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뒷골목 풍경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8월
어떤 책의 장점을 발견하는 일은 종종 쉬운 일이면서도 때로는 어려운 일이다. 단점을 발견하는 것이 잘못된 점을 발견하는 일이 아니라고 했을 때, 장점을 발견하는 일은 꼭 불후의 명작임을 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강명관 선생의 "조선의 뒷골목 풍경"이 지닌 장점을 발견하는 일은 이 책이 우리 사계에 길이 남을 명저란 의미가 아니다. 예를 들어 에릭 홉스봄의 "서양근대사 3부작 -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와 같은 책은 이 시대를 역사적으로 읽어보고자 하는 이라면 피할 수 없는 책이 될 것이다. 모든 역사가가 반드시 헤로도투스나 투키디데스가 될 수도 없으며, 그렇게 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역사 속에 살아간 인물들이 모두 영웅이거나 혁명가들은 아니며, 역사가 생산수단과 사회구조의 변천사만은 아니기 때문이란 사실을 오늘날의 우리들은 잘 알고 있다.
사실 역사란 과거 인간의 경험을 기록하는 학문이다. 그렇기에 역사학이란 학문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현재의 해석이란 시간적 격차의 문제를 필연적으로 내포하게 된다. 다시 말해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역사학은 고정된 학문이 아니라 시대와 함께 변모해가는 학문이란 것이다. 역사학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 없는 사람으로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할 재간은 없으나 강명관 교수의 이 책은 일종의 사회사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사회사는 20세기 역사학의 최대 업적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그 까닭은 사회사를 통해 역사학은 지배계급에서 피지배계급으로 연구의 대상, 서술의 대상을 폭넓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20세기 역사학의 가장 큰 흐름은 에릭 홉스봄과 같은 마르크시즘 역사학과 페르낭 브로델과 같은 아날학파 역사학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역사학의 흐름에서는 마르크시즘 역사학의 경제적 구조 결정론과 아날학파의 지리적 구조 결정론 모두를 극복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이런 흐름은 신문화사(린 헌트의 "문화로 본 새로운 역사"를 참조하시라)라는 새로운 역사적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문화연구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Clifford Geertz)의 상징인류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마르크시즘적 역사학에서는 생산수단의 소유가 아닌(물론 전적인 거부는 아니다) 문화적 경험의 차이, 즉 사회의식, 생활양식의 역사로, 아날학파적인 흐름에서는 망탈리테(mentality)의 역사로 진행되어 간다. 물론 이런 흐름(미시사, 일상사)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이제 역사는 단순히 당시의 경제구조, 지역의 문제만을 파고 드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역사학에서는 무시했을 무명의 사람들이 당시 경험했던 문화적 체험들까지 소급해서 파고든다. 즉, E.H.카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내렸던 정의는 최소한 오늘날 전면적이지는 않더라도 수정되어야만 한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강명관의 "조선의 뒷골목 풍경"은 의미가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연구 방식에는 다소 문제가 있다. 우선 당시 무명인들로 남았을 사람들의 역사는 주로 도시를 중심으로 기술될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그 까닭은 역사학자 자신의 문제라기 보다는 사료에 근거해 역사 연구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역사학의 본질적인 문제다. 즉, 도시인들의 삶이 농촌이나 소규모 촌락단위보다는 역사적 사료가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일상사와 미시사 연구는 주로 도시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그러다 보니 당시의 역사 속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종사했을 농업 생산 분야의 사람들은 좀 더 오래도록 혹은 영원히 무명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강명관의 "조선의 뒷골목 풍경"이 지니게 될 필연적인 한계다.
다시 앞서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장점이 망실되는 것은 아니란 점을 지적해두어야 한다. 그것은 이 책의 표지에 수록된 다음과 같은 글 "조선이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유흥계 호령한 무뢰배들, 투전 노름에 골몰한 도박꾼, 술과 풍악으로 일생을 보낸 탕자들, 반양반의 기치를 높이 든 비밀 폭력조직, 족집게 대리시험 전문가, 벼락 출세한 떠돌이 약장수, 설렁탕 한 그릇에 조직을 배신한 도적"과 같이 조선의 뒷골목을 누비며 조선 사회의 여러 생활 양식을 창조해내고, 이를 근대에 전했을 무명씨들의 생기발랄함과 삶, 현장의 역사를 이 책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그간 정식화된 역사교육 속에서 배울 수 없었던 살아있는 조선 시대의 풍속사와 문화사를 읽을 수 있고, 좀 더 풍성해진 당시의 시대사를 읽을 수 있다.
다만 이 책의 단점을 굳이 하나 꼽아보자면 일상사와 미시사라는 역사학 서술의 공통된 문제라고도 할 수 있는(혹은 나의 역사읽기의 기본적 시각 틀이 마르크스주의적이란 자체 분석과 함께 다분히 취향의 문제이긴 하지만) 전체를 조망하는 일관된 문제의식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토록 재미있고 풍성한 조선시대 풍속사의 기술을 만나보는 것도 쉽지 않다는 점, 그것이 이 책의 후속 연구서들이 계속 나와주길 바라는 마음을 뜨겁게 달군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