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진사 - 증보판
장클로드 르마니 외 지음, 정진국 옮김 / 까치글방 / 2003년 6월
원제가 ‘Histoire de la Photographie’인 『세계사진사』는 1986년 프랑스에서 처음 발간되었는데 얼마 전 증보판이 국내에서도 다시 발행되었다. 증보판이 발간된 이유는 그 사이 사진 예술에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 책이 증보된 까닭은 서양미술사하면 E. H. 곰브리치를 연상하게 되는 것처럼 다른 분야의 발전 - 예를 들어 기술적 발전 등과도 - 복잡하게 연관될 수밖에 없는 사진의 역사를 『세계사진사』만큼 잘 정리하고 있는 것도 드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세계사진사』는 앞으로 이 분야의 고전으로 자리하게 될 것 같다.
역사책, 그것도 예술에 대한 역사를 교과서적인 편재를 갖추고 해당 분야의 대표적인 필진들 여러 명이 참여해 구성된 책을 만드는 것은 간혹 필진의 편차를 조절하는 것이 매우 어렵고 힘든 작업이다. 19세기 초엽부터 21세기에 이르는 현재까지 사진의 역사를 다루는 방대한 사진 예술에 대한 기록이지만 정진국 선생의 말끔한 번역 덕분에 우리는 그 같은 원저의 어려움으로부터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었으리라.
20세기 초엽만 하더라도 가장 젊은 예술 중 하나였던 사진은 이제 그 자신의 역사를 가질 만큼 오랜 시간이 흘렀다. 당장 우리 자신을 돌아보더라도 어렸을 적 집안 장롱 깊숙한 곳에 감춰져 있다가 졸업식 같은 행사 때만 함께 나들이 장소에 나설 수 있었던 카메라가 이제는 지하철이나 버스, 음식점 어디를 가든 만날 수 있는 대중적인 상품이 되었다. 그 결과 과거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나 할 수 있는 작업이라 여겼던 사진 예술이 지닌 하나의 특성이었던 기록성은 더 이상 다큐멘터리 사진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카메라를 지닌 대중 누구나가 체험할 수 있는 영역이 되었다.
사진의 출현이 회화의 변화를 촉발했던 것처럼 컴퓨터,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사진의 변화를 요구한다. 이제 사진은 최초의 출발 지점이자 회화를 대체하는 중요한 특성 중 하나였던 기록성과 재현성을 상실한 대신 새로운 예술성을 찾아 나서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든 사진의 예술성은 처음 출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술, 그 중에서도 특히 회화 장르와 경합하고 있다. 때로 회화와 사진은 서로에게서 한껏 멀어지며 제각각의 길을 가지만 뜻밖의 미로에서 서로 마주치거나 한 몸이 되기도 한다. 회화와 사진이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는 까닭은 궁극적으로 두 예술 장르가 이미지 언어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세계사진사』의 여러 필자들은 사진이 현실을 반영하는 차가운 렌즈와 어두운 상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세계와 기술의 발전과 끊임없이 투쟁하며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책 속에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부록 역시 매우 알찬 편이라 이 한 권의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사진 예술의 태동으로부터 여러 장르의 사진 에술, 예술 장르의 하나로서의 사진이 안고 있는 고민의 내용에 대해 한 발 더 접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증보판에서는 1980년대 사진이 봉착했던 재현의 위기를 넘어 가장 최근의 역사까지 함께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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