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에 읽는 니체
로이 잭슨 지음, 이근영 옮김 / 중앙M&B(랜덤하우스중앙) / 2003년 11월
24세의 젊은 나이에 유명한 스위스 바젤대학의 문헌학교수가 된 사람,
34세에 스스로 교수직을 그만두고 알프스 산맥을 방황하면서 독창적인 철학을 개척한 사람,
44세에 정신병에 걸려 자신이 부활한 예수라고 믿었던 사람,
"신은 죽었다"라는 말로 유명한 니체의 짧은 약력이다.
<옮긴이의 글> 중에서
프리드리히 니체는 1900년에 죽었다. 그는 죽기 전에 자신의 철학은 서기 2000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인정받게 되고, 이해될 것이라고 스스로 예언 아닌 예언을 남긴 바 있다. 엄밀히 말하면 그는 19세기에 태어나 19세기의 마지막 해에 세상을 떠난 인물이다. 19세기의 인물인 셈이다. 그럼에도 그는 20세기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자, 21세기에 더욱 각광받는 철학자가 되었다. 니체가 스스로 부활하기로 마음 먹었던 지난 2000년으로부터 다시 5년여가 흘렀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니체에 흠뻑 빠질 준비를 하고 있다. 오늘날 니체가 유럽에서 재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니체와 그의 철학은 마치 나치즘의 배후 망령쯤으로 인식되곤 했다. 물론 니체가 자유민주주의자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이런 인식은 그로서는 매우 억울한 폄하였을 것이다. 그가 제 정신이 들지 못한 체로 그냥 죽지 않았고, 나중에라도 정신을 차렸다면 동생 엘리자베트의 뺨이라도 때렸을까? 글쎄, 그건 잘 알 수 없지만...
이 시리즈를 연속으로 읽어대면서 정리삼아 서평이랍시고 올리고 있는데, 융과 다윈까지만 올리고 고만 두련다. 특정 출판사하고 너무 밀접한 듯 오해받을리는 없겠지만, - 하기사 그런 것도 거물들에게나 해당하는 거지. 나같은 날라리 서푼짜리에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 동일한 기획 의도와 편집 구성으로 만들어진 책을 연속으로 말하는 건 아무리 다른 사상가를 다룬다고 해도 우선 내가 지겹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융과 다윈까지는 해보고 싶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말했다는 부분에만 집착하거나 그가 스스로를 "부활한 예수"라고 믿었다고 해서 그를 "안티 크리스트"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가 부활한 예수라고 믿었던 건 그가 마부가 때리는 말을 껴안고 울부짖다 쓰러진 뒤의 일이니 뒤로 젖혀두도록 하자. 그에게 안티란 말을 붙여야 한다면, 가장 적합한 건 아마도 "안티 소크라테스"일 것이다. 니체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대개 세 사람에서 네 사람을 꼽아야 한다면, 우선 쇼펜하우어와 바그너, 그리고 연인 루 살로메와 여동생 엘리자베트를 들어야 할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철학은 니체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불교의 영향을 받은 쇼펜하우어는 모든 사람은 의지를 구현하고 있고, 의지의 본질은 생존이라고 생각했다. 다윈이 당시 유럽에 던진 충격에서 쇼펜하우어 역시 자유롭지는 못했다. 그는 종의 생존과 마찬가지로 모든 개인들도 다른 사람들의 의지에 대항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인간의 의지는 본래부터 사악하다고 생각했고, 이런 의지가 주는 사악함과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와지는 것은 스스로의 의지를 부정하고, 타인을 지배하려는 이기주의적 경쟁에서 스스로를 도태시키는 것이라 믿었다. 그것이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철학이다. 흔히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를 농담삼아 그 스스로는 염세를 이야기했으나 그는 자살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의 염세가 자살을 추구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이 농담은 좀 사악하다. 대신에 그가 금욕적이지 않았다는 건 맞는 말이다.
어쨌든 니체가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아 의지, "힘에의 의지(will to power)"를 말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쇼펜하우어의 의지가 비관론적이고 생을 부정하는 것과 달리 니체의 "힘에의 의지"는 낙관론적이고, 생을 긍정하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같지만, 그에 대한 대응이란 측면에서 니체는 그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인간의 새로운 위대함을 발견한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 너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 니체는 "이 사람을 보라"에서 "인간이 위대해지기 위해 내가 제안하는 공식은 '너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이다. 즉 현재의 자신 이외에는 아무 것도 되기를 바라지 않는 인간이 되라는 것이다. 미래에도 과거에도 그리고 영원히." 어쩌면 이 말이 니체의 사상 중 핵심을 이루는 것일 게다.
