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
마티아스 아르놀트 / 한길사 / 1997년 3월
에드바르트 뭉크... 뭉크에게서 연상되는 것은 암울하기까지 한 북구의 신화와 그 고향인 스칸디나비아 반도, 바이킹과 빙하가 흘러내려 만들어진 피요르드 해안이 떠오르고 눈 쌓인 자작나무 숲이 떠오른다. 낮처럼 밝은 백야와 저 멀리 빛나는 오로라. 대기에 자욱하게 드리워진 안개의 장막들이... 뭉크는 그 안개들에 문명의 핏빛 노을에 놀라 절규한다.
미술작품이 수난을 겪는 일들은 종종 있는 편이다. 살바도르 달리의 조각품 가운데 어떤 것은 실제 빵을 조각 두상의 머리에 얹어 놓은 것이 있었는데, 전시 중에 개가 물고 달아난 적도 있고, 많은 모사품들이 만들어진 것으로 유명한 모딜리아니의 누드화가 있고, 전시 중에 관객들의 조소를 받는 일도 있다. 뭉크의 경우엔 특히 많은 도난 사건으로 유명하다. 2004년 8월 22일에 노르웨이의 뭉크 미술관에 2명의 무장 강도가 침입해서 관람객들을 바닥에 엎드리게 하고 경비원을 권총으로 위협해서 뭉크의 작품 2점을 강탈해가는 사건이 있었다. 이 두 작품이 뭉크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특히 걸작으로 알려진 “절규”와 “마돈나”이다.(절규 750억원, 마돈나 150억원 상당) 그리고 올 2005년 3월 6일에 노르웨이 모스에서 뭉크의 작품 3점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이 작품들은 그 다음날 도둑들이 잡히면서 회수할 수 있었는데, "절규"와 "마돈나"의 경우엔 아직까지 되찾지 못하고 있다. 일설에는 이 작품들이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팔지 못하고,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져서 범인들이 불태워버렸을 거라는 추측도 있었다.
뭉크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그는 죽음과 질병을 표현하기 위해 강렬한 색채와 형태의 왜곡을 일삼았다. 동시에 그는 시대의 불안과 공포, 하지만 그 안에서 또 다른 희망을 추구했던 세기말의 천재 화가이기도 했다. 뭉크의 집안은 대대로 성직자, 문인, 관료, 장교가 있었고 이들 중에는 몇 개의 직업을 겸한 사람도 있었다. ‘뭉크'란 그의 성 자체가 승려를 뜻하는 말로, 그의 할아버지는 고위의 성직자였고 아버지 페테르 크리스티안 뭉크는 노르웨이의 군의관이었다. 그의 집안은 노동자가 많이 살던 그 일대에서는 거의 유일한 관료집안이었다. 종교적 성향이 강했던 그의 아버지는 1861년 44세의 나이로 23세였던 로이라 카트리네 비욀스타와 결혼한다. 여기에서 1862년 딸 소피에가 태어났고, 1863년 12월 12일에는 에드바르트 뭉크가 태어났다
아버지 크리스티안과 어머니 레우라의 금슬은 매우 좋은 편이었다. 크리스티아니아 시절 형들 안드레아스, 로이라, 잉게르가 태어났다. 죽음이 임박한 어머니는 제일 위의 두 아이 소피에와 에드바르트에게 작별을 고하였다. 이것은 소년 에드바르트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뭉크의 모친은 8년간의 결혼생활 끝에 결핵으로 죽었을 당시 30세였다. 그녀는 일곱 살의 소피에, 여섯 살의 에드바르드, 세살의 안드레아스, 두 살의 로이라, 11개월 된 잉게르 등 어린 아이 다섯을 두고 갔다. 뭉크의 모친은 자신이 잉게르를 출산하기 전에 자신이 죽을 것을 예상하고 아이들에게 작별의 편지를 써놓았다고 한다. 뭉크가 여섯 살의 나이로 경험한 어머니의 죽음은 최초의 큰 상처였다.
"열세 살 되던 크리스마스 날 밤 나는 피를 토했었다. 열이 온몸을 흔들고 끔찍한 쇼크가 나를 삼켰다." 이 소년은 단지 죽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맹세했었다. "이제 그는 신과 계약을 맺었다. - 신에 봉사하기로 약속을 한 것이다. 다시 건강해진다면 이전처럼 그렇게 마냥 즐겁게 살 수 없으리라고."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에드바르트는 건강을 회복한다. 그러나 그의 누이이자 그 동안 어머니를 대신해 어머니 역할을 해 오던 소피에가 결핵에 걸렸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나고 만다.
'절규'. 에드바르트 뭉크라는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도 이 그림은 기억한다.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그림을 통해 앞으로 다가올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자기 예술에 대한 일련의 모욕들에 대한 뭉크의 징조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두 차례의 전쟁과 인류의 시련이 지난 뒤의 평가이긴 하다. 뭉크 자신은 이 그림을 두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두 명의 친구와 거리를 걷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하늘이 핏빛으로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때 나는 한 줌의 우울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멈춰 섰고 너무나 피곤해서 난간에 기대었다.
흑청색의 피오르드와 도시 너머에는 불로 된 피와 혀가 걸려 있었다.
내 친구들은 계속 걸었으나 나는 불안에 떨며 멈춰 섰다.
그리고 자연을 통해 울리는 커다랗고 끝이 없는 비명 소리를 느꼈다.
뭉크는 자신의 인생을 바탕으로 자신이 느끼고 있는 불안과 공포를 구체화시킴으로써 상징적으로 표출하고자 했다. 이 때 제작된 <인생의 춤>, <절규>, <흡혈귀>, <죽음의 소녀> 등은 뭉크 자신만의 개성으로 여타 상징주의 화가들을 사로잡기에 이른다. 그의 그림들은 마치 지옥의 유황불에서 막 건져 올린 듯 흐물흐물하고, 사람들의 눈동자는 총기를 잃고 퀭하다. 마치 그림 속에서 금방이라도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캔버스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이다. 뭉크의 이미지들은 화면에서 현실 공간에서 부유하며 떠다니는 무척추동물을 연상케 한다. 북구 스칸디나비아 반도 특유의 차갑지만 빛바랜 듯 한 붉은 색은 마치 오로라의 극광처럼 너울거리며 현실공간조차 환상의 환영을 바라보는 듯 한 충격을 준다. 에드바르트 뭉크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인상들이란 대체로 이와 유사하다. 평생을 생에 대한 절망과 불안감에 시달렸던 화가 뭉크, 하지만 그는 죽음보다 격렬한 삶을 선택했고, 죽음에 대한 끊임없는 두려움을 화폭 위에 옮겨놓았다. 뭉크에게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죽음의 사선을 넘나드는 일이었다.
마티아스 아놀드의 이 책이 뭉크를 소개하는 가장 좋은 책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접한 뭉크의 여러 책들 가운데 뭉크의 작품 세계와 그의 삶에 대해 성의있고, 깊이있는 서술로 접근하고 있는 책으로 손꼽아야 하는 책이다.(물론 화집은 별도로 구입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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