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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1
- 정지용
유리(琉璃)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흔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山)ㅅ새처럼 날아갔구나!
● 메리 올리버를 읽다가 다시 정지용을 떠올렸다. 최근 2주 동안 나는 내내 정지용 시인과 시간을 보냈다. 학부 강의 때문이었다. 문학사를 강의하는 것이 아닌 한국의 금서역사에 대한 강의 중 한 사례로 이용하기 위함이었으므로 그의 문학세계에 대해 깊이 소개할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학부생들에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싶어 몇몇 작품을 소개하고, 해설도 약간 곁들였다. 강의를 준비하다보니 내가 ‘문학을 참 좋아했구나’란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내 나름의 한국문학사를 정리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작업이 되겠다 싶다.
이 작품은 정지용 시인의 고명딸이었던 ‘구원’을 잃고 쓴 시다. 정지용의 작품들 가운데에는 비교적 자신의 개인적 감정을 많이 드러내고 있는 작품에 속한다. 이 시의 첫 행 “유리(琉璃)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와 마지막 두 행 “고흔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山)ㅅ새처럼 날아갔구나!”라는 부분은 특히나 아비된 자로서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영랑의 애절함과 비교해보면 지용이 얼마나 스스로의 감정을 절제하는 시인이었던가가 잘 드러난다.
한밤중에 시인은 유리창을 바라본다. 귀한 딸자식을 잃었으니 그 마음이야 오죽하랴. 맥도 없이 그는 창을 바라본다. 거둬내고 또 거둬내 보아도 심연처럼 까만 밤은 시야 앞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까만 밤의 세계는 사랑하는 자식이 떠나버린 죽음의 세계, 그는 밤에 홀로 일어나 유리창을 닦는다. 어두운 창 밖의 세계는 아이가 떠나간 세계이고, 그는 아이에게 혼잣말을 맥없이 열없이 던진다.
첫딸 구원이를 폐렴으로 잃어버린 뒤, 그는 다시 딸을 얻는다. 그리고 그 아이의 이름도 ‘구원’이라고 했다. “구원이 돌아왔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지용의 막내딸이자 구원이었던 정구원 여사는 이남에서 살다가 지난 2015년 세상을 떠났다.
정구원 여사는 생전에 “유명한 아버지 말고 평범한 아버지와 다시 만나 살아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정지용의 가족은 오랫동안 '빨갱이'가족으로 치부되어 세상의 싸늘한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정지용 시인은 평생 가톨릭 신자로 살았다. 프란치스코(방지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