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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지식의 정치학
마이클 W. 애플 지음, 박부권 외 옮김 / 우리교육 / 2001년 2월
"문화"를 공부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대학 다닐 때 일본 코에이사의 "삼국지3"를 미친듯이 하고,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이라는 "스타크래프트"를 지금도 가끔 하다가 집사람에게 한 마디씩 잔소리를 듣는, 일상적으로 대중문화에 노출될 수밖에 없고, 그것이 중요한 진보일 수 있다고 믿는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에 비추어 보았을 때,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화연구라는 것이 마치 유럽쪽에서 바라본 러시아 지도 같아서 들어갈 때는 호리병처럼 작은 입구지만 일단 들어가고 나면 그 등 뒤로 엄청난 배후지를 숨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러시아를 점령하는 일은 군사적으로 매우 난감한 일이다. 제 아무리 많은 군대를 끌고 들어가더라도 그 넓은 평원에 흩뿌려 놓으면 한 줌의 모래 알 같을 테니 말이다(굳이 러시아를 비유 대상으로 택한 것은 로쟈님에 대한 오마주 정도로 이해해주시길). 그러므로 문화에 대해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겸손해야 한다.
문화를 공부하노라면 프랑크푸르트학파와 발터 벤야민, 그람시와 알튀세르, 롤랑 바르트와 피에르 부르디외의 얼굴을 싫어도 대면하게 된다. 당연하게도 이들이 이야기하는 각각의 이론과 개념들이 서구 뿐만 아니라 충분히 서구화된 우리 사회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들을 분석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문화가 사회의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이와 같은 재생산 구조에 합리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저항을 무력화하는데 이바지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주장한다. 예를 들어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문화산업론이 그렇고,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이 그렇고,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가 , 롤랑 바르트의 기호학, 부르디외의 구별짓기가 같은 맥락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기초적인 도구는 무엇보다 학교다. 이 사실을 부인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칼 마르크스가 널덜머리를 내며 비판했던 종교의 역할과 기능을 현대사회에서 담당하고 있는 가장 근접한 곳이 바로 학교다.
그러므로 사회에서 권력불평등이 어떻게 재생산되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육 혹은 공식적인 지식 생산의 메커니즘을 분석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라는 괴물은 국민이라는 괴물을 재생산하지 않고서는 존립할 수 없는데, 전시가 아닌 평화시에 국민을 재생산하는 가장 유력한 도구는 바로 교육제도이다. 교육은 모든 권력이 유지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을 제공한다.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알튀세르에 대해 행한 비판,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를 해체한다면 우리가 정권을 장악한 뒤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반문에서 알 수 있듯 국가는 그 존재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으며 국가가 존재하는 공교육의 존재도 함께 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국가는 결코 지배의 메커니즘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올해가 치르게 될 대통령 선거가 중요한 까닭은 국가라는 갈등의 장을 통해 앞으로 우리 사회의 어떤 사람들이 사회의 경제적 자원과 권력을 향유하게 될 것인가? 결정하는 문제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왜 사학법안이 문제가 되는가? 왜 전교조의 교육방침이나 방식이 언제나 논란의 핵심에 서게 되는가? 그 핵심은 미래의 국민들을 생산하는 현장이 바로 학교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육은 공식적인 지식이다. 때로 우리는 어렸을 때 특정한 책, 특정한 관점에 서 있는 지식을 습득한 뒤 이를 결정적으로 교정하는 순간을 경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80년대 우리가 배운 교과서에서 5.16은 혁명이었다가 군부쿠데타로 바뀌었고, 광주폭동에서 광주민주화운동, 광주항쟁으로 공식적인 지식이 바뀌는 경험을 했다. 공식적인 지식이 그 사회가 이룩한 수준에 합당하지 않을 때, 국가는 이에 대한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즉, 교육이란 누구의 지식이 '공식적'인 것인가, 누구의 지식을 공식적인 것으로 할 것인가, 그와 같은 권리를 누가 가질 것인가를 놓고 심각하게 갈등하는 장이다. 왜냐하면 대개의 경우 공식적인 지식은 평생동안 교정기회를 얻지 못하고, 존속하는 경우가 더욱 많기 때문이다. 일본의 검인정 교과서가 문제가 되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그런 점에서 마이클 애플의 이 책 "학교지식의 정치학 - 보수주의 시대의 민주적 교육"은 모두가 교육전문가인 대한민국 사회에서 학부모든, 학생이든 혹은 미래의 국민이든 누구나가 한 번쯤 읽어보고 토론해 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물론 대한민국이 좌경용공세력에 의해 장악되었다고 믿는 이들에게 이 책이 얼마나 효용성이 있을지, 그들과 소통할 때 이 책이 얼마나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최소한 지금 대한민국의 교육을 위험하게 만들고, 위협하고 있는 것이 전교조라고 생각하는(물론, 비판의 요소가 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바로 그들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생각하기 위해서 말이다.
