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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 사과를 먹다
- 황인숙
사과 껍질의 붉은 끈이
구불구불 길어진다.
사과즙이 손끝에서
손목으로 흘러내린다.
향긋한 사과 내음이 기어든다.
나는 깎은 사과를
접시 위에서 조각낸 다음
무심히 칼끝으로
한 조각 찍어 올려 입에 넣는다.
"그러지 마. 칼로 음식을 먹으면
가슴 아픈 일을 당한대."
니는 말했었다.
세상에는
칼로 무엇을 먹이는
사람 또한 있겠지.
(그 또한 가슴이 아프겠지)
칼로 사과를 먹으면서
언니의 말이 떠오르고
내가 칼로 무엇을 먹인
사람들이 떠오르고
아아, 그때 나,
왜 그랬을까……
나는 계속
칼로 사과를 찍어 먹는다.
젊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건데.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
*
사과를 깍고, 깍은 사과를 무심결에 칼로 찍어 입으로 가져간다.
그러자 누군가 "그러지 마. 칼로 음식을 먹으면 가슴 아픈 일을 당한대."라고 금기와 터부에 대해 말한다. 황인숙의 시는 이처럼 일상에서 누구나 경험해봤음직한 풍경을 시로 옮기고 있다.
이때 칼과 대비되는 것은 입이다.
칼은 죽임의 도구이고, 입은 생명이 살기위해 무언가를 먹어야 하는 살림의 기관이다. 죽임의 도구인 '칼로 무엇을 먹이는 사람 또한 (세상에는) 있겠지'라는 시인의 화답은 심드렁하다.
그러다 문득 나또한 누군가에게 칼로 무엇을 먹인 사람들이 떠오른다. 다시 말하면 내가 가슴 아프게 만든 사람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칼로 사과를 찍어 먹는다.
마지막 연이 없었다면... 아니 사실 시인은 마지막 연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앞의 정경들이 필요한 것이었을 게다.
젊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건데.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
시 속의 시인은 과연 젊은 사람일까? 아마도 그것은 아닐 게다. "아아, 그때 나, 왜 그랬을까…… "라는 말줄임표의 길이만큼 시인은 나이를 먹었다. 시인이 금기와 터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여전히 칼로 찍어 사과를 입으로 가져가는 행위를 그만두지 않는 것은 어쩌면 이제 더이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있지 않다고 느끼고 있으리라.
하지만 시인은 여전히 젊다.
산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있다는 건데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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