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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원으로 밥상차리기/ 김용환 지음 / 영진.com
식당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고 한다. 집나와 혼자 살았던 게 고등학교 졸업하면서니까 본격적으로 혼자 식사를 해결해야 한 것이 햇수로 헤아려보니 어언 10여년이 넘는다. 우리 집안 분위기가 특이하기 보다는 사는데 부대끼다 보니 돌볼 여지가 없었던 탓에 우리 집 남자들은 여염집 여자들 뺨치게 음식을 잘 한다. 그것도 가풍이라면 가풍이라고 해야할지 몰라도 아버지의 형제로 삼촌(숙부) 셋이 있는데, 이 분들도 음식을 잘 한다. 그런 까닭에 우리집 명절에는 남자들도 명실상부하게 확실한 한 몫을 수행한다. 즉, 밥이나 음식할 줄 몰라서 혹은 남들은 어떻게 먹고 사나 궁금해서 이 책을 들쳐 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음식은 대체로 나도 할 줄 알거나 구태여 해먹지는 않더라도 대충 무슨 이야기인 줄은 알겠다는 거다.
이 책의 현재 리뷰가 모두 106개인 걸로 보아서 이 책은 나름대로 꽤 잘 팔린 요리책인가 보다. 우리 집에도 한 권 있는 걸로 봐서 그 심증은 확증이 된다. 이 책에 대해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우선 그 제목을 가지고 시비를 건다. "2,000원으로 밥상차리기"가 가능한가? 결론은 가능하기도 하고, 불가능하기도 하다. 이 책의 어느 장을 펼치면 음식 재료 소개에 당당하게 "돼지고기 한 근"이라고 표시된 음식이 있다. 돼지고기 한 근이 얼마인가? "내가 2,000원 줄께 돼지고기 한 근 사다줄래?" 하면 당장 욕할 사람 여럿 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 책의 제목 2,000원으로 만드는 밥상은 엄연한 과대광고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의미가 없냐? 그렇게 말하면 섭섭할 수도 있겠다. 2,000원으로 밥상 차리는 일은 종류에 따라 혹은 그런 식으로 사들이고 남은 재료들을 어떻게 다시 이용할 것인가를 고려해보면 아예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즉, 한 끼에 2,000원짜리 식사라는 건 대학 구내 식당을 떠올리면 된다. 순두부 한 팩을 사서 그걸로 한 번에 끓이고, 두 번, 세 번에 나눠 먹을 수 있다면 그만큼 재료비는 다운되는 거니까. 그러니 너무 열받아 하지 말고 가만히 살펴보면 이 책은 나름의 미덕은 있는 책이다. 요새는 아침 방송을 볼 일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예전에 아침 방송에는 요리 프로그램이 꽤나 자주 방송되곤 했다.
방학이다. 누나는 친구랑 영화보러 나가고, 집에 덩그마니 남겨진 남자 셋은 멀뚱하니 아침 프로그램을 보면서 식탐을 억제하고 있다. 뱃속에선 꾸르륵 소리가 나지만 TV에서 해주는 요리 프로그램은 탄성 대신에 신경질 나는 내용만 나온다. 요리 프로그램 보면서 한 번쯤 "저런 재료 가지고 만드는 음식이 맛 없으면 누가 요리를 못 만드냐?" 하는 볼멘 소리를 해봤을 거다. 종종 TV에 등장하는 요리 프로그램의 수준은 중산층은 물론 극빈층의 비위를 심하게 건드린다. 그러면 아이들이랑 큰 냄비에 끓인 라면 한 그릇으로 떼우기 십상이다.
