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院
이상해 지음, 안장헌 사진 / 열화당 / 2002년 10월
이 책 "서원"은 우리나라 각지에 산재해 있는 '서원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책이다. 웬만하면 이런 류의 글에 모든 것이란 표현은 잘 쓰지 않는 편이지만 이 책 "서원"에는 그런 말을 쓴다고 해서 책이나 저자에 대한 모욕이 되지 않으리란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내가 서원의 역사나 건축양식들을 두루 잘 알고 있는 전문가란 뜻은 아니다. 조선이란 나라를 어떻게 여기는가에 대한 역사적 접근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나는 그 중 하나로 도학(道學)의 나라라 여긴다. 긴혹 조선은 중기에 연달아 닥쳤던 왜란과 호란을 겪으며 망했어야 한다고 말한다. 역사에 가정은 우스운 일이나 심정적으로는 동의하는 편이긴 하다. 아마도 그런 가정에는 이후 일제 강점기를 회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희망사항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210x200(cm)판형의 책으로 일반적인 신국판 판형보다 크고, 가로 길이가 더 긴 판형을 하고 있다. 그런 판형을 하고 있는 까닭은 이 책이 서원을 역사적 공간으로서만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으로서의 서원을 중심축으로 하기 때문이다. 저자 이상해 선생은 건축사 전공자로, 한국건축역사학회 회장을 맡기도 했고, 현재 문화재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의 다른 한 축을 맡고 있는(책 표지에 소개되고 있는 바로는 사진이 우선이다.) 사진 작업은 안장헌 선생의 것이다. 사진 쪽이나 우리 문화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많이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월간 『영상』의 편집장을 거쳐 <한국미술오천년>(현암사)의 기획 및 편집을 담당했고, <한국미술전집>(1973-75), <한국의 미>(1983-87), <국보>(1983-85) 등의 작업을 진행해왔다. 이 외에도 많은 작업을 해 왔지만 그의 전문 영역은 우리 문화재의 아름다움을 사진을 통해 드러내는 것들이었다. 위에 언급된 책들을 보긴 했지만 그 사진 작업들에 안장헌 선생이 깊이 관여했음을 안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석굴암 본존불의 사진도 안장헌 선생이 촬영한 것이었다.
"서원"은 420여쪽에 달하는데 서문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 서원'에서 조선 왕조 치국의 이념이 되었던 유학의 도통을 이어나간 서원의 기능과 의미를 말한다. 그리고 본문격에 해당하는 '한국의 서원'으로 들어가는데 본문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두 개의 도판(전국 서원 분포도, 수록 서원 분포도)을 통해 전국각지에 산재해 있었던 서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서원은 소수서원으로부터 시작해서 동락서원까지 전국각지의 서원 70여 곳을 망라하고 있다. 각각의 서원은 대개 서원의 역사와 건축구조에 담긴 사상을 중심으로 서술되고 이를 실재 촬영한 도판들로 뒷받침하고 있는 형태다. 품위있는 사진 자료들이 매우 풍성하게 담겨 있으므로 현지에 직접 가서 보는 것 같은 실감이 있다.
수업시간에 배운 이들은 잘 기억하겠지만 서원은 기본적으로 학교이자 사당의 구실을 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서원에서 가장 중심을 이루는 공간은 강학공간과 제향공간이며 대체로 서원의 전면부에 강학공간이 후면부에 제향공간이 배치되는 형태이다. 서원 공간은 성리학이 그러한 것처럼 불교(선종)사찰의 건축구조가 흡사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홍살문은 서원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고, 하마비는 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고 말에서 내려 존경의 표시를 해야한다는 뜻이다. 홍살문을 지나면 서원의 정문격인 외문이 나오고, 경우에 따라 누각을 세운 경우도 있다.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원생들이 시회를 열거나 유림들의 회합을 위한 장소로 이용되는 곳이다. 그런 뒤에 나오는 곳이 비로소 강학하는 곳이다. 그래서 서원 건축을 흔히 전재후당(前齋後堂)이라 한다.
사실 이 책의 가격이나 쓰임새를 생각해볼 때 일반적인 독자들이 읽기는 어려울 거란 생각이다. 책의 서술 수준이 지나치게 전문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일단 가격부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1년에 한 두 차례 역사기행을 다니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모두가 그런 호사 아닌 호사를 누릴 수도 없고, 또 막상 어딘가 가보더라도 그곳이 그곳같고, 그것이 그것 같아 비전문가 입장에선 쉽게 접근하기 어렵기도 하다. 한 번 길을 나서게 되면 만만치 않은 경비가 들고, 막상 가보아도 별로 색다른 것을 느끼기 힘든 이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서원 기행의 첫 걸음을 딛어 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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