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티블루(BettyBlue37.2 Le Mar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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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티블루 (Betty Blue 37.2 Le Matin)
감독 : 장 자크 베네 / 주연 : 장 위그 앙글라드, 베아트리스 달

Inner Link

네가 사랑을 알아, 알기나 하냐구

아르튀르 랭보

천장지구

황석영

앙투완 드 생떽쥐페리

쥴 앤 짐

롤랑 바르트

실비아 플라스

까미유 끌로델

오귀스트 로댕

창밖을 봐,

바람이 불고 있어.
하루는 북쪽에서
하루는 서쪽에서

인생이란 그런거야 우린 그 속에 있다구

사랑에 대해서 말을 하자면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데 예전에 본 어떤 이탈리아 영화가 생각난다. 내용은 이렇다. 제1차 세계대전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전쟁의 와중에 전선에 파병되어 가는 병사들이 잠시 주둔했다가 떠나가는 이탈리아의 어느 마을에 그들 병사들 중 한 명에게 택함을 당해 그가 파병되어 갈 동안만 같이 살아주는 여자가 있었다(매춘부랄 수도 있고, 창녀랄 수도 있겠지만).

택함을 당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병사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전선으로 출정하면서 자신이 맡아 가지고 있던 그녀의 집 열쇠를 다른 병사에게 넘기고 가기 때문이다. 열쇠를 넘겨준 병사가 다시 돌아올 리 없었다. 그녀는 한 병사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게 되지만 그 병사 역시 격렬해지는 전투 때문에 다시 전선으로 떠나야 했다. 병사 역시 그녀를 몹시 사랑했지만 자신이 떠난 뒤 그녀를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될 것이며, 자신이 떠난 뒤에는 그녀의 생활을 돌봐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그 동안 맡아 가지고 있던 열쇠를 다른 병사에게 준다.

베티의 생일을 기념해 나온 두 사람 - 창밖을 봐, 바람이 불고 있어. 하루는 북쪽에서 하루는 서쪽에서 인생이란 그런거야 우린 그 속에 있다구.

조르그 역의 장 위그 앙글라드(Jean Huges Anglade) - 그는 나중에 자신이 직접 영화를 제작 감독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베티 역의 베아트리스 달(Beatrice Dalle) - <베티블루>에 출연할 당시 22살의 이탈리아 출신 여배우였던 베아트리스 달은 베티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한 나머지 다른 영화에서도 베티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베티블루>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해 현재는 거의 활동이 없다. 그러나 다른 어떤 프랑스 영화에서도 만날 수 없었던 강렬한 여성 캐릭터의 인상을 심어주었다.

병사의 출정을 알고 있던 여인은 그 병사만큼은 자신을 다른 병사에게 넘기지 않으리라 믿었다. 왜냐하면 그 병사 역시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병사가 전선으로 떠나고, 자신의 집에 다른 병사가 찾아오자 그녀는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 그 뒤의 이야기는 자세히 기억이 나질 않지만 여인은 다른 병사를 쫓아내고 그 병사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었던 것 같다. 나중에 사선을 넘어 돌아온 병사가 신나게 야단맞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나는 '사랑'에 대해서 생각할 일이 있으면 저도 모르게 이 영화와 황석영의 단편 소설 「몰개월의 새」가 떠오른다. 그리고 나의 '바람 같은 베티'가.

『파월 장병 훈련소인 특교대 근처 갈매기집엔 미자란 여자가 있다. 미자는 내일모레, 당장 떠나는 군인이라도 그가 사람 좋게 보여지면 능동적인 애정을 보였다. 사랑을 받기보다 주려는 사람은 언제나 떳떳하고 자유롭다. 미자는 <나>에게 김밥을 싸들고 면회오기도 했고, 담배 한 갑을 주기도 한다. 병사들이 떠나는 날, 몰개월의 여자들은 트럭에 조그맣고 하얀 선물을 던진다.

