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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22-09-08 14:13:54, Hit : 255, Vote :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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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추석....

아직 살아있습니다.
여러분도 살아계신가요?

식구

- 이정록

그릇 기(器)라는 한자를 들여다보면
개고기 삶아 그릇에 담아놓고
한껏 뜯어먹는 행복한 식구(食口)들이 있다
작은 입이 둘이고 크게 벌린 입이 둘이다
그중 큰 입 둘 사라지자 울곡(哭)이 있다
식은 개고기만 엉겨붙어 있다
개처럼 엎드려 땅을 치는 통곡이 있다

아니다, 다시 한참을 들여다보면,

기(器)란 글자엔 개 한 마리 가운데 두고
방싯방싯 웃는 행복한 가족이 있다
옹기종기 그릇이 늘어나는 경사가 있다
곡(哭)이란 글자엔, 일터로 나간 어른 대신
남은 아이들 지키느라 컹컹 짖는 개가 있다
집은 제가 지킬 게요 저도 밥그릇 받는 식구잖아요
밤하늘 별자리까지 흔들어대는 목청이 있다

정말 ㅣ 창비시선 313
이정록 (지은이) | 창비 | 2010년 3월

● 이정록 시인의 시 「식구」는 ‘그릇 기(器)’와 ‘울 곡(哭)’이라는 한자풀이를 두고 이루어지는 통찰과, 이를 3연에서 스스로 반전(反轉)시킬 때 오는 감동이 아름다운 시입니다. 반전은 반(反) ‘역전(reverse)’과 전(轉) ‘비틀림(twist)’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말하죠. 사실,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만 제대로 성취해도 잘 쓴 시라고 할 수 있는데, 시인은 동시에 두 개의 바늘귀를 절묘하게 꿰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1연과 3연의 반전이 주는 신묘함에 취하면, 이 시의 진짜 매력(또는 교훈)이 2연에 있다는 사실을 놓치게 된다.

“아니다, 다시 한참을 들여다보면,”

이미 1연의 깊이 있는 착상과 통찰만으로도 이 시는 시적 완결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지만, 시인은 “다시 한참을” 들여다본다. 어쩌면 1연의 성과도 “한참을” 들여다본 결과일 텐데, 거기서 좀 더 나아갑니다. “다시 한참을…”

저는 그런 것이 참말 좋습니다. 말이 앞서는 사람들, 제 생각만 옳다고 떠들어대는 사람들은 그에 앞서 “아니다, 다시 한참을 들여다보면”과는 또 다른 생각이 나올 수도 있고, 본래 하려던 말이 쓸데없는 말이란 사실도 알 수 있을 텐데, 우리는 잠시 멈추거나 다시 한참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가족구성원에도 변천이 있었습니다. 요즘 어린 세대에게 가족을 물어보면 대개는 “엄마, 아빠, 나 그리고 …” 이런 식으로 가족을 헤아립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가족에서 사라졌고, 어느새 친족 중 한명이 되었습니다. 그런 개념의 변화와 무관하게 저에게도 가족이 생겼습니다. 나의 가족이 생기기 전까지, 저는 누구의 가족도 아닌 시절이 있었습니다. 물론 명절마다 삼촌, 고모들이 할머니에게 인사드리기 위해 모였지만 말이죠.

그래서 명절이나 성탄절 같은 날은 항상 나에게는 가족이 없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유년기에서 청소년기에 이르던 그 결핍의 시간은 고통스러웠지만, 저란 사람을 성장시키고 가족이 생기고, 추석 명절에 선물을 가지고 퇴근할 수 있는 사람이 된 지금의 저를 만들었지만, 그와 동시에 항상 이 명절의 풍성함, 이 명절의 시끌벅적함 속에서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을 항상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제 곧 추석 연휴가 시작됩니다. 신에게 바치는 제사. 조상을 모시는 차례가 인류의 역사에서 선물의 기원이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페이스북을 통해 그간 많은 분들과 교류를 나누었습니다. 가족은 아니지만, 뜬금없는 인사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이젠 저도 많이 게을러져서 눈에 보이지 않아도 먼저 챙겨야 할 사람들을 기억하는 일이 드물어졌습니다. 추석입니다. 모두가 풍요를 기원하고, 선물을 챙기는 시간입니다. 오늘 방송에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선물의 내용이 아니라 선물을 준비하는 시간까지 누군가에 주는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고,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선물이 되는 관계가 가장 좋은 선물이 아닐까 한다.”고요.

추석 명절, 형제, 자매, 가족 간에 부와 지위를 자랑하는 시간이 아니길 바랍니다. 실패와 시련에 놓인 이들에게 가시가 될 수 있는 말을 피할 수 있는 배려가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족 간의 재회와 즐거움이 누군가의 일방적인 돌봄과 노동이라는 희생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시간이 아니길 바랍니다. 세상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 달빛처럼 여러분 개인과 가족 모두에게 평화와 위안이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딸기	바람구두 안녕! 뭔가 검색하다가 여기에 오게 되었어. 이렇게 반가울 수가... 눙무리... ㅠㅠ	2022/10/08
딸기	아, 에반게리온에 대한 글이 분명 있었는데... 이젠 오래돼서, 어디 있는지 못 찾겠네.	2022/10/08
바람구두	영화 쪽을 찾아보렴. ^^	2022/10/16
Nueva Cancion	살아 있습니다.	2023/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