니체를 유명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그에게 반유태주의와 아리안 민족주의, 나아가 나치즘의 망령을 들쒸운 인물은 R. 바그너와 니체의 여동생 엘리자베트일 것이다. 니체는 "바그너의 음악이 없었다면 나는 청년 시절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운명적으로 모든 훌륭한 독일적인 것들을 갖고 태어나는 저주를 받았다. 누군가 견딜 수 없는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원한다면 그는 마약을 찾을 것이다. 나는 바그너를 찾았다. 바그너는 모든 독일적인 우수한 것들에 대한 해독제였다. 물론 그 해독제조차도 독약이라는 것을 나는 부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스스로의 말처럼 니체에게 있어 바그너는 독약이었다.
혹자는 니체가 바그너에게 빠져들게 된 원인으로 1849년 서른 아홉의 나이로 일찌감치 세상을 등진 아버지의 부재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실제 바그너는 니체의 부친과 같은 해에 태어났고, 외모 역시 니체의 부친과 흡사했다고 한다. 다섯 살에 아버지를 여읜 니체는 어머니와 여동생, 두 명의 이모들, 그리고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모두가 여성인 가정에 유일한 남성이었던 니체에게 바그너의 카리스마가 아버지를 대신할 무엇이었을 수도 있었으리라. 어쨌든 니체는 바그너의 작품들이 보여준 독일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 정서에 반대했음에도 1871년 "비극의 탄생"을 출판할 때까지도 바그너에게 매혹당해 있었다.
훗날 니체가 정신병을 앓게 되면서 독일민족주의자이자 반유대주의자 푀르스터와 결혼한 엘리자베트는 니체의 모든 원고들에 대한 독점적인 저작권자 노릇을 하게 된다. 어려서부터 오빠 니체에게 정신적인 숭배를 바쳐온 엘리자베트는 나움바르크에 니체 작품 보관소를 만들고 정신병을 앓고 있는 니체에게 브라만 승려같은 흰가운을 입히고 함께 전시하는 일도 서슴치 않았다. 심지어는 니체의 원고 가운데 자기 맘에 들지 않는 구절은 제멋대로 손을 댔고, 자신의 생각을 집어넣기도 했다. 게다가 니체의 사후에는 니체 자신이 폐기한 원고들을 마음대로 엮어 유고집 "힘에의 의지(Will to Power)" 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루 살로메와 니체 사이를 이간하기도 했으며, 훗날 그녀는 니체의 유언 - 성직자가 참례하지 않는 이교도식 장례 - 에도 불구하고 성대한 정통 루터 교회식 장례를 치렀고, 그의 시체를 은으로 돈 십자가로 장식해 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니체 자신이 독일인을 빼고는 어떤 인종에 대해서도 인종주의적인 차별을 한 적이 없음에도 그를 독일민족주의자로 만든 것이다. 엘리자베트는 니체의 초인을 군중을 지배하는 파시스트 독재자 무솔리니로 착각했고, 히틀러를 니체 철학의 수호자인양 떠 받들었다. 이 모든 것이 동생 엘리자베트만의 문제였을까?
니체가 살았던 시대의 서구 근대 문명은 정점에 도달해 있었고, 동시에 가장 위험한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산업화의 성공과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부르주아 문화는 완성 단계에 있었다. 이제 서구 부르주아 사회는 전지구적 지배력을 확보했다. 바로 그런 시기에 니체는 이성(도구적이든 합리적이든)으로부터 진화해온 유럽 문명의 폭력성과 빈곤함을 질타하고, 새로운 문명의 도래를 전복자이자 예언자로서 부르짖었다. 서구 모더니즘이 성취한, 서양의 도덕과 철학을 뒤받침 해온 헬레니즘과 기독교적 사유의 기본 전제들이 새로운 문명을 위해 극복해야할 질곡이라고 주장했다. 니체의 철학은 실존주의와 영미 분석철학,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 같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계몽의 변증법" 등에 의해 다시 수용되거나 비판되면서 현재에 이른다. 너무나 인간적인 그래서 외롭기 그지 없었던 한 명의 철학자로부터 우리는 "마르크스와 프로이트 그리고 니체 이후"의 달라진 세상을 살고 있다. 어쩌면 철학이란 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철학자들을 변화시킨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 음,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를 차례로 읽으니 아직도 어렵긴 하지만 요새 철학자들이 주절주절 떠드는 말들이 뭐였는지 아주 쬐끔이긴 하지만 느낌이 오는 것도 같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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