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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고발자 (The Whistleblower, 2010)
감독 : 라리사 콘드랙키
출연 : 레이첼 와이즈(캐스린 볼코박), 바네사 레드그레이브(마들레인 리스)
나는 내부고발자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있다. 그들이야말로 진정으로 "뿌리 뽑힌 자들"이며 "고향이 없는 자들"이고, 산채로 매장당한 존재들이며 자발적 디아스포라를 실천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1.
내부고발하면 우리는 습관처럼 저 멀리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떠올리지만 우리에게도 역사의 고비마다 중요한 내부고발이 있어 왔다.
지난 1990년 10월 5일 윤석양 이병은 NCC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을 고발하는 양심선언을 했다. 양심선언 직후 그는 특수군무이탈혐의로 긴급수배되어 2년간의 도피 생활 끝에 체포되었고, 2년간의 옥살이 끝에 지난 1994년 11월 만기출소했다.
당시 국방부는 1,300여명에 이르는 민간인 사찰 명단 등 증거 공개에도 불구하고, 전시나 비상시에 적 또는 불순분자로부터 사회 요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인명록이라고 발뺌했다. 그러나 민간인 사찰을 목적으로 서울대 앞에 현역 군인들을 동원해 위장술집까지 운영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보안사는 해체된다.
지난 1992년 3월 22일 14대 총선을 이틀 앞두고 공명선거실천협의회에서는 당시 육군 9사단 소대장으로 근무하던 이지문 중위가 군 내부의 투표부정행위에 대해 양심선언을 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그는 곧바로 군수사기관에 연행되었고, 파면되어 이등병으로 전역했다가 지난 1995년 2월 대법원으로부터 파면 취소 판결을 받아 중위로 명예전역할 수 있었다.
그의 양심선언 이후 군부정투표행위에 대한 제보가 잇따라 쏟아졌고, 군부재자투표제도가 개선될 수 있었다. 그러나 양심에 따라 내부고발에 나섰던 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냉정했다. 지난 2007년 초 모일간지 기사에 따르면 지난 1990년 이후의 내부고발자 20명 가운데 80%(16명)가 징계와 해고를 경험했고, 이 가운데 11명은 아직도 무직 상태에 놓여있다고 한다.
내부고발자들은 집단따돌림 으로 인한 우울증, 불면증, 대인기피증, 편집증 같은 정신질환과 소화불량, 신경성 장염, 급성 간염 등을 앓기도 했다. 심지어 지난 2003년에는 사학비리를 내부고발했던 사람이 청부살인을 당하기도 했다.
2.
우리 영화 중에는 아직 '내부고발' 문제를 제대로 다룬 사례가 별로 없는 듯 싶지만 지난 2010년에 나온 영화 "내부고발자(The Whistleblower, 2010)"는 여러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 한 편의 영화 속에서 내부고발의 문제, 국가권력의 민영화 문제, UN과 같은 국제기구의 문제에 이르는 복합적인 여러 문제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레이첼 와이즈'는 2005년에도 "콘스탄트 가드너"에서 내부고발자 역을 맡은 적이 있는데, 이 영화에는 바네사 레드그레이브를 비롯해 탄탄한 연기력을 가진 배우들이 다수 등장하지만 레이첼 와이즈만 돋보인다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다른 한 편으로 연기를 잘한다는 느낌이 딱히 들지 않는다면 그 이유가 이 배우의 연기가 오버하지 않고, 상당히 절제된 스타일이기 때문이다(뭐 나랑 1970년생 동갑이라 특별히 호감을 보이는 건 아니다).
일단 이 영화는 실화다. 미국 네브라스카 경찰로 활동하던 캐서린은 남편과 이혼한 뒤 아이 양육을 전 남편에게 맡기고 있지만 아이들에 대해 애정이 있는 엄마였다. 빠듯한 경찰 봉급으로는 자신은 물론 딸의 양육비를 보태기 어려웠기 때문에 UN의 보스니아 평화유지군 - 정확하게는 국제기동경찰대(ITPF) - 에 자원한다. 보스니아 파견된 평화유지군과 국제기동경찰은 UN과 계약한 민간용병회사인 와 계약한 용병이 된다는 뜻이었다.
3.
처참한 인종청소와 내전을 경험한 보스니아에 파견된 캐서린은 이곳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매우 낮으며 가정폭력이 다반사로 벌어짐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처벌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캐서린은 가정폭력 피해자를 수사해 가해자를 기소하는 성과를 거둬 국제경찰기동대 여성분과 팀장을 맡게 된다. 그러던 중 '플로리다 바'라는 유흥업소에서 탈출한 미성년 여성들이 인신매매에 의해 팔려와 이곳에서 성매매에 강제로 종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캐서린은 두 명의 어린 여성을 이곳의 여성쉼터인 '제니트'로 후송조처하지만 막상 '제니트'에는 이들이 후송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제니트의 현지담당자는 여기 남자들은 "오랫동안 내전을 치렀기 때문에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훨씬 더 많다"며, 그 아이들에게 성매매를 강요하는 사람들은 현지인일지 몰라도 주요 성매수자들은 UN이 평화유지 및 치안을 유지하라고 파견한 서구 남성들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접하게 된다.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 캐서린은 이런 여성들을 돕기 위한 국제송환기관(GDA)를 비롯해 여러 관련 기관에 호소하고, 조사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자신이 속한 'ITPF'를 비롯해 군대, 국무부 등 누구도 캐서린의 수사에 협조하지 않을 뿐더러 사건을 덮기 위해 그녀에게 압력을 가할 뿐이었다. 그 와중에 캐서린에게 처음에 증언하겠다고 말했던 여성이 살해당하는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결국 해고당한다.
우여곡절 끝에 사건의 내부 자료를 빼돌리는데 성공한 캐서린은 이런 사실을 BBC에 제보하고, 재판을 통해 그녀에 대한 해고가 부당해고였다는 판결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4.
영화가 끝난 뒤 "캐서린이 보스니아를 떠난 뒤 그녀를 고용했던 민간업체를 비롯한 평화유지군은 본국으로 송환되었지만 이 사건과 관련한 그 누구도 형사처벌되지 않았고, 캐서린을 고용했던 민간용병업체는 지금도 미국정부와 계약하여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캐서린은 그 이후 어떤 국제기관에도 취업할 수 없게 되어 현재 네덜란드에 거주하고 있다"는 자막이 올라간다.
영화에서 캐서린을 후원하는 인물로 UN 관계자로 등장했던 바네사 레드그레이브는 이렇게 말한다.
"immunity not impunity(면책권이 무죄는 아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