이 책의 미덕은 그런 부분에 있다. 콩나물국 못 끓이는 사람이 어디있냐고? 북어국 못 끓이는 사람이 어딨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지 모르지만 내가 그런 여편네랑 살아보니 그런 거 못 끓이는 여자도 세상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결혼을 준비할 때 여성들은 여성들 나름대로 심리적인 준비를 할 것이다. 이런저런 충고도 듣겠지. 마찬가지로 남성들도 여러가지 충고를 듣는데, 그중 하나는 음식 타박하지 말라는 거다. 무조건, 무조건 맛있다고 하라는 건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느 놈이 해준 말인지... 정말 살의가 샘솟는다.
왜냐하면, 그런 충고를 충실히 이행한 결과 나는 황금같은 신혼 1년은 거의 매번 버섯찌게에 녹았기 때문이다. 냉동실에 말린 표고 한 박스, 야채 칸에 느타리 버섯과 팽이 버섯 각각 서너 팩씩 들여다놓고, 며칠에 한 번 아내가 해주는 밥을 먹는데, 그때마다 버섯이었다. 그렇게 버섯을 먹어댄 이유는? 아내의 버섯찌개를 별 생각없이 맛있다고 한 나의 불찰이었다. 혼자 살림한지 10여년만에 가시버시를 만나 살림을 함께 꾸려가면서 나는 다른 건 다 몰라도 밥만큼은 아내가 해주는 걸 먹고 싶다는 결의를 다진 사람이었지만, 결과적으로(약간의 과장을 포함해서) 오늘도 나는 밥한다. 결혼 생활 몇 년동안 나는 "밥"을 완전히 포기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예전만큼 아내의 스트레스를 증가시키진 않게 되었다. 밥이 결혼생활의 전부는 아니잖은가 정도로 물러섰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찌됐든 가상하게도 아내는 종종 요리책을 사온다. 본인도 미안했겠지. 빨래에, 청소에, 설겆이는 원래 해주기로 했었지만, 밥만큼 그대가 하라고(결국 집안일은 잡다하게 분리되지 않고, 되는 대로 하게 되었다. 나만 손해보는 건 아니다) 우리는 신혼초에 단단히 약속했었는데, 이제는 밥도 제대로 못 얻어먹고 다니는 남편을 생각하면서 본인도 노력한다고 했지만, 결국 요리책이 별무소용인가? 요리는 요리책이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하는 거다. 이 말을 바꿔보면 나는 이 책을 뼈저리게 혹은 이 책의 저자에게 동지적 연대까지는 아니어도 공감하면서, "흐흐, 당신은 그렇게 해먹는구만. 그때는 통마늘 대신에 말린 마늘 가루를 뿌려도 좋은데." 정도의 코멘트 날릴 자격은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이 요리책으로서 얼마나 좋은 책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대신 이 책이 상당히 실용적인 책이란 사실은 증명해줄 수 있다. 2,000원으로 밥 못 해먹을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 재료 잘 보관하는 방식으로 조리한다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홀로 하는 식사 한 끼 정도는 스스로 해결해가며 먹을 수 있다. 게다가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이 비싸기만 하고, 화학 조미료에 찌든 것이란 걸 생각해보면 그런 점에서라도 나는 이 책에 별 넷 주겠다. 게다가 올컬러 총천연색 도판치곤 책 가격도 저렴하지 않은가? 사진도 본인이 직접 촬영했다고 하는데, 그 덕에 이 집 그릇 가짓수도 눈치 있는 사람들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소박하고, 실용적으로 꾸미느라 꾸민 책이란 거다.
그러니 남편 사랑 넘치는 어느 아내 분이여! 간만에 홀로 떠나는 여행길에 남편 건강 염려하시어 사골국 끓여놓고 가시지 말고, 이 책 한 권 사드리라.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라! "니가 해 먹어!"라구..
* 추신 : 결혼생활 4년차지만, 우리 부부는 서로의 영역에서 각자에게 피해도 주고, 속이기도 하면서 아직까지는 잘 살고 있다. 그러니 어떤 분은 제발 남의 남편은 저렇게도 하는데라고 하면서 타박주지 마시라. 그렇다고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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