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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 영춘권 마스터>(2015)
감독 : 서호봉
주연 : 리아오판, 지앙웬리, 송가, 황각, 금사걸, 송양
외팔이 왕우부터 이소룡, 성룡, 이연걸, 견자단으로 이어지는 쿵푸영화의 계보에 있는 영화 대부분을 봤고, 심지어 한때는 DVD도 사서 모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쿵푸영화를 좋아해본 적이 없다. 홍콩영화를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쫓았던 것 일뿐 그리 좋아하진 않았다. 그런 중에도 좋아하는 쿵푸영화 한 편이 있는데, <사부 : 영춘권 마스터>(2015)다.
영화 속 주인공은 민국 시대 남파 영춘권의 계승자 진 사부(師父)이다. 영화의 마지막까지 그의 이름은 제대로 언급되지 않는데, 아마도 엽문의 스승 진화순(陳華順)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영화가 실화일 것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작가가 잠정적으로 누군가 실존 인물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굳이 진 사부라고 성씨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톈진은 중국 하북성의 무술로 유명한 고장이다. 1912년 톈진에 최초의 무도관이 탄생하였고, 1932년에도 여전히 톈진은 무도계의 성지이다. 남파 영춘권의 고수 진 사부는 톈진에 진출해 남파 영춘권을 널리 알리고 싶다. 그가 만난 정 사부는 자신이 평생을 바쳐 30여년을 이끌었던 톈진 무도계의 혁신을 원한다. 그는 “최대 두 명에게만 비법을 전수한다”는 중국 무술계의 비밀스러운 원칙을 깨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대 이래 자신들이 발견한 지혜의 비밀을 고수하려던 자들은 피타고라스학파만의 것은 아니었다. 그런 원칙을 깨는 자들은 항상 ‘무리수’를 두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톈진’이란 공간은 무예의 성지이자 동시에 폐쇄적인 그들만의 기득권 집단이기도 하다. 오늘날에도 ‘전공’이란 이름의 벽은 높다. 이런 곳에서 무술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8개의 도장을 ‘척관(踢館)’해야 한다. 요즘 말로 하면 ‘도장 깨기’를 해야 한다. 다만, 이들 도장을 깨고 난 뒤에도 톈진이란 성지는 그 자체로 유지되어야 하기에(이들과 원수가 되지 않으려면) 제자로 하여금 도장을 깨고 난 뒤 그를 쫓아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톈진 무술계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그 일원이 되는 것이 불문율이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이 유지되는 비결이다.
액션 영화를 폄훼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액션 영화에는 액션 영화만의 문법이 있고, 감독마다 때로는 국가마다 우리가 “쪼(調)”라고 말하는 액션 영화의 특별한 리듬 또는 스타일이 있다. 홍콩영화 무술감독들이 할리우드로 넘어가기 전의 액션과 그 이후의 액션이 변화하듯, 한국영화는 한국영화 특유의 액션이 있다. <사부 : 영춘권 마스터>는 전통적인 홍콩, 중국 영화의 액션과 차별되는 독특한 액션 연출이 있다. 일단, 그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 영화는 줄거리를 비롯해 여러 면에서 불친절한 영화다. 그러나 액션영화에서 액션은 뮤지컬 영화의 노래와 같은 것이다. 액션 영화란 장르를 싫어할 수는 있지만, 액션 자체를 무시해선 안 되는 이유다.
판타지 장르의 소설이나 SF 소설에서 설정은 매우 중요하다. 때로는 스토리텔링 그 자체, 주인공의 캐릭터 서사보다도 중요할 수 있다. <듄>의 사막, <해리 포터>의 머글과 마법사들이 함께 살고 있는 공간이 그러하듯 이 영화에서 ‘톈진’이란 공간이 지닌 특성은 매우 중요하다. ‘톈진’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사부 : 영춘권 마스터>는 매우 정치적인 알레고리가 있는 영화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 사부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에게 사랑이나 교육, 사제 관계 같이 어쩌면 개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될 수도 있는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세속적인 출세 지향의 인물로 보이진 않는다. 도리어 그는 막스 베버가 말하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 신의 뜻을 세속사회에서 입증하기 위해 부를 추구하는 프로테스탄트 부르주아지처럼 보인다. 진 사부는 정 사부가 소개한 제자를 받아 수련을 시키다가 그의 수준이 올라오자 무슨 변덕이 일었는지 갑자기 그를 제자에서 내친다.
진 사부에게는 정 사부가 소개한 제자보다 실제 더 애착이 가는 제자 경량진이 생겼기 때문이다. 영화의 주요 에피소드가 아니기에 놓치기 쉽지만, 톈진에서 살아남는 법을 진 사부에게 알려주었던 정 사부는 갑자기 진 사부의 제자가 되길 바라는 대목이 나온다. 정 사부는 톈진에서 한때 유행했던 ‘협도유수’의 고수였지만, 그의 무예는 이미 시대에 뒤처졌고, 진 사부의 무예가 자신보다 출중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예술계에는 농담 아닌 농담 같은 말이 하나 있는데, “상이란 더 이상 예술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퇴물들에게 주어지는 보상 같은 것”이다. 모차르트를 알아보는 눈을 갖는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살리에리의 슬픔은 모차르트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저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모차르트를 알아본 살리에리는 정 사부만이 아니었다. 진 사부 역시 자신이 거둬서 키운 제자 경량진이 이미 자신을 뛰어넘었거나 아니면 조만간 자신을 뛰어넘을 재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진 사부는 쿵푸의 고수이지만, 제자를 팔아넘겼고, 진 사부의 아내는 생활고 때문에 딸을 팔아넘긴 과거의 상처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무협(武俠)영화는 될 수 없다. 무술은 있어도 협이 자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영화를 쿵푸라는 ‘전통’이 ‘근대’라는 현실을 만나 어떻게 변질되어 가는가에 대한 영화로 보았다. 그 과정에서 ‘청년’은 어떻게 이용당하고 버림받는가에 대해서도.
진 사부와 경량진의 대결이 스승과 제자의 대결이라면, 진 사부(경량진)의 세계와 대결하는 저 편의 톈진 무술계의 세계는 조금 더 현실적인 세계일 것이고, 톈진 무술계도 어찌할 수 없는 그 너머의 세계에는 군벌 린부관의 더욱 일그러진 현실 세계가 있다. 겹겹이 포위된 현실 속에서 ‘청년(또는 청년이 상징하는 그 무엇)’은 결국 이용만 당한 뒤 버림받는다. 그 과정에서 사부(師父)는 “열다섯부터 하루도 안 빼고 검을 오백 번씩 연마한” 쿵푸(功夫)의 본래 정신을 잃는다. “난 그놈의 사부가 아니오. 나도 그놈이 죽길 바랐소. 놈이 죽으면 도장을 차리려 했소. 나도. 공모자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진 사부가 제자 경량진을 죽도록 방치(?)한 뒤 좁은 골목길에서 벌이는 마지막 대결(액션)이다. 그 장면은 능력 있는 제자를 죽게 만든 진 사부가 할 수 있었던 속죄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한다.
그들이 사라진 뒤에도 세상은 계속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