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내전 -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
앤터니 비버 지음, 김원중 옮김 / 교양인 / 2009년 5월
군부쿠데타에서 내전으로 발전해간 스페인시민전쟁
책이 도착했을 때 한창 마감 중이었기 때문에 사실 책을 읽어낼 만한 시간을 얻기가 쉽지 않았지만 832쪽에 달하는 분량에 비해 읽는데 걸린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교양인” 출판사의 번역서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번역과 이후 편집 작업에 상당한 공력을 기울였기 때문일 것이다. 복잡다단한 스페인내전의 이면을 자세히 살필 수 있도록 책머리에는 국민진영과 공화진영의 여러 정파들과 단체들을 대략적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책의 말미에는 50여쪽에 달하는 충실한 각주, 주요 등장인물에 대한 소개와 스페인연표와 찾아보기가 수록되어 있다(옮긴이 김원중 선생의 책은 거울에 비친 유럽을 비롯해 스페인제국사 등을 읽었는데 스페인사 전공자로서도 번역자로서도 깔끔한 문장이 돋보였다).
스페인내전은 스페인이라는 한 민족국가 내부에서 문화와 역사라는 동질성을 바탕으로 국민진영(우익)과 인민전선(좌익) 진영으로 나뉘어 전쟁을 치렀다는 점에서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쟁과 유사한 성격을 지녔지만 한국이나 베트남처럼 외세에 의해 분단된 두 민족이 재통합을 위해 치른 내전이 아니란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다. 다시 말해 스페인내전이 처음부터 내전으로 출발했던 것은 아니란 말이다. 프랑코를 비롯해 구체제 인사들이 주축이 된 스페인 군부는 선거에 의해 수립된 인민전선 정부를 군부를 동원한 쿠데타로 전복시키려 했다. 그러나 단기간에 성공할 것으로 예상했던 쿠데타가 실패하면서 인민전선 정부를 수호하기 위한 민중이 봉기했다. 민중들은 쿠데타에 저항하면서 급진화되었고, 군부와 가톨릭, 지주 등 당시 스페인을 지배하던 봉건질서와 자본주의적 지배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혁명을 역동적으로 추진하면서 동시에 합법적으로 선출된 인민전선 정부를 군부 쿠데타로부터 수호한다는 이중의 전선에서 치열하게 투쟁했다.
유럽에서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던 독일과 이탈리아는 수투카(급강하폭격기)를 비롯한 당시 최신예 무기를 포함한 군수물자와 군대를 보내 국민진영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자유주의적 지식인들과 세계의 정치적 좌파들은(스페인내전의 대의명분은 극동지역인 일본에서도 의용군 참가자가 있을 정도) 마치 투르크의 침공을 받은 그리스를 돕고자 했던 바이런처럼 혁명이라는 다소 낭만적인 열정을 품고 스페인으로 달려갔다. 레닌 사후 내부의 강력한 정적이었던 트로츠키를 축출하는데 성공한 스탈린은 한 편으론 잠재적 동맹국으로 생각하고 있던 영국과 유럽 국가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다른 한 편으론 유럽 내 정치적 동맹세력 앞에서 사회주의 종주국으로서의 체면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스페인 인민전선 정부를 소극적으로 지원했다. 그러나 합법적으로 선출된 정부에 대한 쿠데타와 파시즘의 도전에 대해 서방의 민주진영 국가들은 아무도 인민전전 정부를 지원하지 않았다.
존 키건의 수제자, 앤터니 비버
나는 인문학과 사회과학 저술을 읽을 때는 반드시 저자의 생애와 성향을 함께 살펴 읽을 것을 권하는 편이다. 독서를 저자와의 소통이라 할 때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사전에 알아두는 것은 소통의 깊이를 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서가 일방적인 훈육과 다른 차원을 갖기 위해서라도 저자와 독자의 관계는 최대한 수평적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는 저자의 정치적 성향에 종속되어 버리고 만다. 비판적 독서란 저자의 정치적 의미망에서 벗어나 나의 정치적 의미망을 재구성한다는데 본래의 목적이 있다.
