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Logo - 나오미 클라인 지음, 정현경.김효명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2년 3월
캐나다 출신의 언론인이자 반세계화운동가인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은 나와 동갑인 1970년생이다. 나와 나오미 클라인의 나이가 같다는 것을 굳이 언급하는 까닭은 동시대인이란 것을 강조하고 싶다는 의미 이외에 다른 의미는 없지만, 한 편으론 동년배로서 살아온 삶의 내력에서 유사한 공통점을 찾고 싶다는 내 개인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캐나다의 유명신문인 <글로브 앤드 메일>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지만 주류 매체에 몸담기 보다는 진보잡지를 선택해 일하기 시작했다. 나?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작은 광고회사에서 일하다 본의든, 아니든 뜻한 바가 있어 지역의 작은 문화재단에서 발간하는 비교적 진보적인 계간지에서 일하고 있다. 반세계화운동가들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노 로고(NO LOGO)』는 나오미 클라인을 일약 전 세계적인 유명인사로 만들었고, 나는 여전히 같은 직장을 다니고 있다.
아마도 그녀가 계속해서 <글로브 앤드 메일>에서 일했다면 지금보다 풍족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지금처럼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는 저자가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 책은 그녀의 나이 만 30세에 써낸 책인데, 이 책을 쓰기 위해 그녀는 5년간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제3세계 노동자들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의 실체와 이들 기업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문화적 현상들을 고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책은 그녀의 나이 25세 때 시작한 것이다. 그 때 나는 뭘 했나 생각해보니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시작했을 나이다. 내가 이제 막 한국이란 지역의 로컬기업에서 글로벌한 기업으로 스스로 발돋움하고자 했던 삼성과 사세를 무지하게 확장해 나가기 시작한 한보그룹의 출판인쇄 광고를 제작하고 있을 때, 나오미 클라인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국적 기업과 다국적 기업의 브랜드 광고가 만들어낸 문화적 현상들을 파헤치고 있었던 것이다.
정부를 대신하는 새로운 권력. 기업
나오미 클라인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다국적 기업(자본)’의 폐해에 눈뜰 무렵, 나는 ‘세계화’란 순 국산(國産) 느낌의 말이 얼마나 강력한 힘으로 세계 여러 지역에서 지역 시민들의 삶을 손아귀에 장악하고 있었는지, 장악해 나갈지에 대해 미처 자각하지 못했다. 그 무렵 한국은 문민정부의 등장과 하나회 척결, 금융 실명제를 갓 도입하였고, OECD가입을 추진하였으며 UR(우루과이 라운드)가 어렴풋이 다가올 세계화의 실체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나오미 클라인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이 ‘세계화’라는 조병(躁病)적인 표현에 고무된 흥분이 가라앉고 그 허울 아래 균열이 드러나는 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난 4년 간 서구 사회는 시간이 갈수록 경제적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문화적 선택은 좁아져만 가는 또다른 의미의 지구촌을 발견하고 있다.
직업과 테크놀로지가 평준화됨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일부 다국적 기업들이 무한한 이익을 위해 빈곤한 나라들을 착취하는 곳이다. 빌 게이츠(Bill Gates)가 5백 50억 달러의 재산을 축적하는 동안 그의 직원들의 1/3은 임시직으로 근무하며, 경쟁사들은 마이크로소프트에 합병되든지 아니면 소프트웨어 일괄판매라는 최근의 흐름에 따라 뒤처지게 되어 있다.
