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동화
이탈로 칼비노 외 지음, 전대호 옮김 / 궁리 / 2003년 4월
종종 그런 이기심들이 발휘되곤 한다. 정말 예쁜 여행지는 꽁꽁 숨겨놓고 혼자만 알고 싶다는 욕망... 정말 좋은 음반은 나혼자만 몰래 숨겨놓고 혼자만 듣고 싶은... 그리고 정말 좋은 책은 혼자만 보고 싶다는 그런 욕심들....
정동진을 처음 알았을 때가 벌써 20여 년 전의 일이 되었다. 그 해 겨울 바다는 쓸쓸하기 그지 없었고, 나는 도망치듯 그 바다에 며칠씩 머물렀었다. 하루 해가 다 가도록 바다를 바라보며 갓 배운 담배 연기를 날리고 있어도 누구 하나 말 건너는 이 없는, 아니 말 걸어줄 만한 행인 하나 발견할 수 없었던 바다였다.
영월의 청령포,
정선의 몰운대,
내겐 그런 곳들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몇 권의 책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철마다 한 두권씩 서점에서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사서 가까운 친구들에게만 보물처럼 나눠주곤 했다.
80년대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에렌디라"가 그러했고, 90년대 초반 보르헤르트의 "이별없는 세대"가 그러했고, 90년대 초중반 이동하의 "장난감도시"가 그러했다. 내가 "이탈로 칼비노"를 처음 알게 된 건 예전에 정음사 판 책으로 나와있는 것을 발견한 뒤였다. 햇수로 치자면 이 작가와의 인연도 거의 20여년 전의 일이다. 그는 미셀 투르니에가 그러했듯이 우리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고, 사실 지금까지도 대중적으로는 그다지 널리 알려진 작가가 아니다. 그래서 내게는 종종 보물처럼 느껴진다.
이 책 "나무동화"는 이탈로 칼비노만의 책은 아니다. 이 책에는 그 말고도 보물 같은 작가들의 이름이 꽤 여럿 보인다. 브레히트가 그렇고, 미셸 투르니에가 그렇고, 라픽 샤미가 그렇다. 그렇다고 르 클레지오가 이들만 못하겠는가. 내용은 환상동화라고 이름 붙여도 좋을 그런 내용이다. 다만 주된 소재로 "나무"를 다루고 있어 "나무 동화"라 이름붙여진 것이다.
사과나무 같이 낯익은 나무로부터 황금나무와 같이 판타지와 신화에서 익숙한 나무에 이르는 ... 그리고 노간주나무와 월계수, 백단향, 자작나무가 이 책에 담겨져 있다. 중간중간에 아름다운 삽화들도 함께 한다. 10월엔 마음의 여유를 좀 찾아보리라 마음 먹고 있다. 시간의 여유가 없고,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래서 쉬엄쉬엄 읽기 좋은 책 한 권이 손에 들린다.
누구로부터 시작해도 상관없고, 어딜 펼쳐보아도 지루하지 않다. 독촉하지 않는 책을 손에 쥐면 그때부터는 어딜가든... 평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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