앤터니 비버(Antony Beevor)의 책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내가 읽은 그의 첫 번째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의 향배를 바꾼 거대한 전투였던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조목조목 살핀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서해문집, 2004)였다. 언젠가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개인적으로 영국의 역사가들이 집필한 역사책을 읽기를 선호하는 편이다. 그것은 개인적 독서체험이 누적된 결과일 뿐 실제 그들의 국적과는 무관할 수도 있지만, 저자의 국적이 저술의 토대(문화적 태도와 교육)가 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개연성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유럽의 다른 역사가들에 비해 영국 역사가들의 특징은 아마도 그들이 유럽 내부의 정치적 변동에 대해 언제나 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관망해온 냉정한 관찰자였다는 역사적, 지리적 특징에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독일의 역사가들이 1, 2차 세계대전의 개전국 출신이라는 점을 스스로 성찰해야만 하는 심리적 압박을 생각해보면 좀더 쉽게 이해될 수 있으리라.
존 키건은 이 책에 대해 “스페인 내전에 관해 덧붙일 것이 없는 책”이라는 어마어마한 축복까지 내려 주었다. 뛰어난 역사가들을 다수 배출한 영국에서도 단연 탁월한 전쟁사가 중 한 명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존 키건(John Keegan)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에게 후한 점수를 주지 않는 편이다. 그 까닭은 제국주의의 전략의 수행자로서 대영제국 군대의 역할에 대해 때때로 키건이 과도한 애정을 숨기지 않으며 다른 한 편으론 그의 저술이 종종 이념적인 우편향을 감추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존 키건이 1960년부터 26년 동안 영국 샌드허스트 왕립육군사관학교에서 교수로 군사사를 강의했으므로 『스페인 내전 -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을 집필한 앤터니 비버는 존 키건의 수제자라 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말했다지만, 존 키건과 앤터니 비버 - 두 사람 모두 영국의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 는 전쟁사를 기록할 때, 상대적으로 패자인 독일에 대해 너그럽고, 승자인 소련에게 냉정한 편이다. 그 까닭은 아마도 러시아혁명 이후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를 통해 소련이 결국 역사의 패자로 기록된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까닭에서인지 몰라도 앤터니 비버의 전작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주요 연합국이었던 소련과 독일과의 운명을 건 대규모 전투였던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다뤘던 -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에서 그의 관점은 전쟁의 패자였던 독일군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사료 취득의 용이함이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의 저술 방식은 침략자였던 독일군의 잔혹한 전쟁 수행전략을 부각시키는 것 못지않게 방어자로서 소련군이 취했던 전쟁 수행 전략의 잔인함 또한 냉정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것은 역사가로서 양측에게 두루 공평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가 저술 속에서 보이는 태도와 애정의 농도는 다르게 느껴진다. 이와는 별개의 문제로 다른 의미에서 앤터니 비버는 그의 스승인 존 키건을 능가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풍부한 자료를 통해 현상을 재현하는 것은 역사가가 르포르타주 작가나 소설가를 능가할 수 없지만 풍부한 자료 속에 감추어진 역사의 이면을 들춰내고 숨은 진실을 찾아내는 작업에는 르포르타주 작가가 역사가를 능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가란 방대한 자료더미에서 필요한 부분을 찾아내 역사라는 하나의 사건을 자신의 관점에 비추어 인과관계를 재정립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취사선택하는 방식이나 수준에서 역사가로서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전쟁사가들은 종종 전쟁이라는 거대한 정치적 행위보다는 개별적인 전투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존 키건은 이를 적절하게 극복하고 역사가로서의 안목을 보여준다. 그에 비해 두 권의 책을 통해 접한 앤터니 비버는 A급 역사가라면 소홀히 할 수 없는 인과관계의 추적이란 측면에서 필수적인 부분들을 다소 소홀히 취급하는 대신 작은 사건들을 묘사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더군다나 스페인내전은 정부의 여러 정책 수단 중 하나로서 선택된 ‘전쟁’이 아니라 ‘혁명’이었다는 측면을 고려해볼 때 앤터니 비버가 개별적인 전투의 모습보다 좀더 집중해서 다루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기도 하다.
