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송은 죽었다
이종환 (지은이) | 리즈앤북
설마 DJ 이종환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가도, "공동경비구역 JSA"를 보고 나오다가 어린 친구들이 "김광석"이 누구야?라며 자기네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을 엿들었던 경험이, 영화 "트로이"에서 헥토르(에릭 바나)가 아킬레스(브레드 피트)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엄청난 스포일러라도 되는양 이야기하던 어떤 지하철 승객의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던 경험이 DJ 이종환에 대한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그가 공중파 방송에서 DJ로 활동한 것이 대략 40년 가량 되는 것으로 안다. 그냥 단순한 DJ가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그는 우리 대중음악사, 대중문화에 나름대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해왔고, 또 그의 이런 역할들은 그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인정해줄 대목이기도 하다. 그는 "한밤의 음악편지”, “별이 빛나는 밤에”, “추억의 팝송”, “이종환의 디스크쇼” 등을 진행했고, 그가 운영하던 명동의 "쉘부르"는 70년대 포크 음악의 산실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한동안 그에게 따라붙던 별명 가운데 하나가 "밤의 교육부장관, 청소년부장관"이었던 것은 그의 영광과 동시에 그의 위세를 대변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그는 몇 차례 물의를 일으키기도 한다. 우선 90년대 연예계비리수사의 물망에 올랐던 적이 있고, "지금은 라디오 시대"를 진행하면서 자신을 비난한 청취자 개인 연락처를 알아내 항의전화를 했다 하여 시끄러웠던 적도 있다. 또 술을 마신 채 방송진행을 하다가 말실수로 구설에 오른 뒤 방송계를 은퇴한 적도 있다. 그런 뒤 다시 명예롭게 퇴진하고 싶다는 명분을 세우고, 방송에 복귀한 뒤인 지난 2002년엔 정치적으로 편향된 발언을 했다해서 청취자들의 비난을 받은 적도 있다.
그래서 이 책 "팝송은 죽었다"를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로 잠시 고민했다. 결론은 구입해서 읽었고, 나름대로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에는 작가의 머리말이 없다. 다만 책 표지에 저자 본인의 글인 것으로 추정되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을 뿐이다.
"이제 노래를 부른다는 사람들은 욕지거리에 악을 쓰며 경련이 온 듯 몸을 뒤틀고 되지도 않는 미국말을 섞어가며 미친듯이 흔들어대는 패거리밖에 없습니다. 그도 아니면 경쟁적으로 속살을 드러내며 누가 더 교태로운가 경쟁입니다. 섹스와 섹시한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상품화 전략은 극에 달했습니다. 이제 우리 주변에서는 이런 노래, 이런 음악은 들을 수 없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노래가 존재한다지만 10대들에게 인기있는 특정한 가수들만이 법석을 떠는 고집과 관행의 방송이 이런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그리고 책의 속 표지에 "나는 요즈음 반은 시체가 된 팝송을 염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란 글이 실려 있다. 그래서일까, 알파벳 사전식 배열로 다뤄지는 팝스타들의 노래와 그에 얽힌 개인적인 추억들은 때로 비장하게, 때론 서글프게도 읽힌다. 그러나 어쩐지 책을 다 읽고 난 뒤의 내 느낌은 TV프로그램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 열변을 토하며 이 나라의 안보를 염려하고, 젊은이들의 썩어빠진 개인주의를 개탄하여, 군에 가지 않기 위해 브로커들에게 뇌물을 준 부모들을 비난하던 그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말한 이들의 자식들은 합법적인 방법으로 군대를 면제 받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름답게 늙는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건 말이나 글이 아닌 삶이 보증해주어야 가능한 것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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