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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25-04-21 14:53:30, Hit : 15, Vote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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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올로지 - 몸이 말하는, 말하지 못한, 말할 수 없는 것』, 디플롯

이유진(2025), 『바디올로지 - 몸이 말하는, 말하지 못한, 말할 수 없는 것』, 디플롯

책은 4월 둘째 주에 도착했지만,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오늘(4월 17일)부터였다. 하필이면 책을 읽기로 마음먹고 책을 펼칠 무렵, 화제가 되고 있는 뉴스가 국민의힘 권성동 당 대표가 《뉴스타파》 ‘여’ 기자의 취재를 거부하는 과정에서 손목을 강하게 잡아끌어 손목에 상처를 입히는 폭행을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뉴스타파》가 무슨 언론이냐 찌라시라며 모욕적인 언사를 퍼붓는 동영상이 공개되어 논란이 되고 있었다.

업무상의 이유로 개인적으로 기자들을 상대하는 일이 많은 편이다. 중앙지와 지역지 구분 없이 친분이 있는 기자들도 상당수이지만, 이유진 기자에 대해서는 각별한 마음이다. 나는 이유진 기자의 독자로서 팬을 자처하지만, 그보다 앞서 항상 좋은 친구(벗)로 여긴다. 이런 농담이 있다.

“술자리에서 먼저 일어나는 경기도 친구들 욕하지 마라. 너는 한 번이라도 친구를 위해 경기도로 술 마시러 와준 적 있느냐? 그 친구는 막차 시간 때문에 먼저 일어나는 거다.”

나에게 이유진 기자는 멀고 먼 인천에서 나오는 『황해문화』를 취재하기 위해 서울에서 몸소 취재하러 와준 두 번째 기자였다. 이후 몇 번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항상 먼저 와주었다. 내가 그를 만나러 먼저 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은 몹시 미안한 일이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을 최대한 성실하게 읽어내리라 마음먹고, 공부할 때만 사용하는 나만의 독서법으로 읽어가는 중이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여’ 기자의 몸에 손을 댔기 때문에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누군가의 몸을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터치’하는 것은 성별과 무관하게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는 길 가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부르는 사회에 살기에 신체 ‘접촉’에 대해 쓸데없이 상당히 관대한 사회이다. 그러나 타인의 신체에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의도적으로 손을 대는 것은 폭력이다. 타인의 신체에 접촉하는 것에 대해 관대한 사회라고 해서 우리가 ‘몸’, ‘신체’에 대해서도 관용적인 사회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국제미용성형수술협회(ISAPS)의 2011년 조사를 보면, 한국은 인구 1,000명 당 성형 수술을 받은 횟수가 약 13.5건으로 세계 1위”였다. 2018년 기준 한국의 성형수술 산업은 107억 달러(약 14조 3천억 원) 규모이며 2022년에는 약 4,630만 명의 외국인 환자를 유치해 ‘세계 성형 수술의 수도’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이 단순히 아름답기 위한 각 개인의 본능에 해당하는 일일까?
피에르 부르디외는 『구별짓기』에서 “자기자신의 가치, 특히 자기자신의 신체나 언어의 가치에 대한 확신이 부여해주는 자신감은 실제로는 사회공간 상의 위치(그리고 물론 궤적)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자신의 용모가 평균 이하라고 생각하거나 실제 나이 이상으로 늙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의 비율은 사회적 위계가 높을수록 확연히 감소”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나 만족감에도 계급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유진(Youjin Lee)의 책 『바디올로지 - 몸이 말하는, 말하지 못한, 말할 수 없는 것』는 ‘몸(body)’에 관한, 몸에 관한 ‘담론’의 책이지만, 동시에 한국인의 몸에 새겨진 근대를 다루고 있는 역사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머리카락 한 올부터 유방, 엉덩이, 얼굴, 성형, 살집, 머리카락, 섹스와 출산, 피부, 허기와 식인(카니발리즘), 죽음, 부활 등 인간의 몸에 얽힌 온갖 이야기들을 28개 항목(부위)별로 상세하게 다루지만, 읽다가 나도 모르게 내가 살아냈던 그 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가슴-수치심과 저항 사이에 선 신체」 편에서 “1997년 미국 남성 잡지 《플레이보이》 모델로 알려진 이승희가 방한하면서 가슴 열풍은 뜨거운 문화 현상으로 등극했다.”라는 대목, 「엉덩이-시선의 제물이 되는 시대」 편에서 “1994년 영화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 등장한 ‘엉덩이가 예쁜 여자’ 캐릭터가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는데 마침 성형 수술 기술 또한 대대적으로 발전했던 때이기도 했다.” 같은 대목은 잊고 있었던 그 시절 한국의 풍속사의 일면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일정한 패턴이랄까 글쓰기 서사 전략이랄까 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유진의 ‘연구자’스러움이 묻어나는 이론적인 내용이 앞서고, 뒤이어 자연스럽게도 ‘기자’스러움이 묻어나는 대목들이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인간 이유진이 보이는 대목들이 있다.

● 1980년 사진가 헬라 하미드가 유방암으로 유방 절제 수술을 받은 작가 디나 메츠커를 찍은 사진의 제목은 <전사>였다. 상반신을 노출한 채 가슴에 있는 커다란 흉터를 드러낸 메츠커는 자유롭게 두 팔을 활짝 펼치고 있다. 나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 생각이 난다. 염을 하기 전 엄마의 잘린 가슴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면하면서 한쪽 유방이 있던 자리에 손을 대보고 싶었지만 끝내 그러지는 않았다. 엄마의 마지막 모습은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한쪽 가슴을 잃은 전사 같기도 했다. ●

이유진의 『바디올로지』가 가진 미덕은 이런 점이 아닐까 싶다. 연구서로서 갖춰야 할 단단함(의미)과 대중적 시선을 염두에 둔 글쓰기를 해온 기자가 쓴 책이 지녀야 할 시선과 풍부한 사례(재미)와 더불어 한 글쟁이가 담담하게 적고 있는 에세이로서의 글맛(인간미)이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 젊은 시절 나는 자연과 만나는 법을 몰랐지만, 나이 들면서 비로소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바람에 향기가 실려 올 때, 나만 알고 있는 장소에서 힘들게 자라고 있는 나무와 은밀히 악수할 때, 소중하게 여겨온 숲에서 새소리를 들을 때, 눈보라 치는 산에서 길을 잃을 때,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산등성이에서 들개들이 컹컹 짖을 때 경이로움과 함께 몸을 강하게 느낀다. 인간의 몸만 이 세계에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설령 떠나지 못하고 집 안에 머물지라도 이 몸으로 더 깊이, 더 멀리 가고 싶다. ●

위의 구절을 읽으며 조만간 그와 함께 차를 나누고 싶어졌다. 이제는 서로 너무 징그럽게 나이가 들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살아오느라, 사느라 고생했다고 ‘토닥토닥’ 정도는 해주고 싶다…. 나 역시 최근 가꾸기 시작한 식물의 씨앗이 깊은 흙 속에서 새싹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며 어떤 경이로움을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를 해질 무렵의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나누고 싶다. 이처럼 그에 걸맞게 체화된 좋은 책 내줘서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