내전은 전쟁이 아니라 병(病)이다 - 탈이념, 탈정치화된 고도의 정치성
앤터니 비버가 책머리에 인용하고 있는 생텍쥐페리의 말 “내전은 전쟁이 아니라 병(病)이다. 적(賊)이 내 안에 있고, 사람들은 거의 자기 자신과 싸운다”는 말은 한국전쟁이라는 장구한 내전 속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한국 독자들에게는 매우 의미심장한 말이다. 이념이란 말에 넌덜머리를 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념이란 소박하게는 한 개인의 삶의 가치관을 의미한다. 인간이란 삶 속에서 자기존재의 의의를 ‘의미’로서 추구하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념이란 종종 어떤 한 개인을 그 자신이도록 규정하는 힘을 지닌다. 그러나 앤터니 비버는 스페인내전을 지금까지의 이념적 스펙트럼으로 바라보지 말고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벗어나자는 말은 탈정치화된 맥락에서 사건 자체에 집중하여 바라보자는 제안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정치적 태도를 의미한다.
역사란 종종 승자의 기록이라고 말하지만 앤터니 비버는 스페인내전만큼은 승자보다 패자의 관점에서 좀더 효과적으로 기술되어 온 흔치 않은 사건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책 『스페인 내전 -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을 통해 그간 패자의 시선에 맞춰져왔던 스페인내전의 역사에서 이념적 틀을 벗겨내고 좀더 냉정하게 바라보겠노라며 야심차게 도전한다. 우리는 그 덕분에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좀더 독특한 시선의 - 특히 한국에서는 거의 최초라 할 수 있는 스페인내전의 전 과정을 두루 포괄하고 있는 역사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 새로운 스페인 내전사를 얻게 되었다. 다만 그 결과는 절반의 성공과 실패가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앤터니 비버는 역사가로서 그 결과를 섣부르게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대신 여러 질문을 교차시켜 독자 스스로가 판단해보라고 권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 질문들은 역사가로서는 쉽게 던질 수 없으며, 말하지 않았어야 할(?) 가상(假想)의 질문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앤터니 비버는 이 같은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진다. 이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질문의 예를 들어보면 ‘인민전선 정부에게 합법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는 민주적인 선거에서 좌파가 승리하지 못했더라도 정황상 그들 역시 반란이나 폭동을 일으켰을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만약 스페인내전에서 국민진영이 승리하지 못하고, 인민전선 진영이 승리했더라면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라며 되묻는 것이다.
어떤 정부가 집권했더라도 전후 몇 년 동안 스페인은 절망적으로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나타난 모든 것은 그때 어떤 형태의 체제가 등장했는가에 따라 달라졌을 것이다. 완전하게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섰더라면 1948년 미국으로부터 마셜 플랜의 원조를 받았을 것이다. 또 그랬다면 비교적 자유로운 경제를 통해 분명 다른 유럽국가들과 마찬가지로 1950년경에 경제 회복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권위주의적인 좌파, 즉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섰더라면 스페인은 중부 유럽이나 발칸 반도의 인민공화국들과 비슷한 나라로 1989년 이후까지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페인 내전은 무엇보다 인간적 측면에서 가장 잘 기억될 것이다. 즉 신년의 충돌, 잔인성, 관용과 이기심, 외교관들과 장관들의 위선, 이상의 배신과 정치적 책략,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 진영에서 싸운 사람들의 불굴의 용기와 자기 희생 등으로 말이다. 그러나 역사(역사는 결코 깔끔하지 않다)는 항상 질문으로 끝나야 한다. 결론을 내리는 것은 지나치게 편의주의적이다. <본문 740쪽>
겉보기에 역사가로서 자신은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같은 질문의 의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앤터니 비버가 이 책을 통해 묻는 질문의 궁극적인 결과는 사실상 이 책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의 태도로 충분히 드러나고 있다. 실제로 이 책의 전 과정을 통해 앤터니 비버는 끊임없이 인민전선 정부와 국민진영을 서로 교차시켜가며 서로의 실책과 겹치며 상승되는 내전의 악마적 잔인성을 대비시킨다. 그 결과는 대체로 더 이상 잔인한 학살과 보복의 역사에서 뒤로 물러날 곳이 없던 국민진영보다는 인민전선의 이미지에 더 큰 손실을 안긴다.
