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중국사(China-a new history. John King Fairbank. Harvard University Press. 1992)』는 미국의 동양학 연구, 특히 중국학 연구의 태두(泰斗)라 할 수 있는 존 킹 페어뱅크의 마지막 저서다. 미국에서 동양학 연구의 양대 산맥은 하버드 대학교와 컬럼비아 대학교라 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하버드 대학교 옌칭 연구소는 역사나 규모면에서 세계에서도 첫 손에 꼽힌다. 계간 『황해문화』는 한동안 국내 대학 도서관에 책을 무료로 기증했는데, 번번이 반송되어 오거나 수취 거절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런 시절에 이미 하버드 대학교 옌칭 연구소는 『황해문화』를 하나의 결호도 없이 전권을 수집하고 있었다.
얼마 전 『황해문화』에서는 개혁개방 30주년을 맞이한 중국에 대한 특집을 진행했다.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었는데 하나는 개혁개방 30년을 통해 변모하는 오늘의 중국에 대한 올바른 상을 제시하고, 다른 하나는 한국의 중국학 연구를 총체적으로 점검해보자는 다소 거창한 목적이 있었다. 편집자로서, 또한 독자로서 나의 결론은 한 마디로 다소 부끄러웠다는 것이다. 『황해문화』는 1년에 네 번 발간되는 계간지인데 1년에 한 번씩은 지역을 테마로 하는 특집을 기획해왔다.
『황해문화』에서 지역학 연구에 주목하는 까닭은 지역에서 발간되는 잡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론 세계화(혹은 문화적 균질화)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지역적 저항의 담론체계를 수립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 번의 특집 기획 중 번번이 가장 어려운 특집 기획이 지역 특집이었다. 미국을 젖히고 가장 거대한 무역 상대국으로 떠오른 중국, 조선왕조 500년은 물론 고조선의 태동 이후 현재까지 우리 역사와 불가분의 이웃 국가인 중국에 대한 연구 수준은 아직도 척박하기만 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말았다(한국의 해외유학 박사 학위의 대부분이 미국에서 따온 것이지만 미국학 수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간혹 존 킹 페어뱅크를 조너선 D. 스펜스(Jonathan D. Spence)와 비교하고는 하는데, 아마도 본인 자신이 그와 같은 비교를 사양하지 않을까 싶다. 스펜스 교수 자신이 앞으로 존 킹 페어뱅크 같은 영향력과 업적을 축적할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존 킹 페어뱅크의 업적은 그리 단순하게 비교할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미국은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는 국가로 성장한다. 사실, 루스 베네딕트의 명저 『국화와 칼』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일본과 전쟁을 치르면서 그간의 전쟁 상대와 전혀 다른 일본에 대해 미국이 사실 잘 알지 못했다는 반성에서 비롯되었던 것처럼 미국은 동양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잠자는 사자’라 하지만 중국은 언젠가 깨어날 것이고, 미국은 당연히 그와 같은 세계 전략의 주요한 경쟁국이 될 중국에 대한 전략 수립을 위해 연구가 필요했다. 그와 같은 시점에 미국의 국가전략을 수립하는데 막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 바로 존 킹 페어뱅크였다. 그는 1932년부터 베이징의 청화대학에서 중국학 연구를 했고,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인 1936년부터 하버드대학에서 중국사를 강의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벌어지자 입대하여 OSS(전략정보국) 요원으로 활동하며 장차 장쩨스의 국민당이 마오쩌둥의 공산당에 패배하게 될 것을 예견했고, 미국이 장쩨스의 국민당보다 마오쩌둥의 공산당과 동맹을 맺는 것이 향후 이득이 될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성향은 전후 미국사회에 몰아닥친 매카시즘 열풍에 공산주의자 혐의를 받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하버드대학에 계속 잔류할 수 있었다. 훗날(1972년) 그는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 및 수교와 관련해서도 중요한 조언자였다.
1977년 하버드대학을 은퇴한 뒤엔 캠브리지대학과 함께 중국사 연구를 계속 진행했고,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그의 제자들은 물론 30여권에 달하는 그의 저서에 영향을 받은 이들과 함께 중국학 연구의 중요한 패러다임을 구축한 인물이다. 이 책은 그가 사망하기 직전인 1991년의 마지막 저서로 존 킹 페어뱅크는 이 책의 원고를 마무리한 직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존 킹 페어뱅크의 『신중국사』는 말 그대로 존 킹 페어뱅크가 중국학 연구의 최근 연구 업적들을 참고해 미국의 독자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남긴 중국사 개설서이다.
<제1부 황재독재의 등장과 몰락>, <제2부 후기 중화제국, 1600 - 1911년>, <제3부 중화민국, 1912 - 1949년>, <제4부 중화인민공화국, 1949 - 1991년>의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목차를 살펴보면 알겠지만 중국의 고대사 부분은 간략하게 축약하였고, 청조부터 근․현대 부분을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다. 중국사에 대한 기초 지식이 부족한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집필하였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선 상당히 부족한 책이지만, 같은 의미에서 압축적이고 잘 정리된 중국사 개설서가 필요한 독자에겐 상당히 유의미한 책이다. 또 한 가지는 단순히 역사적 사실들을 무미건조하게 나열한 것이 아니라 존 킹 페어뱅크라는 시대의 석학(碩學)이 바라본 중국의 역사, 중국의 의미에 대한 사유(思惟)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남는 아쉬움은 이 책에는 중국의 역사적 격변기이자 중국의 사상을 일군 춘추전국시대에 대한 언급이 최소한에 그치고 만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아쉬움은 <새물결>에서 출간하고 있는 『캠브리지 중국사』 시리즈로 충족시켜야만 할 터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한한대사전(漢韓大辭典)』이 출간되었는데 이 책의 아쉬움은 고조선 시대 이래 한자어를 사용해 온 한국의 한학(漢學) 영역이 누락되었다는 것이다. 『캠브리지 중국사』를 보며 느끼는 안타까움이 여기에서도 반복된다. 우리 것, 우리 시야로 바라본 것이 아닌 남의 시선, 남의 잣대로 본다는 건 주체(主體)로 설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수정증보판이 나왔는데 1988년 이후부터 1991년까지의 부분을 멀 골드만이 추가한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