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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타기기
기계로 미처 다 털지 못한
옥수수를 고무 대야에 담아다 놓고
도장방에 앉아 어머니와
송곳으로 타기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벌써
손가락 사이에 물집이 잡히려 하며
아파 왔다.
그걸 어머니에게 내보이니
어머니가 웃으면서
손이 일을 알아보아 그렇다 했다.
지금 우리나라에 이 일을 하는 아이는
나 하나뿐일지 모른다며
이다음 어른이 되어 손이 다 자라면
어릴 적 이 일들을 떠올릴 거라 했다.
그리고
남들이 안 해 본 이런 일들을 한 사람들이
옛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 이야기 들으며 새 세상 아이들
꿈을 꾸며 자랄 거라 했다.
임길택 (2024), 『산골아이』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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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기다’란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사전을 찾아봐도 ‘닮다’의 전라북도 사투리라고 나올 뿐이다. 그런데 시의 맥락과 그 뜻이 정확하게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어느 특정 지역에서만 사용하는 말인 듯싶다. ‘도장방’이란 말도 그 의미를 잘 모르겠다.
나는 옥수수를 좋아하고, 강원도 정선을 특히 좋아하지만, 그곳에서 살면서 옥수수를 심어 기르고 그것을 먹으며 살게 되진 않을 것 같다. 물론 조만간 다른 곳에 옥수수를 심어서 키울지는 모르겠다. 옥수수를 키우고 기계의 힘을 빌려 낟알을 털어내지만, 낟알을 죄다 거두진 못하는 모양이다. 이만하면 되었다하고 속대를 내버릴 수도 있겠으나 그리 하지 않고, ‘도장방’에 앉아 송곳으로 일일이 솎아낸다.
일이 서툴다보니 손가락 사이 물집이 잡히려 해서 어머니에게 내보이는 것이 이 시가 보여주는 겉 풍경이라면 그 뒤에 어머니와 나눈 대화는 이 시의 속내를 이룬다. 이오덕 선생은 임길택의 세계를 ‘몸으로 살아가는 창조의 세계’라 평했는데, “손이 알아보아 그렇다”라는 이 한 구절만으로도 그 평가가 어떤 의미인지 단박에 알아볼 수 있다. “남들이 안 해 본 이런 일들을 한 사람들이/ 옛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지금 우리나라에 이 일을 하는 아이는/ 나 하나뿐일지 모른다” 옥수수 타기는 일이 무슨 일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런 일이 있으려니 할 뿐이다. 낟알 한둘도 소중히 여기는 농부의 마음이 기계노동에 밀려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풍경일 수도 있고, 그 낟알 하나조차도 파내는 마음이 오죽하랴 싶기도 하다. 또 “그 이야기 들으며 새 세상 아이들/ 꿈을 꾸며 자랄 거라 했다.”는 대목은 나처럼 도회지의 발랑 까진 악의적인 인간이 읽기엔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남들이 안 해 본 이런 일들을 한 사람들”의 “옛이야기”가 언젠가 “새 세상 아이들”의 이야기가 된다는 대목에선 말할 수 없는 가슴 뭉클함이 있다. 사진작가 강재훈 선생의 사진들이 이 책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 강용원
● '타기다'는 옥수수 알이 늘어선 줄 사이에 송곳을 넣고 밀어 알을 분리하는 작업입니다. 그렇게 낱알로 만들어 말려 놓았다가 빻아서 옥수수밥을 해 먹기도 하고, 겨울에 궁금할 때 푹 삶아 설탕-그 시절엔 '당원'-을 넣어 간식으로도 먹고, 그랬습니다. 평창, 정선 쪽에서는 '따개다'라고 합니다.
● 도장방은 강원도에서 곳간처럼 쓰는 여성 전용 공간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