스페인내전에 대한 가장 큰 의문
스페인내전에 대해 공부하면서도 쉽게 풀 수 없었던 가장 큰 의문 중 하나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유독 스페인에서’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들이, 다른 좌파 세력들 중에서도 ‘유독 아나키스트들이’ 그토록 광범위하고 강력한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앤터니 비버는 스페인에서 군대와 가톨릭이 봉건적 지배질서 안에서 중요한 지위와 역할을 차지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설명하고 있지만 비록 스페인 내부에서 여러 분파로 분열되어 있기는 했지만 유럽의 다른 지역에 비해 강력한 조직과 세력을 확보하고 있었던 아나키스트들이 그와 조직과 세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무관심하다. 실제로 스페인내전 이후 현재까지도 스페인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전국노동연합(CNT)은 1911년 결성 이후 불과 8년 만에 조합원 수가 100만 명에 이를 만큼 급성장했고, 1936년 총선에서 인민전선 정부가 출범할 수 있었던 계기 역시 이들이 이전까지의 기권전략에서 선회하여 투표참여 전략으로 입장을 전환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이 지점이 앤터니 비버가 스페인내전을 전체적으로 조망하여 재구성하는데 있어 가장 취약한 부분이기도 하다. 제1장에서 그는 “스페인의 반은 먹기만 하고 일은 안하고, 나머지 반은 일만 하고 먹지 않는다”는 스페인의 유명한 속담을 통해 당시 스페인의 봉건적 지배구조와 허울만 남은 왕정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앤터니 비버는 제1차 세계대전을 치르며 기업가들이 막대한 수익을 올렸고, 그 사이 물가는 두 배나 올랐지만 임금은 불과 25% 인상에 그친 통계는 보여주지만 그것이 실제 노동자 대중의 삶에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에 대해서는 묘사하지 않는다. 8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저술을 통해 스페인내전에 대해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배질서를 전복하고자 했던 민중이 처해있던 상황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적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비록 조지 오웰과 켄 로치 등의 시각 - 앤터니 비버의 표현을 빌자면 패자의 효율적인 역사기술 - 을 통해 스탈린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한 뒤, 적(賊)인 국민진영보다 의용군들에게 더욱 큰 패악(무기와 식량 공급에서 배제한다거나 제5열로 처벌하는 등)을 끼쳤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냉정한 역사가로서, 전쟁사가로서 앤터니 비버는 내전의 효율적인 진행과 승리를 위해선 아나키스트들의 낙관주의와 딜레마보다는 인민정부의 강화를 위한 정치적 참여와 의용군의 조직화가 좀더 절실했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내전의 하부구조를 담당하며 국민진영과 직접대결에 나섰던 아나키스트들의 면모는 입체적으로 그려지지 못하고 있다. 비록 아나키스트들이 그들의 이념적 목표와 성향 - 아나키스트들은 무정부주의자로서 혁명을 수행하기 위해 정부에 관료로 참여한다는 것(관료화)과 내전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계급과 중앙집권화의 필요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스스로의 딜레마에 시달렸다 - 에 따라 인민전선 정부에 능동적으로 참여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국민진영의 반란에 맞서 처음부터 끝까지 혁명과 내전을 주도적으로 수행한 세력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앤터니 비버가 이 부분을 가볍게 넘어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아나키즘의 딜레마와 스페인 내전
혁명적 아나키즘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바쿠닌은 인터내셔널 기간 중 마르크스와의 대립했다. 바쿠닌은 특히 조직화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였고, 중간계급을 혐오하였다. 무정부주의적인 입장에서 민중은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혁명적인 존재였으며 이때의 민중은 혁명적 노동자라기보다는 혁명적 농민이었다. 이와 같은 부분들이 마르크스(사회주의)와 바쿠닌(무정부주의)이 다른 지점이었다. 국가제도를 도구적으로 이용할 계획이었던 사회주의와 결별하며 바쿠닌은 “자유 없는 평등은 국가의 독재이고, 독재 국가는 적어도 ‘하나’의 착취 및 특권계급, 즉 관료층 없이는 단 하루도 존속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나키스트들의 이 같은 입장은 인민전선 정부에 참여해 직접 권력을 장악하는 투쟁에 나서기보다는 스탈린주의자들에 의해 장악된 인민전선 정부에 의해 버림받는 마지막 순간까지 인민전선 정부의 외곽 동맹세력으로만 존재하게 만들었다.