마이클 애플은 단순히 국가의 교육정책이나 교육현장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지는 않다. 이 책에서 그에게 배워야 할 더욱 중요한 부분은 다음과 같은 역자 서문에서 잘 설명하고 있어 이것으로 갈음하고자 한다.
지배집단은 그들의 지속적인 지배에 대한 도전을 자신의 작전권 내에 가져다 놓는 데 탁월한 독창력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지속적으로 양보하는 아량을 보여 왔지만, 그 양보는 자신들의 전반적인 지도력이 위협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졌다. 여기에서 두 가지 중요한 사항을 지적하고 싶다.
첫째, 강력한 집단들은 독창적인 방법으로 자신에게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자신의 영향력 아래 포섭함으로써 헤게모니 통제력을 유지할 수 있다. 이 때 그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지도력에 도전하지 않을 정도로만 그들을 지원해 준다. 다시 말하면 지배 집단은 사회 변화에 대한 요구를 받아들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안전하고 가장 ‘위험’이 적은 요소만을 채택한다.
둘째, 이것은 이 책의 논의에서 대단히 중요한데, 지배집단은 어쩔 수 없이 양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점증하는 사회 운동에 직면하여 양보하지 않고는 자신의 권력을 결코 유지할 수 없다. 이것은 권력을 가진 자라고 해도 대항 헤게모니에 지속적으로 대응하고 그들의 지도력을 계속 유지하는 대가로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민주적 사회운동이 교육과 나머지 사회 영역에서 계속 강제력을 갖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동일한 맥락에서 민주적 사회운동은 지배에 대한 지속적 압력을 통하여 지배 집단이 내놓는 양보가 민주 세력 편에서 일어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권력 있는 자들이 지속적으로 양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한다는 바로 그 사실은 대항 헤게모니의 진정한 힘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 준다. 이 책 『학교 지식의 정치학』은 바로 이러한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교육, 경제, 정치에서 헤게모니 블록들이 탁월한 독창력으로 사람들을 자신의 지도력 아래 통합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 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므로 이들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항 헤게모니 활동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교육을 비롯한 여타 분야에서의 지배에는 서로 다른 종류의 지배가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헤게모니적 권력 관계가 매우 복합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계급이 대다수 상황을 규정하는 유일한 역동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각국은 그 나름의 국가적, 국제적 권력관계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성, 인종, 종족 관계도 이와 마찬가지로 본질적인 것이다. 사실 이들 권력관계는 가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용한다. 즉, 사회운동이 계급관점에서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성의 위계는 더욱 확고히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투쟁이 어떻게 하여 모순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본문 6~9쪽>
바로 그 투쟁의 결과들이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 얼마나 모순적인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우리들은 이제라도 성찰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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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그림자 |
역설적이지만 피지배계급의 학문은 그래도 좀 더 '공식적'인 것 같습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물리학, 피지배계급의 학문이라고요. 그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좀더 따져 봐야 겠지만 법학이나 정치학 같은 학문과 비교해 보면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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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
음, 그건 정말 생각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저는 별로 공감이 가질 않아서 말이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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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그림자 |
하긴, 공식적인 듯 알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거기에도 얼마나 많은 권력이 스며들어 있는가를 보면 혀가 내둘러 질 지경입니다. 언제, 시간이 되면 제 얘기를 문망에 한번 올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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