문화 풍토가 잘 느껴지는 대목은 뱅크시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블랙유머'이다. 마치 버나드 쇼나 처칠의 문장을 읽는 것처럼 말이다. 벽면에 그려진 메이드복장의 여성은 담벼락을 마치 커튼처럼 들어올린다. "이거봐! 이게 벽이야? 커튼이지!" 현대예술의 거만과 위선을 폭로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뱅크시의 '연인'이란 작품이다. 거리에 이런 그림이 그대로 전시되는 것을 폭력이라고 부를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뱅크시의 작품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뱅크시의 작품 속에 유니폼은 억압적인 존재이지만 종종 조롱의 대상이 된다. 토네이도에 휘말려 현대로 온 도로시는 거리에서 경찰에게 검문을 당한다. 어린 소녀 도로시를 집에 가지 못하도록 막는 존재는 마녀들이 아니라 경찰인 셈이다.
" WHAT ARE YOU LOOKING AT?"
"꽃"이란 도로의 차선(Line)이란 규율을 상징한다. 대영박물관에 몰래 숨어 들어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며 규율을 깨뜨린 화가 뱅크시, 어떤 의미에서 이 작품은 얼굴없는 화가 뱅크시의 자화상이다.
뱅크시는 미키마우스와 맥도날드의 손을 잡고 걷는 어린 베트남 소녀를 그린 "네이팜"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세계의 거대한 범죄는 규율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규율을 따르는 것에 있다. 명령에 따라 폭탄을 투하하고 마을주민을 학살하는 사람이 곧 거대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얼룩말의 무늬를 빨아주는 '세탁'이란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선량해지는 기분이 든다. 아마도 그것이 뱅크시가 의도하고, 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닐까 싶다.
뱅크시의 작품들 대부분은 결국 저(알타미라 벽화)와 같은 운명을 맡게 될 것이다. 이 책은 그와 같은 운명으로 소실될 운명에 처한 뱅크시의 작품들을 사진으로 기록한 일종의 작품집이다. 국내에서 뱅크시의 작품집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어떤 사람들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경찰이 되고 , 어떤 이들은 세상을 더 좋아 보이게 만들기 위해 문화파괴자(Vandals)가 된다."
뱅크시 월 앤 피스 BANKSY Wall and Piece (거리로 뛰쳐나간 예술가, 벽을 통해 세상에 말을 건네다) Banksy wall and piece 뱅크시| 리경 역| 위즈덤피플| 2009.01.10 | 248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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