…<중략>…
4년 전 이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의 가설은 대체로 직감에 근거하고 있었다. 대학 캠퍼스에서 몇 가지 조사를 하다가 만난 많은 학생들은 학교 식당과 강의실, 심지어 화장실까지 광고 전단이 나붙고, 학교가 특정 음료 회사, 컴퓨터 회사와 독점 계약을 맺고, 학문 연구가 점점 시장조사처럼 변해가는 현실에 분노했다. 그들은 이로 인해 자신들의 교육 환경이 침해받고 있다고 느꼈고, 자신들의 학교와 관계를 맺게 된 몇몇 기업들이 미얀마나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와 같은 먼 나라들에서 벌이는 일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본문 19-20쪽>
나오미 클라인은 세계화가 진행되는 동안, 서구 사회의 빈부 격차가 점점 더 심해지고, 문화적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까닭이 브랜드로 상징되고, 널리 유포되는 기업 이데올로기에 시민사회가 깊이 침윤당한 결과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것은 명확하긴 하지만 심증에 불과했고, 이것을 글로 써서 증명하기 위해서는 상관관계를 밝혀낼 필요가 있었다. 신문에 기사로 쓰기엔 너무나 광범위한 주제였기 때문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감당해 줄 만한 매체를 찾기도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결국 본인이 직접 책을 쓰게 된 것이다. 저자 자신은 “이 책은 사실상 세계 정부가 되어버린 대기업 집단의 파워를 설명하는 부류의 책은 아니다. 그보다는 ‘기업 룰’에 반대하는 세력을 분석하고 기록해 그 저항을 필연적으로 만든 특정한 문화적 ․ 경제적 환경을 파악하는 책”이라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저자의 희망 사항일 뿐, 실제로 책의 대부분은 ‘저항’ 그 자체보다는 대기업 집단이 만들어낸 문화적 ․ 경제적 환경의 실체를 고발하고 있다.
사라지는 것들 - 민주주의와 공공성
『노 로고(NO LOGO)』는 「No Space(공간이 사라지고 있다)」, 「No Choice(선택의 여지가 없다)」, 「No Jobs(더 이상 일할 곳이 없다)」, 「No Logo(유명 브랜드를 겨냥하라)」란 네 가지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종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No Space(공간이 사라지고 있다)」는 우선, 자본 축적의 가장 중요한 조직으로 ‘노동자’와 대립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온 ‘기업’, 무미건조하고 비인간적인(?) 조직이 어떻게 ‘개인적이고 따뜻하며 인간적인’ ‘친구의 대명사’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었는지, 그 과정에서 의인화된 브랜드(Brand)의 마법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서구 시민사회가 프랑스대혁명 이후 획득한 가장 중요한 권리로 간주하고 있는 ‘시민권’과 시민의 권리가 행사되어 온 주요한 공공영역이 점차 기업과 기업에 의해 주도되는 기업 이데올로기에 의해 침범당하면서 점차 소비를 위한 광고판으로 전락해 가는 실정을 보여준다. 가장 대표적인 장소가 앞서 인용했던 것처럼 바로 ‘학교’다. 이 같은 사례는 대기업이 학교재단의 주요 구성원이 된 한국의 대학 현장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현상들이다.
스타벅스의 마케팅 부사장 스콧 베드버리(Scott Bedbury)는 “소비자들은 진심으로 제품간에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인정하면서 브랜드들은 ‘스타벅스 경험’을 통해 고객과의 ‘정서적인 유대감을 형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CEO인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는 스타벅스에 오는 사람들이 커피만을 바라고 오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스타벅스에서 얻는 것은 커피의 낭만, 즉 따뜻한 공동체의 느낌이다.” <본문 41쪽>
현대의 여러 기업들이 기업구성원들은 물론 소비자들 역시 가족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은 여러 경로를 통해 잘 증명된 바 있다. 그러나 이들이 판매하는 것은 여전히 가족적인 분위기이며, 때때로 그들 자신이 붕괴시킨 공동체의 다양한 소규모 시민사회 영역의 친근감, 공동체의 따스함이다. 예를 들어 과거 동네마다 있던 영세서점들은 그 지역의 독자들을 위한 작고, 친근한 사랑방이었으나 오늘날 대형 서점들에 의해 붕괴된 영세서점을 대신해 인터넷 서점(특히, 이곳 ‘알라딘’)들은 독자이자 소비자들에게 인터넷 커뮤니티(공동체)를 제공함으로써 과거 지역사회의 소규모 공동체(서점)가 제공했을 만한 서비스를 대체하고, 이를 통해 ‘브랜드’에 대한 소속감을 강화한다. 브랜드에 대한 소속감과 자부심을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로 삼고 있는 것은 ‘스타벅스’만이 아니다. ‘애플’ 컴퓨터와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은 자사 제품을 구입하는 그 제품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아우라와 기업 정신을 소비자들과 공유한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기업 이미지를 함께 판매한다.
