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사전
로이 셔커 지음, 이정엽 장호연 옮김 / 한나래 / 1999년 10월
내게는 세광음악출판사에서 펴낸 "팝아티스트 대사전"이란 책이 있다. 1985년에 초판이 발행되었는데, 나는 이 책의 7판인 1990년판을 가지고 있는데, 이 책은 ABC순으로 "아바(Abba)"부터 "지지탑(Z.Z.Top)"에 이르는 대중 음악 뮤지션들을 소개하고 있다. 뉴질랜드 마시 대학교에서 미디어 대학원 교수로 있는 로이 셔커 (Roy Shuker)의 "대중음악사전"은 앞서 말한 세광판 "팝아티스트 대사전"과 흡사하면서도 다른 유형의 사전이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철학자 볼테르는 자신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사용하는 단어를 먼저 정의하라고 요구한바 있다.
"사전"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흔히 "사전적 의미"란 레토릭을 통해 사전의 의미를 정의하곤 한다. 보통 사전은 정의된 단어를 수록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반대로 사전에 수록됨으로써 정의되기도 한다. "대중음악사전"의 원제가 "Key Concept in Popular Music"인 점은 여러가지를 시사해준다. 우선, 저자가 대중을 정의하는 방식이다. 그는 대중을 mass가 아닌 popular로 정의함으로써 대중을 비교적 중립적,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대충 직역해보자면 "대중음악의 핵심 컨셉" 정도로 변환될 수 있는데, 이 책의 내용이 단순한 사전적 정의 이상의 것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대중의 영어식 표현, mass와 popular의 용례에서도 알 수 있듯 "대중음악"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는 것은 '시(poem)란 무엇인가?'처럼 폭력적이다. 저자는 당연히 한 마디로 정의하지 않는다. 저자는 사전적 정의와 의미의 분화 속에서 줄타기를 시도한다. 그는 가능한한 대중음악에 대한 다양한 정의와 관점들을 수용하고, 포용함으로써 좀더 많은 의미의 분화가 가능한 방식을 사전적으로 시도한다. 다음의 사례를 살펴보자.
이 책의 117쪽과 119쪽에 걸쳐 "목소리(voice)"를 사전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대중 음악은 압도적으로 '목소리의 음악'이다. 노래를 부르고 가수의 노래를 듣는 즐거움이 대중 음악에서 중심적이다" 그리고 "보컬은 노래 내에서 통일적unyfying 초점으로 작용하는 경향이 강하다"(Middelton, 1990: 261, 264).
117쪽에서 시작해서 118쪽을 가득 채우고 다시 119쪽으로 이어지는 동안 저자는 "목소리"라는 하나의 단어가 대중 음악 내에서 지닌 다양한 의미들을 여러 참고 문헌에서 발췌한 인용과 더불어 소개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 조니 로튼(섹스 피스톨스의 그 조니 로튼 말이다)이 나오기도 하고, 믹 재거가 나오기도 한다. 로이 샤커의 "대중음악사전"은 원저에서는 분명 ABC순이었겠지만 번역과정에서 이를 가나다순으로 재배치했는데, 189쪽에서 시작하는 단어는 "수용자, 청중audiences, 소비자 consumers"이다. 사전적으로 ABC순이라면 별도로 배치되었어야 맞았을 텐데, 이 둘이 하나로 묶인 것은 수용자의 입장이란 공통점 때문이리라.
저자는 대중음악에 있어 수용자라는 컨셉을 설명하기 위해 "소비, 인구학, 프랑크푸르트 학파, 고급문화"라는 관련항목들을 함께 읽어볼 것을 권유한다. 로이 샤커의 "대중음악사전"은 물론 사전이다. 그러나 사전적 의미의 사전에서는 조금 벗어나 있다. 사전의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지만, 대중음악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개념들을 복합적으로 이해하고, 좀더 깊이 있는 공부를 위한 이들부터, 단순한 취미보다는 조금 더 전문적인 영역으로 들어가기 위한 이들의 안내서다. 물론 이 책을 읽기 위해 반드시 "조니 로튼과 믹 재거"를 알아두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미리 알고 있다면 읽기는 더 쉬워진다. 반대로 이 책을 통해 조니 로튼과 믹 재거를 알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만...
* 이 책에 별넷을 준 이유는 순전히 책 자체의 문제때문이다. 명색이 "대중음악사전"인데 좀더 세련되고 튼튼하게 만들면 어디 덧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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