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부터인가
엄숙하기만 한 중앙일간지 매체마다 만화가 한 공간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때늦은 감은 있지만 좋은 현상이다.
그리고 매체의 힘에 의한 것이든 그들의 능력 탓이든 만화 작가 자신이
스타로 떠오르기도 하고, 에너지 고갈이든, 상상력 고갈이든
아니면 정치적 상상력 빈곤이든 간에 하는 이유로 내 눈 밖에 난 이도 있다.
(누구냐고? 다 아시면서)
어제 집 사람이 홍승우의 <비빔툰> 한 권을 사왔다.
<한겨레>에 연재되는 동안 늘 즐겨봐왔지만
역시 나는 같은 활자 메체라 할지라도
책의 형태로 묶인 것을 가장 선호한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면서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몇 개의 챞터를 다 읽었다.
아침밥도 못 챙겨먹는 인간이 아침 댓바람부터 만화책을 읽고 있으니
이 지경이면 밥보다 책이 좋다고 말해도 좋은 건가.....
요사이 자이젠님 홈에서 사진작가 아라키 노부요시와 안티 아라키전과
관련해서 간단한 논쟁이라면 논쟁 한 판을 벌이고 온 상황에서
그리고 한 인간이자 여성, 나의 아내, 나의 사랑과의 생활을
늘 곰곰이 씹어오고 있는 나로서는(울 마눌이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나는 가끔 그녀를 나의 관찰대상 목록 1호로 등재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내 주변의
다른 기혼 여성들의 생활 상태와 상황에 따른 심리 상태 분석에 매우 유념하고 있다.
홍승우의 만화를 보면서 나는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야 아직 육아 전선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그 상황들이 뼛속 깊이
다가올리는 없겠지만 아내의 구직에 대한 남편의 심리나 아내나 남편의 이성친구에 대한 각각의 반응들이 매우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홍승우와 김규항의 공통된 장점은 솔직함에 있다.
물론 김규항의 경우엔 그가 늘 매우 원론적인 이야기들을 - 즉 지극히 당연한 말을, 지극히 당연한 듯이 하고 있으므로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가 하는 말은 전부 하나마한 한 말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 지극히 당연함조차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인간(상징자본가)들이 태부족이라 - 하고 있으므로 홍승우가 그의 작품들에서 보이는 인간적인 약점, 결점이 김규항의 경우완 좀 다르다.
내가 읽은 홍승우는 그런 자신의 약한 고리를 적극적으로 드러내 재미로 환치시키는 데에서 재미가 발생하는 데, 김규항의 경우엔 같은 솔직함이라 할지라도 대개의 경우엔 외부를 향한다.
아, 이 말을 하려고 그랬던 것은 아니고.....
나는 정말 좋은 남편이 되고 싶다.
나는 정말 좋은 아비가 되고 싶다.
그게 내 인생 최고의 목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 문제에 대한 최고의 심판관은 결국 나의 아내일 수밖에 없으리라.
홍승우의 <비빔툰>에는 아비로서, 남편으로서 홍승우의 고민이 녹아 있다.
어떤 이들은 이 만화를 읽으면서 이 정도 남자라면 괜찮은 거 아닌가 하며
홍승우에 대한 연모의 정을 품을 수도 있으리라.
그런데 나는 만화를 보면서 연신 피식피식 웃었다.
같은 남정네로서 내가 느끼는 소감이란 이런 것이다.
과연 활미 씨(홍승우 씨의 아내 이름)가
당신의 만화에 모두 공감을 하고 있기는 한 게요.
혹시 활미 씨는 당신의 뒷통수에 대고 감자를 먹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뭉스러운 웃음 말이다.
가끔 내 아내는 내가 게시판에 엄청난 애처가인 양 하는 글을 보고
내게 핀잔을 주곤 한다.
아마도 게시판의 글을 읽으며 내게 엄청난 크기의 감자를 먹이고 있을지도...
세상에서 자신의 아내에게
괜찮은 남자 소리를 듣고 사는 사람은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그게 만약 날 속이는 소리라면
난 평생 그렇게 속고 살고 싶다.
가정이란....
때로 암컷들이 숫컷의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한 매트릭스란 생각.
그 생각이 남성들의 현실 인식일 수도 있고,
때로 숫컷들이 암컷의 노동력과 자신의 씨앗을 안정적으로 퍼뜨리기 위한 제도란 생각.
그 생각이 여성들의 현실 인식일 수도 있다.
어쨌든 남녀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체로
아니면 이해하면서도 이해라지 못한 척하기로 결심한 채
수십만년 동안 서로를 길들이기 위해 노력하면서 실패하고 있는 기이한 동물들은 아닌지....
왜, 고양이는 자신이 인간에게 사육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인간을 사육하고 있다고 느낀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고양이 심리 분석가들의 말을 우리가 믿을 수 없는 것은
그들이 고양이가 아니기 때문이며....
남녀관계를 분석하는 심리분석가들의 말을 우리가 믿을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우리와 똑같은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남녀관계, 부부관계, 애정관계에 대해 인류가 무수히 오랜 세월 동안
문화적 오마주를 바친 이유는 결국....
그것이 한 인간과 다른 인간이 펼쳐온 완전한 이종의 짐승들이 펼치는
미지의 행성에 대한 탐구욕은 아닐런지.
나는 '아내'라는 이름의 에이리언에게 포육되는 생물이고 싶다.
* 개그우먼인지, MC인지 모르는 이*실 씨가 남편에게 얻어맞아 전치 4주의 중상을 입었다고 한다. 어제 조모님의 제사라 온 식구들이 모여앉은 가운데 그녀를 두둔하는 이가 별로 없음에 크게 놀랐다.
세상은 아직도 말많고, 돈 잘 버는 여자를 미워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치며....
아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존재가
내 아내, 아이들의 엄마, 며느리, 딸.
그 어떤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우더라도 결국 한 명의 여성.
한 명의 사람이란 사실을 먼저 기억하며 살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
(여보! 나 잘했수. 흐흐. - 당신들이 놓치는 나의 그 어떤 글도 울 마눌은 놓치지 않는다. 저 놀라운 감각의 촉수를 보라! 흐흐.)
* 아차, 또디도 정말 재밌다. 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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