내가 입는 브랜드, 브랜드가 삼켜버린 정체성
‘광주학살’을 통해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사회적 유화정책의 일환으로 1983년 교복자율화 조치를 시행한다. 나는 첫 번째 ‘교복자율화 세대’로서 이 시기가 한국 사회에서도 브랜드라는 기업의 이미지가 소비자들에게 본격적으로 확장되는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교복을 입지 않게 된 우리들은 그 무렵 동네 곳곳에 생기기 시작한 다양한 청소년 의류 전문 브랜드와 무엇보다 ‘나이키’로 상징되는 운동화 브랜드를 신기 위해 부모들을 들볶았다. ‘나이키’ 운동화는 초등학생들과 변별되는 중요한 요소였고,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멋진 이미지로 소녀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중요한 무기로 인식되었다. 대체로 자기 발보다 좀더 큰 사이즈의 농구화를 즐겨 신었는데, 이처럼 값비싼 농구화를 신을 수 없는 아이들은 동대문 시장에 나가 당시 말로는 ‘짜가’, 요즘 말로는 ‘짝퉁’ 운동화를 구입했다. 그런데 한 반에는 한 명 정도는 꼭 이런 짝퉁 브랜드의 감별사를 자청하는 녀석들이 한 명씩 있기 마련이라 그들은 같은 반 친구들이 신은 짝퉁 물건을 밝혀내 이를 놀려대곤 했다.
이처럼 청소년들은 시민주체로서의 권리를 자각하기도 전에 먼저 브랜드를 접하고, 값비싼 브랜드에 대한 추종을 통해 소비주체로서 자신의 권리를 예민하게 자각하고, 소비가 곧 자신의 자아 정체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도구이자 기능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와 같은 브랜드에 대한 자발적인 충성과 복종의 경험이 어떻게 시작되는지에 대해 나오미 클라인과 나는 동갑이지만 시기적으로는 나보다 조금 이르게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꼭 끼는 디자인의 청바지가 한창 유행일 때,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나와 내 친구들은 남의 엉덩이에 새겨진 로고에 관심이 많았다. 브룩 쉴즈는 “나와 내 캘빈 바지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어요”라고 말하며 우리를 유혹했고, 오필리아 스타일의 침대에 누워 조다쉬 청바지 지퍼를 끌어올릴 때면 그녀가 한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한편 당시 우리 학교의 파라 포셋(Farrah Fawcett, 미국의 섹시한 여배우 - 옮긴이)의 축소판이었던 로미(Romi)는 책상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우리가 입고 있는 스웨터나 폴로 셔츠의 깃을 뒤집어 보곤 했다. 그 애는 가슴에 새겨진 악어나 폴로 마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가짜 복제품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고 뒤에 붙은 라벨을 확인했던 것인데, 당시 겨우 여덟 살이었던 우리는 이렇게 로고 테러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본문 49쪽>
앞서의 사례가 비교적 자발적인 소비주체화라면 미래의 시민으로 성장해야 할 청소년들을 광고나 홍보의 도구로 이용하는 현상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UCC나 블로그 등을 통해 매우 강력하게 추동되는 현상 중 하나이다. 그러나 나오미 클라인이 소개하고 있는 미국의 사례는 머지않은 장래에 한국에도 들이닥치게 될지 모를 매우 끔찍한 모습이다.
네가 감히 기업에 저항하랴!
