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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여정 -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 생애사쓰기 프로그램"
박현숙 | 이금화 | 전군자 | 정민아 | 김주현 | 류호상 | 김종근 | 김인회 (지은이) | 이야기너머 | 2013-11-01
1.
이 책을 통해 나는 세상에 '레녹스 가스토 증후군'이란 병증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질적연구방법론 중에 "생애사 기술"이란 것이 있는데, 생애사란 자신의 생애를 구술 기록하여 정리하는 작업이다. 구술사, 포커스그룹 인터뷰 등 질적연구방법론 내부에서 다뤄지는 명칭은 다양하지만, 이 말은 결국 지금까지 이른바 위인이나 대단한 인물들의 생애만이 자서전이나 평전의 형태로 기록되었던 한계를 넘어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생애사를 기록하는 것이다. '역사는 후세에 이르기까지 의미있는 것만 기록된다.' 이것이 역사의 명제라면 이 명제는 현재에도 유효하다. 다만, 후세에 그 역사가 중요할지 안 중요할지 판단하는 것이 후세인들이라면 우리는 오늘 그 역사가 중요할지 안 중요할지 어찌 알겠는가.
그와 같은 위인 중심의 역사기술 방식의 한계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 이른바 일상사라고 할 수 있다.
2.
"뜻밖의 여정"이란 책 제목이 마음에 와 닿았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누구에게나 해뜰날이 반드시 있을까?
내 경우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아직 형제간 우애란 것이 남아있던 시절에 외톨이 고아 아닌 고아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 오누이는 고아원 대신 숙부모 내외에게 얹혀 살면서 당신들 친자식들 못지 않게 친자식처럼 키워주었다. 내 경우엔 학교에 가서도 비교적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는 행운 덕분에 당시만 하더라도 의무교육이 아니었던 중학교는 물론, 고등학교, 대학교, 나중에 직장인이 되고 난 뒤에 다닌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장학금을 받아가며 공부할 수 있었다.
공부를 계속 할 수 있었던 건 내게 큰 행운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책을 보았다고 하더라도 사회는 일정하게 라이센스를 요구한다.
3.
대학원 논문 심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는 분과 제법 길게 통화를 했다. 이제부터 더욱 열심히 해서 박사도 하고, 좋은 책도 많이 냈으면 좋겠다는 덕담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답한 것 같다. "신이 허락하신다면 할 수 있겠죠." 이때의 신이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겠지만, 좀더 구체적으로 들어간다면 무엇일까?
나 같이 생의 미로에 갇혀 오락가락하는 자들에게 삶이란 도통 알 수 없는 미지의 무엇이다. 태어나길 여러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태어난 탓으로 어려서부터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몸으로 체득하며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사람이 해서 안 되는 일이 어딨니란 말을 제일 싫어한다. 사람은 할 수 있는 일조차도 할 수 없을 때가 있는 거다.
지금까지는 운이 따랐다지만, 이런 행운이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겸손해야 한다.
'뜻'을 나의 의지라고 했을 때 '뜻의 바깥'이란 나의 의지와 무관한 어떤 것일 게다. 이 책은 모두 8명의 장애인들의 생애가 담겨있다. 그 중 다섯은 앞서 이야기한 레녹스 가스토 증후군을 비롯해 여러 장애를 앓고 있는, 또 견디고, 싸우며 살아가고 있는 아이의 어머니들이다. 또 그 중 세 명은 정상인으로 태어났으나 살아가는 중에 장애를 겪게 된 중도장애인들이다.
세상을 뜻대로 사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뜻 밖의 자리에도 뜻은 있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만나게 된 10년 전의 문화망명자 연꽃언덕 이하나 씨와 뜻밖에 인연이 닿아 이 책이 내 손에까지 들어왔다. 나에게 온 모든 책을 내가 읽을 수는 없지만, 어떤 책들은 나 같은 사람이 읽지 않으면 안 될 책이라 여겨 이 책은 논문 끝내자마자 읽었다. 고맙다. 좋은 일 하며 살아줘서... 10년 전 인연이 다시 좋은 책으로 만나게 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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