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이 또 나를 데려가리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지음, 정영목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5년 8월
사진을 보는 사람은 사진에서 미미한 한 줄기의 불꽃 ....
우연과 현재적 순간을 찾고 싶어하고, 또 그 속에서 ....
우리들이 과거를 뒤돌아보면서도 미래적인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눈에 띄지도 않는 미미한 부분을 찾고 싶어하는 충동을 느낀다.
- 발터 벤야민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바람이 또 나를 데려가리"는 내가 구입한 책이 아니다. 후배의 동생이 디자인하우스에 근무한 덕에 한권 빼앗다시피해서 얻은 책인데, 결론삼아 말하자면 내 돈 주고 사면 다소 아까웠겠지만 그렇다고 구입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면 두고두고 아쉬웠을 책이다. 책의 지질은 일반적인 사진집으로는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그러나 전시회에서 오리지날 프린트를 본 다음에 든 생각은 무광지를 사용한 것은 나름대로 적절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전시회 제목이나 책 제목이 모두 "바람이 또 나를 데려가리"인데, 이 때의 바람이란 다른 말로 하자면 "길(road)"이어여도 무방할 것 같다. "길이 또 나를 데려가리"로 해도 괜찮단 말이다.
사람들은 흔히 바람처럼 자유롭게 라고들 말하지만 바람도 길따라 흐른다. 사람들은 흔히 새처럼 자유롭게 라고들 말하지만 새는 그저 먹이를 ?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갈매기 조나단"은 생태계의 조난자 혹은 법칙을 유린하는, 유린당한 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바람이 또 나를 데려가리" 전시회 작품들을 보면서 나는 위에서 인용한 벤야민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우리는 사진을 바라보면서 그 안에서 "미미한 한 줄기의 불꽃"을 발견하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단 생각 말이다.
고갯 마루에 오르면, 문득 바람에게도 길이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세상의 그 어떤 방황도 아무렇게나 다니는 것을 의미하지 않음을 바람이 길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깨우치게 되었다. 의미없는 방황이란 없음을... 세상 만물, 삼라만상에 모두 제각각의 길이 있듯이 그것이 운명과 같은 것의 명확한 호명은 아닐지라도...
가끔 나는 산에 오르다 바람에게 길을 묻는다. 친구여!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하고 말이다. 파도가 언제나 해변을 적시지만 항상 같은 모양의 흔적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내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있지만 그들이 모두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시인 천상병은 "바람에게도 길이 있다"는 시에서 "강하게 때론 약하게/ 함부로 부는 바람인 줄 알아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바람은 용케 찾아간다./ 바람길은 사통팔달이다./ 나는 비로서 나의 길을 가는데/ 바람은 바람길을 간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라고 노래한다.
내게는 이란 중앙부에 펼쳐진 이란고원과 이를 둘러싼 북쪽의 엘부르즈 산맥에 가고 싶어하는 한 친구가 있다. 그곳에서 그가 발견하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어쩌면 사진으로 본 미미한 한 줄기의 불꽃을 실제로 만나고 싶어서 그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다만 그에게 "서로의 팔목 야윈 슬픔" 잡아주고 싶었을 뿐이다. 너와 나, 몽상(夢想)의 접도(蝶道)*에서 서로의 날개를 포개며...
자연에서 생태계의 교란자 못지 않게, 인간 사회의 교란자는 불온하다. 그 불온함이 우리를 썩지 않게 만들어주었음을 기억한다. 친구여! 멀리 날아라... 훨훨... "밤은 길고, 낮은 길고, 생은 짧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정녕 그러하지 않은가.
* 접도(蝶道)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곤충이다. 꽃향기에 취해서 항상 비틀거리며 날아다닌다. 산간지방에 서식하는 일군의 나비들은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허공에도 전용도로를 만들어 놓았는데 이를 접도蝶道라고 한다. 세월의 강물에 떨어진 꽃잎들은 윤회의 바다에 다다라 나비가 된다, 나비가 되어 꽃에게로 날아가 꿈을 꾼다. 나비와 꽃이 둘이 아니며 생시와 꿈이 따로가 아니다." - 이외수 "감성사전" 중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