인민전선 정부와 동맹을 맺은 아나키스트들에게 공동의 적은 물론 프랑크의 국민진영이었다. 이들은 모로코 등지에서 숱한 실전경험을 쌓은 베테랑 군대(africanista)와 뛰어난 전술응용능력을 갖춘 모로코 현지 부족 출신의 용병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파시스트 국가동맹의 일원이었던 독일과 이탈리아로부터 최신예 병기를 비롯한 군수물자와 병사들을 지원받고 있었다. 아나키스트들은 역사 앞에서 종종 공동의 적을 핑계로 아나키스트들이 준수해야 하는 기본원칙을 허물고 적들을 본떠 만든 국가기구 속에서 중앙집중화하라는 사회주의자들의 유혹을 받는다. 아나키스트들은 결국 저들이 배신할 것을 알면서도 그들과 동맹을 맺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적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절망적 희망을 품고 적대적 공존에 나선다. (크론슈타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서쪽으로 30km쯤 떨어진 인구 5만여 명의 해군 요새로 이루어진 섬이었다. 이곳은 1917년 10월 혁명 당시 함께 봉기했던 크론슈타트의 아나키스트 공산주의 수병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다. 그러나 혁명 직후 크론슈타트 임시혁명위원회는 레닌과 트로츠키의 방식은 결국 국가자본주의 독재로 흘러갈 뿐이라고 비판하고, 제3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요구하며 레닌의 혁명정부에 맞서는 입장을 취했다. 레닌은 볼셰비즘이 자본주의를 복원하려는 반혁명세력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당하고 있다는 명분을 들어 트로츠키로 하여금 크론슈타트 반란을 진압하게 했다. 트로츠키는 크론슈타트 반란자들의 가족을 볼모로 잡고, 바다가 얼어붙기를 기다렸다가 크론슈타트를 공격했다. 이 공격으로 18,000명의 아나키스트들이 숨졌다.)
조지 오웰과 켄 로치, 그리고 앤토니 비버가 묘사하고 있는 1930년대 스페인의 혁명적 코뮌은 1980년 5월 광주의 모습은 절대적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란 점에서 흡사하다. 도시노동자와 농민들은 군부쿠데타에 대해 일종의 사회혁명으로 대응했다.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의용군을 결성했고, 토지와 공장을 비롯한 일터는 집단화됐으며, 아나키즘을 따르는 노동자와 농민들은 공장과 농장을 스스로 접수했고 아나르코 생디칼리슴적인 전국노동연합(CNT)와 이베리아아나키스트연합(FAI) 등의 조직 노선에 따라 운영되었다. 아나키즘과 사회주의에 고무된 이들은 지역 주민들을 설득해 필수식량을 한데 모으고 각 가정의 규모에 따른 차등배급기준에 따라 분배되었고, 의료와 같은 일상 서비스들은 무상으로 제공되었다. 원료나 설비 같은 특정 자원이 필요한 집단공장과 농장들은 비이윤적인 토대에서 자체 업무를 수행했고, 국가나 당의 통제 없이도 참여의 원칙에 따라 수천 개의 농장과 기업들이 운영되었다.
앤토니 비버가 벗겨낸 스페인내전의 맨 얼굴
혁명적 상황 속에 분출되는 극적인 순간들은 종종 엠마누엘 레비나스의 언설, “타자의 고통 받는 얼굴을 외면하지 않는 순간, 이기적 주체는 진정한 윤리적 주체로 재탄생하게 된다”를 재확인시켜준다. 그러나 ‘혁명의 시간’은 인간의 영역에 속하지만 이를 ‘구조화’시키는 작업은 신의 영역에 속한다. 스페인내전이 만들어냈던 혁명적 대안공동체의 아름다운 이상은 견고한 틀을 갖추기 전에 이미 내부로부터 붕괴했다. 조지 오웰이나 켄 로치가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스페인의 혁명적 대안공동체가 만들어낸 세계는 그 자체로 높은 윤리의식과 숭고한 이상, 미래에 대한 낙관과 희생정신을 엿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내전의 패배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지금까지 앤터니 비버의 저술에 대해 비판적인 문제 제기를 한 셈이지만 이 책이 지닌 긍정적인 측면의 대부분은 앞서 말했던 비판적 문제제기의 연장선상에서 출발하고 있다. 앤터니 비버는 스페인내전을 감싸고 있는 이념의 덮개를 거둬냄으로써 스페인내전이 지니고 있던 또 하나의 맨 얼굴을 드러낸다.
