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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라고 하자
민구
그는 성벽을 뛰어넘어 공주의
복사꽃 치마를 벗긴 전공으로
계곡타임즈 1면에 대서특필됐다
도화국 왕은 그녀를 밖으로 내쫓고
문을 내걸었다 지나가던 삼신할미가
밭에 고추를 매달아놓으니
저 복숭아는 그럼 누구의 아이냐?
옥수수들이 수군대는 거였다
어제는 감나무 은행이 털렸다
목격자인 도랑의 증언에 의하면
어제까지는 기억이 났는데 원래,
기억이란 게 하루 사이에 흘러가기도 하는 거
아니냐며, 조사 나온 잠자리에게 도리어
씩씩대는 거였다
룸살롱의 장미가 봤다고 하고
꼿꼿하게 고개 든 벼를 노려봤다던,
대장간의 도끼가 당장 겨뤄보고 싶다는.
이 사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버스 오기 전에
몽타주를 그려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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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하다’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하는 짓이나 말이 매우 버릇없고 막되어 괘씸하다”이지만, 일상어로서 ‘발칙하다’는 말은 거의 사라진 듯하다. 대개 사극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말이 되었다. 이 작품의 첫 연에 등장하는 내용을 읽으면서 깨방정스러운 발칙함을 느꼈다. “성벽을 뛰어넘어 공주의 복사꽃 치마를 벗긴 전공”은 “저 복숭아는 그럼 누구의 아이냐?”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걸 옥수수들이 수군대고 있는 풍경이 보인다.
민구의 <가을이라고 하자>는 의뭉스럽다. “보기에 겉으로는 어리석어 보이나 속으로는 엉큼한 데가 있다.” 나는 가끔 시(詩)란 수수께끼 같은 거라고 이야기한다. 제목을 가려놓고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시의 제목이 곧 답이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그려지는 정경들은 가을의 풍경이다. 그런데 시인은 그걸 한 편의 판타지 동화로 만든다. 가을은 어느덧 높다란 성벽 같은 복숭아 과수원을 넘어, 복숭아 열매를 맺게 했고, 마을 어귀 한적한 길가마다 붉게 익은 고추를 말리고 있다.
겨울이 되기 전, 감나무의 감을 거둬들였지만, 도랑은 누가 거둬갔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원래 기억이란 게 도랑물 흘러가듯 졸졸 흘러가기 때문이다. 감나무 옆 도랑 위를 뱅뱅 비행하는 잠자리는 조사 나온 수사관이 된다. 어쩌면 시인은 시골 할미에게 간만에 인사를 드리러 갔을지 모르고, 어쩌면 그 감나무 은행을 턴 것은 손자인 시인일 수도 있고, 할머니 아니면 할아버지가 손주를 주기 위해 거둔 것일지 모른다. 그것이 아니라도 시인은 시골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의뭉스럽게 이 모든 풍경을 “몽타주를” 그리듯 지켜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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