도들 중에서 가장 악명 높은 사건은 역시 1998년에 있었던 코카콜라 콘테스트이다. 코카콜라에서 학생들에게 쿠폰을 나눠주는 전략을 세울 것을 여러 학교에 부탁했던 것이다. 가장 훌륭한 판촉 전략을 만드는 학교에는 500달러의 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조지아 주 에반스의 그리브리어(Greenbriar) 고등학교는 이 콘테스트를 매우 진자하게 받아들여 3월 말에 공식 코카콜라의 날을 지정했는데, 모든 학생이 코카콜라 티셔츠를 입고 등교해 코크(Coke)라는 글자 모양을 만들어 사진을 찍게 했는가하면, 코카콜라의 경영진들이 진행하는 강의에 참석해 이 검은 색의 탄산음료에 대해 배웠다. 이 한 편의 브랜드 만들기는 교장이 매우 대담한 반항의 현장을 보는 순간 깨졌다. 마이크 카메론(Mike Cameron)이라는 열아홉 살의 졸업반 학생이 펩시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학교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 학생은 즉각 정학처분을 받았다. 교장인 글로리아 해밀턴(Gloria Hamilton)은 이렇게 말했다. “‘코카콜라의 날에 펩시 셔츠를 입었다고 학생을 정학시켰다’라는 사건이 좋지 않게 들릴 것이라는 건 나도 알고 있다. 물론 단순한 교내 행사였다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사의 사장님도 참석했고 강연을 하러 애틀랜타 본사에서 친히 온 분들도 있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손님을 맞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본문 128쪽>
어쩌면 이런 현상은 이미 한국에서도 발생했다. 2005년 고려대학교에서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게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하기로 했다가 학생들의 반발로 작지 않은 소동을 치렀다. 이때의 시위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던 일곱 명의 고려대 학생들이 교수를 억류했다는 명분으로 학생으로서는 사형(死刑)에 해당하는 ‘출교(출교는 입학기록 자체를 말소)’ 처분을 당했다. 나중에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 이후 참여연대에서 열렸던 토론회 자리에서 이때 당시 출교처분 당한 학생을 만나 본 적이 있는데, 현재까지도 이들은 학교 당국의 복교 조치는 물론 사회적 관심으로부터도 배제되어 있는 실정이다. 당시 일부 고려대 학생들은 그들의 반대 시위로 인해 고대생들의 삼성 취업이 어렵게 되는 것 아니냐며 이들을 지탄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들 대학생들이 이런 걱정을 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나오미 클라인은 「No Choice(선택의 여지가 없다)」라고 말한다. 어째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일까? 제조업 분야의 생산성은 기술혁신의 결과로 매우 높아진 반면, 제조업 이윤은 감소했다. 화학비료의 발명으로 농업생산성은 인구증가율을 앞지를 만큼 높아졌지만 이를 구매할 수 있는 대상이 증가하지 않았으므로 곡물회사들은 잉여곡물을 폐기처분하는 것처럼 제조업 분야에서 공산품 생산성은 높아졌지만 품질 혁신과 제조업체간의 과잉 경쟁으로 인해 제조업 분야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식민지 국가들은 값싼 노동력을 발판으로 과거의 제국들을 위협했다. 수익성이 악화된 기업들은 기업 간 인수 합병을 통해 거대 다국적 기업으로 새롭게 탄생하는 방식으로 스스로의 몸피를 늘이는 것과 동시에 경쟁자들을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규모의 경제를 도입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독점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기업이 바로 월마트로 상징되는 대기업들의 SSM(Super Super Market)이다. 온갖 종류의 새로운 대형 체인점 사업은 과거였다면 중소영세상점의 사장이었을 자영업자들을 집중적으로 몰락시키고 있다. 「No Choice(선택의 여지가 없다)」와 「No Jobs(더 이상 일할 곳이 없다)」는 사실 비슷한 이야기다. 자영업자가 줄어드는 풍경은 역사적으로 그리 드문 광경은 아니다. 로마제국의 몰락에 앞서 라티푼티움(대농장)에 의한 자영농 몰락이 있었고, 산업혁명으로 장원경제가 붕괴하면서 해방된 농노들은 도시의 프롤레타리아트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러나 로마제국과 근대 산업화의 풍경보다 현대 제조업의 몰락은 더 잔인한 풍경이 될 가능성이 높다. 로마제국은 식민지의 값싼 농산물을 들여와 무료로 제공하거나 값싸게 제공하고, 몰락한 자영농을 달래기 위해 검투 경기를 제공했다. 근대 산업화 과정에서 몰락한 도시로 유입되어 노동자가 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탈산업화는 일자리를 박탈하고 있다.