반란이 일어난 지 보름이 지나지 않아 국민군은 독일과 이탈리아로부터 군사 원조를 받게 된 반면, 공화 정부군은 민주주의 국가들로부터 무기를 제공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이 불균형은 국민진영이 재정 지원을 제공받으면서 더 증대되었는데, 재정 지원은 장기전에서 군사 지원 못지않게 중요했다. 전쟁 초기에 공화정부는 635톤에 이르는 국유 금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는 미화 7억 1500만 달러에 해당했다. 이에 비해 국민 진영이 대부를 받고 대신 제공할 수 있는 담보물은 오직 승리의 가능성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월 8일 ‘적의 재정 능력이 별 볼일 없기 때문에 공화정부가 보유한 금이 공화정부에게 무한한 저항 능력을 제공할 것’이라던 프리에토의 주장은 결국 오판으로 판명되었다. <본문 255쪽>
알다시피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는 막대한 전쟁비용을 충당할 수 있어야 한다. 초기 쿠데타 시도가 정부 전복에까지 이르지 못하게 되자 인민전선 정부는 쿠데타 세력이 전비를 충당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상황을 낙관했다. 그러나 상황은 인민전선 정부의 예상과 정반대로 흘러갔다. 우선 영국을 비롯한 서구 민주 진영국가들은 스페인 인민전선 정부에게 무기 판매를 허가하지 않았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불간섭주의를 채택한 까닭은 물론 볼셰비즘에 대한 공포가 파시즘에 대한 공포를 압도했기 때문이지만 미국이 스페인에 무기 판매를 하지 않은 까닭은 미국 내부의 가톨릭 세력의 로비에 의한 것이었다. 합법적으로 집권한 정부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구입하고자 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물론 내전 패배의 이유는 이처럼 외부적인 것 말고도 내부에서도 여러 가지를 찾을 수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아나키스트들의 지나친 급진성이 스페인 내부의 기업가들, 중산층은 물론 자유주의적 지식인들에게도 커다란 위협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이 빚어진 까닭에 대해 앤터니 비버는 비록 인민전선 정부가 선거에서 승리하기는 했지만 실제 표차는 매우 근소했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혁명에서 승리한 세력처럼 처신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정부가 구성되고 공식적인 사면령이 내려지지도 않았는데 일부 세력은 감옥을 점령하고 죄수들을 일방적으로 풀어주는 등 사회정서에 비해 지나치게 앞서간 측면도 적지 않았다. 인민전선 정부가 코민테른의 지시를 받는 세력들에 의해 대체되기 이전에도 아나키스트들은 인민전선 정부를 강화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대신 무정부적 상황을 초래했을 뿐이다. 많은 이들이 비판하는 것처럼 스탈린주의자들이 아나키스트들을 공격했다는 부도덕성을 지적하는 것은 필경 옳은 것이지만 그 이전에 아나키스트들 스스로도 무정부적 상황을 극복하고 공동의 적을 향해 효율적인 전선을 구축하는데 실패했다는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마르크스주의와 아나키즘」이란 글에서 스페인내전 당시 아나키스트들이 실패할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혁명적 맑스주의자들은 이러한 민주적 노동자 조직들이 자본가들에게서 권력을 빼앗아 오고 그들의 국가를 해체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일은 1917년10월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당이 지도한 혁명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1936년 스페인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아나키즘의 영향을 크게 받은 노동조합 CNT(전국노동자총연맹)가 그 해 바르셀로나 시에서 일어난 노동자 항쟁을 지도했다. 노동자 평의회가 바르셀로나 시를 사실상 운영했다. 하지만 자본주의 국가 기관은 그냥 사라지지 않았다.
