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굴소년의 우울한 죽음
팀 버튼 지음, 윤태영 옮김 / 새터 / 1999년 12월
나는 팀 버튼을 좋아한다. 그런데, 그게 뭐, 그래서 어쩌라구? 흐흐...
팀 버튼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 그리 대단한 자랑거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처럼 내가 먼저 발견하고, 내가 먼저 좋아하기 시작했다고 하며 주장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예를 들어 발터 벤야민이 스페인 국경선 근처에서 절망한 나머지 자살했을 때, 베르톨트 브레히트처럼 "히틀러가 독일 문학에 가한 최초의 진정한 손실"이라고 말할 정도가 아니라면 말이다(오늘날에야 너나할 것없이 벤야민에 대해 아는 척 하지만 벤야민이 처음 죽었을 무렵만 하더라도 그는 철저히 무명이었다. 오직 브레히트를 비롯한 몇몇 지인들만이 그의 가치를 알아봤다).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을 의식하기 전까지, 그야말로 시인 김춘수의 명구절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 다른 인간은 철저한 부재(不在) 속에 놓인다. 가끔 전화 메시지로 듣게 되는 혹은 패찰로 알려지는 "부재중"이란 말은 그런 점에서 희극적이다. 부재,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는 지금 존재치 않는다. 어떤 한 소년이 스스로를 부재중이라고 설정했을 때, 그 아이는 어디로 간 걸까?
기형도의 시에 김현은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란 헌사를 보냈는데, 그렇게 생각해보면 기형도의 시는 팀 버튼만큼이나 그로테스크하다.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 소리, 어머니조차 무서워요" 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어머니는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다" 라고 말한다. 마치 한 시대를 풍미했던 괴담 "내가 아직도 네 엄마로 보이니"라는 엘리베이터 이야기처럼 어머니는 괴기스럽다.
그로테스크(grotesque), 본래 그로테스크란 말은 그로테스코란 이탈리아어에서 나온 말로 색다른 장식정도를 뜻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나중에 로마의 유적을 발굴하면서 발견된 괴이한 형상 등이 사람들의 색다른 취미로 발전해 오늘날의 의미 '괴기한 것, 부자연스러운 것, 흉측한 것'의 의미가 되었다. 팀 버튼을 이야기할 때 떠나지 않는 말 그로테스크는 그가, 그의 작품들이 괴기스럽고,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표현하는 다른 말이다. 그런데 팀 버튼의 그로테스크는 어디에서 온 걸까? 글쎄, 그야 팀 버튼을 프로이트의 침상에 눕혀보질 않았으니 알 수가 없다.
다만 한 가지... 팀 버튼의 그로테스크는 성공적이지 못한 그로테스크란 점이다. 수용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가 보여주는 그로테스크는 전혀 괴기스럽지 않다. 물론 "비틀 쥬스" 이래 점점더 할리우드화 되어가는 양상을 보이는 팀 버튼의 그로테스크가 본래의 비범함을 상실하고, 규범화된 코스츔으로 전락해가는 것을 지켜봐온 입장에서 냉정하게 말하자면 애초에 그의 그로테스크가 성공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팀 버튼의 그로테스크가 성공적이지 못한 까닭은 거기에만 있지는 않다. 그보다는 팀 버튼이 추구한 그로테스크의 출발이 애초부터 관심의 부재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소년의 관심끌기 전략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은 팀 버튼의 작품들에서 모종의 신호를 받는다. "날 좀 꺼내줘! 날 좀 사랑해줘! 내게 관심을 보여줘!"라는 신호는 그로테스크의 외피를 뒤집어쓰고 있다. 팀 버튼은 다만 주의환기의 전략으로 그로테스크를 차용한다. 그래서 사람(독자 혹은 관객)들은 팀 버튼의 페르소나들(이 작품에선 굴 소년이고, 미이라 소년이고, 영화에선 가위손이고, 배트맨이지만)을 바라보며 모종의 보호본능, 혹은 자신 안에 웅크리고 있는 어두운 페르소나를 끄집어 낸다.
팀 버튼이 다른 장르가 아닌 영화라는 장르를 선택한 까닭을 나는 영화관의 어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정된 좌석에 앉아 은막 속에 펼쳐진 판타지를 구경한다. 그것을 구경하는 동안 같이 온 사람도, 앞 좌석의 사람도, 뒷 좌석의 사람도 그리고 종종 나 자신도 부재중이다. 몰입의 순간은 동시에 부재의 순간이다. 그러므로 외로운 나도 없다.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이 즐거웠다면... 분명, 당신은 외롭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