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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해 몰랐다.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사람으로 본 20세기 문화예술사"란 홈페이지를 지난 2000년 처음 만들 때만 하더라도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알았더라도 이 책의 번역자인 이석호 선생이 어느 음악잡지에서 다니엘 바렌보임과 에드워드 사이드를 함께 다룬 기사를 읽고, 에드워드 사이드를 처음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 정도 이상으로 알진 못했을 것이다.
내가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해 비교적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6년 무렵, 한국에서 김성곤과 오길영 등을 비롯한 일단의 지식인들이 <에드워드 사이드 다시 읽기>란 책을 내었고, 그 책을 읽게 되면서부터였다. 앞서 '문화망명'이란 개념을 담아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었다고 했는데, 그 무렵 내가 생각했던 '문화망명'이란 개념은 사실, 정서적으로는 1990년대 초반 어느 시절엔가 보았던 가브리엘 살바토레 감독의 영화 <지중해>의 어딘가에 닿아있는 정서였다.
그 어딘가에서 시작해 나름대로 조금씩 정교하게 다듬어가기 시작한 것은 역사 속의 여러 망명자들에 대해 읽고 공부해나가면서부터였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문화망명'과 가장 근접한 개념을 제공한 인물이 바로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 1935.11.1~2003.9.28)'였다. 그는 끊임없이 “자기 망명(self-exile)"의 길을 걸었다. 그런 의미에서 에드워드 사이드는 지식인, 사상가, 이론가를 넘어 개인사가 하나의 역사가 되는 문화망명자로서의 삶을, 삶으로 보여준 사람이었다.
나는 한국사회에서 에드워드 사이드의 '탈식민주의'가 다분히 프란츠 파농의 '탈식민주의'가 탈색된 방식으로 수용되고 있다는 혐의를 두고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 자체가 엘리트주의 지식인은 아닐지라도 그의 취향 만큼은 확실히 고급진 인사임에 틀림없다. 나는 이것을 진정으로 사랑하여 내것으로 할 순 없을지라도 하나의 인문정신으로서 보편타당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 그것은 그의 삶이 그러했기 때문이며, 내가 살고 자라온 풍경이나 조건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라는 차이일 뿐, 고급과 저급의 위계로 구분할 수 없는 문제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사이드 음악비평집 <경계의 음악>은 매우 고급스러운, 고급한 취향의 고급한 책이다. 평소 내가 이렇게 말한다면, 대부분 비아냥거리는 것이거나 조롱하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이번의 경우에는 한 톨도 남김 없이 진지한 어조로 말하는 것이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원문을 읽어낼 재간이 나에겐 없지만, 번역자 이석호 선생이 구사하고 있는 문장 하나 하나가 아취(雅趣)가 흐른다. 옮긴이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사용되고 있는 몇몇 단어만 살펴보아도 금방 느낄 수 있다.
이 책이 나에게 오게 된 까닭은 해설을 맡은 정윤수 (Yoonsoo Jeong) 선생이 특별히 내게도 한 부를 보내주라고 했기 때문인 것으로 들었다. 책머리만 읽어도 그가 왜 나에게 이 책을 보내라고 권유했는지 알 수 있었다. 세르주 첼리비다케, 글렌 굴드, 로잘린 투렉, 알프레드 브렌델, 게오르그 숄티에 이르는 이름만으로도 말이다.
솔직히 이런 책은 사놓고 바로 읽기 어려운 책이며, 그렇게 읽어서도 안 되는 책이다. 서평집, 비슷한 한 권의 책을 썼지만, 나는 서평을 쓸 때 굳이 다루고 있는 해당 텍스트를 읽지 않아도 무방하게 쓰기를 중심에 둔다. 다시 말해 나는 어느 경우에도 직업적 평론가가 아니며 그와 같은 평론에 조금의 관심도 없다. 우럭 한 마리를 재료로 사용한다고 해서 우럭의 맛과 신선도에만 집중해주길 바라는 셰프가 있을 수 없듯 내가 쓰는 비평의 주인공은 언제나 나 자신일 뿐, 해당 텍스트는 그저 하나의 재료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책을 풍성하게 읽어내는 방법은 해당 텍스트를 함께 읽는 것이다. 마치 우럭이라는 재료의 참 맛을 아는 사람이 셰프의 능력도 더 깊이, 더 풍성하게 평가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대부분의 음악평론집이 그러하지만, 특히나 에드워드 사이드의 이 평론집은 오랜 시간 공들여 쓰고, 공들여 읽어내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므로 사놓고도 읽기 어려운, 고리타분한 책으로 생각하여 저편으로 밀어내는 것은 옳지 않다. 이 책을 펼쳐 읽으며 동시에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듣는 것, 로잘린 투렉을 이어 듣는 독서가 이 책의 참맛을 즐기는 방식이다.
그런 음반이 없다면, 유투브나 다른 경로들도 있다.
이 책의 제목은 <경계의 음악>이다. 'Music at the Limits'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이자 평생 두 세계 사이에서 망명자로 살았던 경계인, 사이드의 삶에 대해서는 자세한 논평이 필요 없을 듯하다. 집에서는 아랍어를 쓰면서 대학에서는 영어로 강의했고, 자신은 기독교도(성공회 신자)이면서도 이슬람의 옹호자였고, 팔레스타인 망명 국회(PNC) 의원이면서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Yasir Arafat)가 정도를 걷지 않는다고 생각하자 그와 단호하게 결별했던, 이스라엘이 설치한 장벽 앞에서 짱돌을 날렸던 인물이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던 인물이란 정도는 우리 모두 알고 있으니 말이다(물론, 나는 여전히 다니엘 바렌보임을 좋아하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인간에 관한 어떤 것도 나에게 낯설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평생 “모든 탈인간화된 삶”에 반대하여 인간해방을 외쳤다. 그는 인간해방을 위해 “현 사회의 모든 비인간적 생활조건”과 투쟁해야 하며 “모든 해방은 인간의 세계와 인간의 관계를 인간 자신에게 되돌려 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르크스에게 인간해방이란 인간들 사이에 어떠한 억압과 착취, 소외도 발생하지 않는 삶의 조건을 이룩해가는 운동,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위 문단에서 ‘인간해방’이란 단어 전부를 ‘교양’이란 말로 바꿔도 무방하다고 믿는 사람 중 하나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이 더욱 큰 기쁨이 되기 위해 필요한 일 중 하나일 것이다.
내가 『길 위의 독서』에서 “노동과 예술 그리고 교양은 결코 대치되는 개념이 아니다. 사람들은 ‘교양’이란 말을 쉽게 하지만, 교양은 자유로운 사람들의 몫일 뿐, 부모가 강제로 보낸 학원이나 돈으로 쌓은 경험, 남들 앞에서 약간의 지식을 들이대며 우쭐거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양이란 한 인간을 세상 속에서 자유로운 개인으로 성장하도록 만드는 것을 의미하며, 진정한 소유는 이 세계 속에 나만의 고유한 자리를 갖는 것이요, 자신만의 자유로운 시간을 소유하는 것이다.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것(교양)을 바탕으로 세상과 교류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세상을 소유하는 일이기도 하다.”(pp.313~314)라고 말했던 까닭이기도 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