프랑코의 파시스트 군대에 맞서 싸우고 있던 정부와 그 군대는 바르셀로나에서 아무 권위가 없었는데도 자리에 남아 있었다. 정부는 CNT 지도자들에게 권력을 넘겨주겠다고 제안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CNT는 어떤 국가 형태도 잘못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CNT는 노동자 국가의 형성 가능성을 배격했다. 만일 노동자 국가가 형성됐더라면 파시스트들의 군사 쿠데타와 자본주의적 국가를 분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CNT는 자본주의 지지 세력이 득세하고 있던 정부 안에서 직책 맡는 것을 수락했다. 그 정부는 바르셀로나의 노동자 권력을 파괴했고, 그럼으로써 파시스트 반대 투쟁을 치명적으로 약화시켰다.”
영국을 비롯한 서방진영이 스페인내전을 방치했던 것과 달리 독일과 소련은 스페인을 배경으로 자국의 신무기를 실험하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새롭게 개발된 전술교리(공지합동작전)를 시험할 수 있었다. 다만 독일이 스페인내전을 통해 습득한 새로운 전술교리는 스페인내전에 참전했던 지휘관들에 의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격전(Blitzkrieg)으로 유감없이 발휘된 반면 소련은 스페인내전을 경험한 지휘관들을 총살대 앞에 세움으로써 소멸시켜 버렸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앤터니 비버는 여기에서 이전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사실 하나를 부각시킨다. 독일이 국민진영을, 소련이 인민전선 진영을 지원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설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만성적인 무기 부족에 시달렸던 인민전선 정부에 독일정부가 상당한 무기를 판매했으며, 그것도 소련을 경유해 판매했다는 사실이다. 소련은 자국의 무기는 물론 독일제 무기까지 판매하면서 스페인의 황금을 대금으로 착취했다. 이념을 떠나 내전에 휩싸인 국가는 강대국들의 충실한 돈벌이 장소가 되었다.
다시 시도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 - 사무엘 베케트
국제여단 동지들이여! 정치적 이유, 국가적 이유, 그리고 당신들이 고귀한 피를 아낌없이 바쳤던 바로 그 명분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이제 여러분은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여러분 중 어떤 분들은 고국으로 돌아가지만 어떤 분들은 다른 나라로 망명을 떠나야 합니다. 여러분, 어깨를 펴고 자랑스럽게 돌아가십시오. 여러분은 역사입니다. 여러분은 전설입니다. 여러분은 민주주의 세력의 연대와 통일의 영웅적 모범입니다. 우리는 결코 여러분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평화의 올리브 나무가 다시 잎을 틔울 때, 그리고 그 잎사귀들이 스페인 공화국의 승리의 월계수와 뒤섞여 하나가 될 때 다시 돌아오십시오. <본문 635-636쪽>
앤터니 비버는 내전에서 패배한 스페인에서 벌어진 일련의 학살과 보복에 대해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 인민전선의 공화정부를 붕괴시킨 스페인의 지배세력들 역시 수많은 정파의 연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프랑코는 국민진영에 속해있는 여러 정파들의 이해관계를 조절하여 이들의 충성심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능숙하고 냉정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왕당파의 주장을 받아들여 알폰소 왕가를 복귀시켰지만 실권은 자신이 장악했고, 기업가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노동자의 임금을 동결시키는 대신 기업의 자본과 원료 배급권을 통제했다. 그리고 가톨릭을 다시 국교의 지위로 복귀시켜 내전 이전에 교회가 누렸던 모든 특권과 재산을 복원시켰고, 특히 교육부분에서 이들이 누렸던 힘을 다시 장악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다른 한 편으로 마르크스에 오염된 스페인을 정화시키는 작업에 착수하여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전국의 500여개나 되는 감옥에 보냈다. 또한 공화진영 출신 고아들의 사상을 정화한다는 명분으로 사상교육을 실시했고, 심지어는 사상이 의심스러운 부모로부터 아이들을 강제로 떼어내 사회교화소로 보냈다. 1943년 한 해 동안만 1만 2천여 명의 아이들이 부모의 품을 떠났다.