1+1은 2가 아니다
은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할 때까지의 계보를 1장 1절에서 장장 17절에 이르는 동안 헤아리고 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중략> …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이에 필적할 만한 것이 1990년대 미국 방위산업계의 계보도이다. 제너럴 다이나믹스는 GE에어로스페이스와 합병하고, 마틴마리에타는 록히드와 합병하고, 이 둘은 다시 합병하여 록히드마틴을 낳았느니라. LTV는 그루만과 합병하고, 노스롭은 웨스팅하우스와 웨스팅하우스는 다시 TRW와 합병하여 노스롭그루만을 낳았다. 보잉은 록웰과 합병하고, 다시 맥도넬더글라스와 합병하였고, 이는 다시 마그나복스와 합병하였고, 또다시 휴즈우주항공부문을 합병하여 보잉이 되었다. E시스템즈는 레이시온과 합병하고, 텍사스인스트루먼트와 합병하고, 이는 다시 레이시온이 되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건, 이런 걸 말한다. 미국의 방위산업체간의 인수합병을 예로 들긴 했으나 갈수록 첨예해지는 경쟁 속에서 기업간 인수합병을 통한 거대 기업의 탄생은 자본의 자구책이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거대기업은 물론 많은 일자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쓸 만한 일자리는 계속해서 줄어든다. ‘1+1’은 ‘2’가 아니라 ‘1.5’내지는 ‘1’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사회전체적으로 실업율은 높아지고, 실업율이 높아지니 지역의 정치가들은 더욱더 기업에게 굽신거리게 된다. 지역의 정치가들이 중앙에 올라가 중앙 정치인이 되므로 국가권력이 기업권력에 굴복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과거에 사회적인 목소리를 검열하는 것은 국가기관이었으나 이제는 기업이 자체적인 검열에 나선다. 광고 수익에 의존하는 민영방송, 국가공공서비스의 민영화는 민주주의가 유지되고 존속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다양한 사회적 의견들과 반대의 목소리를 점점 더 숨죽이게 만들고, 처음부터 발언할 장소 자체를 제공하지 않는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대체하는 자본가의 기부
다른 한 편으로 대기업의 CEO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히어로가 된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과 그의 친구 앨런 버핏은 자본가로서의 명성뿐만 아니라 아무 대가 없이 사회적 기부를 풍족하게 하는 인물로 비춰진다. 그 이면에서 다음과 같은 진실들은 가려지기 마련이다. 앨런 버핏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무엇인가 생산하여 팔아본 적이 없는데 는 것들은 세계 2위의 거부가 되었고,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에 고용하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 중 필수적인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은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만약 이들이 정규직 노동자였다면 굳이 빌 게이츠가 선심 쓰듯 베푸는 기부를 통한 복지 혜택을 보지 않더라도 기업에 의한 의료보험 혜택 등 다양한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회사가 채용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지불해야 할 비용을 절감해 얻은 수익으로 사회봉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과연 지식기반 서비스 산업은 우리 시대의 젊은 청년들을 실업자 상태에서 구원해줄 수 있을까?
이 책의 제목이자 핵심이라 할 수 있는 「No Logo(유명 브랜드를 겨냥하라)」는 이처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서도 세계를 지배하는 기업주의에 저항하는 반기업 운동에 대해 다룬다. 나오미 클라인이 ‘반기업 운동’을 하나의 주요한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반기업 운동이 노동착취를 단절하고, 공정한 무역이 세계화로 인한 지역간 불균령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나오미 클라인 이후에 등장한 수많은 책들이 또한 이와 같은 방식이 지닌 한계를 지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오미 클라인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그녀는 세계사회포럼에 즈음해서 세계적으로 크게 번졌던 반세계화운동에서 하나의 희망을 읽고 있다. 중심이 없는 운동, 일관된 전략도 없는 혼란스러운 운동, 그 자체가 하나의 세상 안에 다른 여러 개의 세상을 추구하는 운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끝으로 이토록 문제가 많은 자본주의가 현재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유연함과 뻔뻔함을 일깨워주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1999년 5월 나이키의 노동착취문제가 떠들썩할 무렵, 이들은 랄프 네이더(Ralph Nader) - 그는 소비자 권리 운동의 가장 강력한 지도자이며 다국적 기업에 대한 저항으로 영웅시되는 인물이다 - 에게 접근해 나이키 광고에 출연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 광고는 매우 간단했다. 네이더가 에어120운동화를 들고 “신발을 팔기 위한 나이키의 파렴치한 시도”라고 말하면 2만 5천 달러를 지급한다는 것이었다. 나이키 본사에서 네이더에게 보낸 편지는 “소비자 권리 보호를 위해 앞장서고 계신 네이더 씨께서 우리에게 가볍게 잽을 던졌으면 합니다. 이는 매우 나이키다운 광고라고 생각합니다.” 절대 가볍지 않은 사람으로 유명한 네이더는 “이 놈들의 뻔뻔스러움 좀 보게”리고 말했을 뿐이었다.(본문 3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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