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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 파울 첼란
그 돌.
내가 뒤따라갔던 공기 속의 그 돌.
너의 눈, 마치 그 돌처럼 그렇게 멀어버린.
우리는
손들이었지,
우리는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어둠을 퍼냈고, 우리는
여름을 돌아서 온 말을 발견했지 :
꽃.
꽃―어느 눈먼 이의 말.
너의 눈과 나의 눈:
그 두 눈이
물을 주었지.
자라남.
가슴벽과 가슴벽마다
이파리들이 더해졌지.
이렇게, 한 마디 더, 그리고 종추들이
공기 속에서 흔들거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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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첼란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지금은 은퇴해 명예교수가 된 독문학자 전영애 선생이 펴낸 『어두운 시대와 고통의 언어』(문학과지성사, 1986년)를 통해 처음으로 파울 첼란이란 시인을 알게 되었다.
청소년기에 외국문학을 접하다보면 나름대로 취향이란 것이 생기기도 하고, 그 반대로 자신의 취향을 알게 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러시아 문학이었을 테고, 누군가는 일본이었을 테지만, 내 경우엔 독문학이었다. 굳이 독일어권 작가나 시인이 아니었어도 좋아하는 해외 작가들이 제법 많았지만, 독일어권 작가와 시인 중에 볼프강 보르헤르트(Wolfgang Borchert, 1921.5.20.~1947.11.20.)와 파울 첼란(Paul Celan, 1920.11.23.~1970.4.21.)은 내게 그만큼 각별한 이들이었다. 사랑한 이들이다.
대학에 진학할 때, 면접 시간에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와 시인으로 보르헤르트와 첼란을 말했다가 한국 작가를 말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사실, 보르헤르트는 워낙 젊어서 요절한 작가였고, 짧은 작품 활동 기간 동안 시와 소설, 희곡에 걸쳐 얇고 투명한 작품들을 썼던 이였기에 문학사적으로 중요하다기 보다는 나치가 준동하던 시절, ‘독일에 윤동주’ 같은 작가가 있었다는 정도의 의미로 부각되었을 것이다. 굳이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거품이 끼어 있는 인물이란 거겠지만, 1990년대를 살면서 많은 이들이 무라카미 하루키에 탐닉하던 시절, 나는 그와 비슷하면서 조금 다른 이유로 보르헤르트와 다자이 오사무에 빠져 있었다.
파울 첼란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경우라 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첼란의 경우엔 ‘아우슈비츠’란 단어가 반대로 그의 문학세계를 이해하는 키워드이자 동시에 부당하게 좁히는 사건이란 생각이 든다. 파울 첼란을 이야기하며 아우슈비츠를 빼놓을 수 없고, 시인의 삶에서 그만큼 강렬한 경험일 수밖에 없으며, 나 역시 그에게 빠져들게 된 첫 번째 계기였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을 읽고 읽다보면 단지 그것에 한정해 읽기에는 너무 아쉬운 작가다. 그는 모더니즘적 혁신을 독일어 시문학에 가져온 인물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언젠가 내 삶에 좀 더 여유가 생기게 된다면 ... 과연 그렇게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공기 속에서 흔들거리는 것들,
저 멀리서 꽃이 손을 흔든다.
아지랑이처럼 무덤에서 자라난 묘비들처럼
퍼내도, 퍼내도 드러나지 않는 바닥이
실눈을 뜬다.
왜 아직 거기에 있느냐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