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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7-01-17 22:15:48, Hit : 3745, Vote : 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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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룡.성민엽.정과리.홍정선 엮음 - 문학과지성사 30년

문학과지성사 30년
권오룡.성민엽.정과리.홍정선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2월

이 책 "문학과지성사 30년 1975~2005"는 소박하게는 한 출판사가 걸어온 30년의 역사를 정리한 사사(社史)에 불과하지만, 그 출판사가 한때 수많은 문학청년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고, 우리 사회를 이끈 문사들의 산실이란 점에서 소박하지 않다. "문학과지성사 30년 1975~2005"를 읽는 마음은 다소 복잡하지만 읽게 된 동기는 간단하다. 문지가 걸어온 30년의 역사는 우리 현대사의 가시밭길이었고, - 문지란 출판사가 언제나 가시밭길을 걸었다는 뜻은 아니더라도 - 순수를 부르짖든, 참여를 이야기하든 우리 근현대사에서 지식인이 가장 큰 몫을 한 시대가 바로 1970년대에서 1990년대 초반부에 이르는 시기였다. 비록 지식인들이 가시밭길을 걸었다고는 해도 그로인해 지식인들이 가장 빛나던 시기였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큰 빛은 큰 그늘을 남기는 법이므로...

이 책의 1장부터 2장까지는 이른바 문지핵심에 해당하는 문학과지성사의 1세대 동인부터 3세대 동인에 이르는 필진들이 주로 나서서 "문학과지성사"가 그간 거쳐온 세월의 주요 흐름들을 정리하고 있다. 출판의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는 이야기들도 다수 녹아 있는데, 예를 들어 60~70년대를 풍미했던 "창작과비평"이나 "문학과지성"을 처음 맡아서 출판해준 것이 일조각의 한만년이었다는 사실은 요즘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일 것이다. 우리 출판계의 큰 어른이었던 한만년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의 역사는 또 많이 다를 수 있을 뻔 했다.

문학과지성의 출발점에서 문학평론가 김현의 역할이 실질적으로 어떤 것이었는지를 살펴보는 일도 재미있다. 그의 학문적, 문학적 공과를 떠나서 그가 한 사람의 출판인으로서 보였던 열정이, 또한 문학과지성의 구심력으로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예전에 비해 나이가 들어 너그러워진 탓도 있겠지만, 어느 부분은 이전보다 더욱 냉정하게, 또 어떤 부분은 스스로 나누는 덕담 형태의 이야기들을 보고 빙긋 웃기도 했다. 본의든 아니든 이 책의 본래 성격이 사사이다 보니 덕담투로 흐르거나, 그땐 그랬지 하는 회고조로 흐르는 글들이 상당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성찰의 힘을 보여주는 글은 김병익의 "자유와 성찰 - 문학과 지성의 지적 지향"이다.

김병익은 문학과지성의 지적 원천이 4.19체험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들 세대는 이전이나 이후 세대와 다르게 자신들의 세대 체험이 비교적 긍정적이었다고 자인하는 드문 세대라고 말한다. 우리 민족사 최초로 밑으로부터의 혁명을 성취했다는 사실, 그로부터 비롯된 4.19세대의 낙관은 어쩌면 우리들 자신이 주체적으로 인식한 최초의 근대성일지도 모르겠다.(비록 5.16으로 4.19의 정신이 오랫동안 훼손당하긴 했지만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것만으로도 4.19세대에게는 그것이 열린 가능성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김병익은 "창비가 실천적 이론에 기여했다면 문지는 이론적 실천에 노력했다"고 말하는데, 이 문장이 보여주는 함의가 어찌나 크게 느껴지는지 오랫동안 이 두 출판사의 역사에 대해 반추해보게 만들었다.

어느 나라든 그 나라를 대표하는 출판사 하나쯤은 있고, 사람들은 그 출판사를 통해 그 나라의 문화를 가늠해보기도 한다. 이와나미가 그렇고, 갈리마르가 그럴 것이다. 한국에서는 문학과지성사가 그런 출판사일까? 내 생각엔 아직 30년은 더 지나봐야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