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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9-01-02 11:39:40, Hit : 3390, Vote : 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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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스펜스 - 내 인생의 자서전 쓰는 법/ 고즈윈 / 2008년

내 인생의 자서전 쓰는 법 -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린다 스펜스 지음, 황지현 옮김 / 고즈윈 / 2008년 1월

“삶은 어떻게 한 권의 책이 되는가”라는 부제가 가슴에 와 닿는다. 어느 날 사무실에서 였던가? 아니면 머리를 자르기 위해 미장원에 앉아 기다리는 동안 손에 잡혀 읽은 여성지 어딘가에 이 책이 소개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기사에는 이 책에서 길어 올린 대략 40여개의 질문들을 나열해두고 있었는데, 그 질문들은 모두 익숙한 것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잠시 동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몇 차례 이야기한 기억이 있지만 다시 한 번 반복해 보면, 내 평생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숙제는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문학평론가 김병익 선생이 내어준 “왜 글을 쓰는가?”라는 과제였다. 문학비평론 강의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때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왜 글을 쓰는가?”라는 과제에 답하기 위해 꽤 오랫동안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체로 가장 어려운 질문들은 ‘어떻게?’가 아니라 ‘왜?’라고 시작되는 법이다.

사람들은 자기 인생을 소중하게 여기는 편이지만 막상 그것을 기록하여 타인에게 전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어려워한다. 본의 아니게 타인의 삶에 개입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괴로움을 겪고 있는 친구나 이제 막 알게 된 누군가가 나에게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는다. 말로 하는 대신에 나는 그것을 나에게 글로 풀어서 메일이나 편지로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편이다. 실제로 몇 차례 그런 경험이 있는데, 증상이 심각하든 경미하든 편지를 보내온 이들은 대부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고 이야기한다.

글쓰기는 자신을 객관화한다. 내가 쓰지만 글을 쓰는 과정에서 그리고 다시 글이 내 망막에서 기호로 변환되어 해석되는 동안 나도 모르게 감정에 갇혀있던 자신을 잠시라도 해방시켜주는 것이다. 우리가 논어를 읽었다고 해서 모두가 군자가 되지 않는 것처럼,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누구나 자서전을 쓸 리 없지만 잠시 동안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는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에는 자서전을 쓰기 위한 질문들로 가득한데, 모두 480가지나 된다.

어렸을 때 우리는 100문 100답이나 심지어는 1000문 1000답 같이 억지로 개수를 채운 질문들에 답을 해본 경험도 있다. 대개 이런 질문들은 조악한 질문들이 대다수이고, 그다지 긴 생각이 필요 없는 단답식으로 답하는 것만으로도 족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 책에 담겨진 질문들은 하나하나가 꽤 정련된 것들인데다가 질문 한 가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삶과 인생에 대해 걸음을 멈추고 생각해볼 만한 것들이다. 그리고 예시로 제시되고 있는 여러 유명인사들 혹은 평범한 이들의 답변을 읽어보는 것만으로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있다.

이 책을 읽노라면 마치 인생이 한 권의 책이 되기 위해 존재하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은 인생은 하나의 거대한 의문이고, 우리는 그 의문에 답을 하기 위해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질문이나 의문이 없는 삶이 의미가 없는 삶이란 뜻은 아니지만 그다지 재미있어 보이지 않는 건 사실이다.

우리가 남을 위해 살지 않는 것처럼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한 나의 대답은 그다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길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꾸몄어도 나의 결론은 그저 ‘나는 나를 위해 쓴다’는 것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답을 적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얼마 전 <시사IN>을 보니 캠브리지 대학의 정원사가 스스로를 소개하는 말 중에 ‘비출판 소설가’란 말이 있는 것을 보고 즐겁게 미소 지은 적이 있었다. 음, 나는 어떤 글쟁이일까? 지금 이 정도 재미를 느끼며 사는 것으로도 만족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