나는 조지 오웰과 켄 로치를 통해 그리고 이전에 내가 읽고 접했던 스페인내전에 대한 정보들을 통해 앤터니 비버의 저술과 견주어가며 읽을 수밖에 없다. 조지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는 한 개인의 내전 참전기라는 점에서 앤터니 비버의 『스페인 내전 -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보다 종합적이고 보편적인 안목을 성취하기 어려운 저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지점에서 조지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는 앤터니 비버가 보여주기 어려운 지점들을 보여준다. 그것은 조지 오웰이 직접 총상을 입어가며 국제여단의 일원으로 스페인내전에 참전했던 현장성과 더불어 그가 자신의 이념과 상관없이 작가로서 매우 객관적인 시선을 얻어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지 오웰은 혁명과 동시에 전쟁을 치르고 있는 스페인의 민중들이 혁명 이전과 다른 새로운 주체로 탄생하는 순간을 묘사하는 동시에 이들이 다시 혁명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모습까지도 냉정하게 담아낸다. 그런데 조지 오웰과 마찬가지로 스페인내전에 의용군으로 참가했던 사람들의 결말은 어떠했을까?
프랑코에 의해 점령된 스페인을 떠난 수많은 난민과 망명자들은 주로 프랑스로 떠났지만 이들은 이곳에서도 그들이 지녔던 이념으로 인해 싸늘한 대접을 받았고, 건강한 남자들은 전쟁위협이 커지고 있던 프랑스의 마지노선 건설공사에 투입되기도 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가 독일에 패하자 수많은 공화진영 사람들이 다시 스페인에 넘겨졌다. 소련은 단지 3천명의 망명자만 받아들였는데 그들 대부분은 스페인 공산당의 고위 당료들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추축국 동맹이 패배하고 난 뒤 국제연합은 스페인을 정치적으로 배제하고자 했으나 곧바로 이어진 냉전체제는 스페인을 다시 한 번 회생시켰고, 프랑코 총통은 1948년 4월 17일 스페인에서 전쟁상태가 종결되었다고 선언했다. 내전이 발발하고 12년만의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스페인내전은 완전히 종결된 사건일까? 스페인내전은 사실 지금도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칠레의 아옌데 정권이 전복되는 과정에서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를 비롯한 저개발국가들에서 '프로눈시아멘토'라 불리는 군부에 의한 쿠데타가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스페인내전의 상황들은 고스란히 재연된다. 그렇다면 스페인내전의 최종적인 승자는 과연 프랑코였을까? 프랑코는 자신의 사후에 벌어질 일들에 대해 미리 예견하지 못했다. 그는 훗날 스페인의 왕이 될 후안 카를로스 왕자를 자신이 직접 후견과 보호감독을 하는 조건으로 왕위계승자로 받아들였다. 당시 열 살도 채 되지 못했던 왕자는 1975년 프랑코가 죽고 난 후 스페인을 민주주의 국가로 되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늘날에도 스페인에서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전국노동연합(CNT)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스페인내전’은 ‘체 게바라’와 더불어 좌파의 열정과 희생의 역사적 이데아를 구성하는 아이콘이다. 좌파적 정서란 시대나 지역, 국적이나 인종을 초월한다는 점에서 보편적이지만 그것을 누구나 공유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제한적이다. 우리가 조지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를 읽거나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랜드 앤 프리덤>을 보고 느끼는 스페인 내전의 정조는 비장미와 비극적 정서에 가깝다. 왜냐하면 우리가 스페인내전을 통해 느끼고 확인하게 되는 것은 역사 속의 모든 혁명이 되풀이하는 끝없는 열정과 희생, 그리고 변절과 배신, 패배의 운명을 새삼스럽게 확인하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패배하였으므로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일까?
사무엘 베케트는 글쟁이가 글을 쓰는 한 실패는 없으며 다만 배움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비록 자신이 얻고자 하는 효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곧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면서 “다시 시도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고 충고한다. 베케트의 충고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게 들린다. 다른 한 편으로 일본의 저명한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는 “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현실을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의미를 갖습니다.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며 결국 모두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거꾸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그런 현실이 점차 쌓이게 되고, 그것 자체가 사회를 일정한 방향으로 밀고 나가게 됩니다.”라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선택 역시 역사에 일정한 영향을 주는 행위라고 말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한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사는 대로 생각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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