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이 위기에 처했다. 민중이여, 일어나라!"
울고 싶어서 집어든 만화책 - 김혜린의 『테르미도르』
“인간은 자기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 그러나 자기 마음대로, 즉 자신이 선택한 상황하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주어진, 물려받은 상황하에서 만든다. 모든 죽은 세대들의 전통은 마치 꿈속의 악마처럼, 살아있는 세대들이 자기 자신과 사물을 변혁하고 지금껏 존재한 적이 없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데 몰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때, 바로 그러한 혁명적 위기의 시기에, 그들은 노심초사하며 과거의 망령들을 주문으로 불러내어 자신에게 봉사케하고, 그들에게서 이름과 전투 구호와 의상을 빌린다.” - 카를 마르크스
올해는, 나 역시 일조하긴 했지만 꽤 여러 곳에서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의 문장들과 마주하게 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소극(笑劇)으로”가 반복된 해라서 그런가. 이번 대선에서 나는 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소극으로 반복된 역사를 마주했다. 반복되는 역사만큼 진지한 자세로 ‘정치적 학습효과’란 것을 고민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87년 대통령직선제 실시 이후 치러졌던 모든 대선의 축소판이었다는 점에서 재미있었고, 87년의 역사가 코미디로 반복되었다는 점에서 재미없었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우리는 민주화 이후 지난 20년간 치러진 대통령 선거사에 등장했던 거의 모든 정치적 이벤트들, 정권 교체, 후보의 비리 폭로전, 박찬종, 이인제의 뒤를 이은 이회창의 탈당 독자 후보 출마, 여권 단일화 실패, 진보진영의 해묵은 정파 논쟁이 또다시 불거졌다. 그것은 마르크스의 주장대로 분명 역사는 우리 스스로가 만들지만 그 역사란 우리가 선택한 상황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주어진, 물려받은 상황하에서” 만들어지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87년의 후보단일화 실패가 비극이었다면, 2007년의 후보단일화 실패는 코미디였다. 당시의 재야 원로들이 결국엔 실패했던 것처럼 오늘의 재야 원로들은 더 큰 실패의 주인공이 되었다. 문제는 이 코미디가 하나도 웃기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만화책을 읽는다. 웃으려고? 천만의 말씀, 나는 요즘 울고 싶어서 만화책을 읽는다.
순정만화란 장르 속에서 태어난 이단아
김혜린의 『테르미도르』는 1988년부터 1990년까지 순정만화 전문잡지 <르네상스>를 통해 발표되었던 만화를 다시 엮은 것이다. 복간본이라 하지 않는 것은 시기적으로 멀지 않은 때의 작품이라 그런 호칭이 적당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소설의 경우 잡지에 연재되었다가 단행본으로 출간되고, 출판사를 옮겨 다시 출판되었다고 해서 이것을 모두 복간본으로 부르지 않는 것과 이유가 같다. 그와 흡사한 도상에서 나는 장르적으로 ‘순정만화’란 호명이 앞으로는 역사적인 것이 되길 바란다. ‘안소니와 테리우스’로 표상되는 순정만화의 고유한 캐릭터성은 앞으로도 지속되겠지만, ‘순정만화’란 호명은 ‘여류 시인’이란 호명이 지닌 문제와 거의 동일한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김혜린의 『테르미도르』는 작품의 주제의식이나 소재 면에서 역사만화로 분류되는 것이 합당해 보인다.
지난 2003년 재출간된 김혜린의 『테르미도르』는 1789년 7월 왕과 특권층이 삼부회를 전복시키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프랑스 전역에서 혁명적 열기로 들끓던 시대(이른바 1789년 ‘7월의 대공포’)로부터 시작해 1794년 7월 27일 ‘테르미도르 9일의 쿠데타’까지를 주된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혁명의 대의에 동감하는 귀족 청년 ‘줄르’, 귀족이 되고자 자신과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를 원망하며 성장한 혁명주의자 ‘유제니’, 폭도들에게 부모를 잃고 사랑하는 연인이었던 줄르의 생사마저 알 수 없게 된 귀족 아가씨 ‘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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