"나는 승선해서 손수건에 싼 것을 풀어 보았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오뚜기 한 쌍이었다. 그 무렵에는 아직 어렸던 모양이라, 나는 그것을 남지나해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작전에 나가서야 비로소 인생에는 유치한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서울에서 두 연인들이 헤어지는 장면을 내가 깊은 연민을 가지고 소중히 간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미자는 우리들 모두를 제것으로 간직한 것이다. 몰개월의 여자들이 달마다 연출하던 이별의 연극은, 살아가는 게 얼마나 소중한가를 아는 자들의 자기 표현임을 내가 눈치챈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몰개월을 거쳐 먼 나라의 전장에서 죽어간 모든 병사들이 알고 있는 일이었다.』

(황석영의 "몰개월의 새" 중에서)

세상엔 소유할 수 없고, 공유할 수 없으므로 소중한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소유하고, 공유할 수 없으므로 사랑한다. 생떽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어린왕자와 여우, 그리고 어린왕자의 장미가 전해주는 메시지 역시 그것이다. 사랑에 신파는 없다. 그런 이유로 작가 황석영은 사랑이란 "살아가는 게 얼마나 소중한가를 아는 자들의 자기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인생과 사랑에 유치한 일이란 없다.

피할 수 없는 청춘의 덫 - 사랑

누구에게나 청춘이란 끝없는 덫 혹은 끝을 알 수 없는 터널과 같이 느낄 때가 있다. 청춘의 한 시절을 우리는 랭보의 시처럼 그렇게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일 수 있고, 또 지내고 나면 그 시절이 한없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그 당시에는 그토록 열병(熱病)처럼 우리를 괴롭혔던, 그리고 자신만이 그 지독한 열병을 앓고 있다고 착각하는 그런 순간이 있는 것이다. 내게 있어 <베티 블루>는 그런 특별한 영화이기도 하다. 아마도 <쥴 앤 짐>을 좀더 어렸을 때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그 영화 역시 내게 그런 영화로 기억될 수 있었을 것이다.

매사 감동이란 것에도 그 때와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그 정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일진저... 한때 우리나라에 지금의 비디오방 문화 혹은 노래방 문화 같은 것이 급속도로 퍼지기 직전의 짤막한 막간에 동네 극장이란 것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 극장들이 지금은 역 근처의 포르노 전용극장화해서 비디오 영화들을 한 타임에 3편씩 돌리고 있는 형태로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 당시 아마도 80년대 후반(86년 무렵 부터)부터 90년 정도까지 비디오방이 성황을 이루기 직전의 짤막한 막간에 성시를 이룬 적이 있는데, 나 같은 시네마 키드에게는 각별한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베티에게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세상은 베티의 몸에만 관심이 있었다. 처음엔 조르그조차.

제국의 변경에서 태어나 변두리 동네에서 자라난 나 같은 아웃사이더(?)들에게 지금의 명동이나 종로, 강남의 개봉관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청소년영화라는 것을 예매까지 해가면서 볼 꼴통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게다가 개봉관의 영화표는 당시 내 입장으로는 꿈도 꿀 수 없을 만큼 거금이었고, 집에는 아직 비디오 플레이어(VTR)가 없을 때였으니 영화라는 것은 TV에서 방영해주는(철지난 것들이 주종을 이루는, 정말 명화(?)들은 이 때 서너 번씩 보았을 것이다) 것들로 간신히 갈증이나 달랠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런 무렵의 <동네삼류극장>에서는 고등학생이라는 신분을 전혀 개의치 않고, - 간혹 이런 극장에서 영화보다가 정학먹는 친구들이 생기기도 했지만 - 보고 싶은 재개봉 영화들을 때에 따라서는 두 편씩, 혹은 두세 번씩 연거푸 볼 수 있는 행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베티블루>는 내게 그런 행운 중 하나였다. 아마도 당시 이 영화를 수입한 기획사는 처음부터 이 영화의 속뜻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냥 그렇고 그런 에로영화 한 편 수입해 적당한 수익만 나면 그만이란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천장지구>처럼 개봉관에서는 소리소문 없이 상영되다 사라져 버렸다. 이 영화를 다시 발굴한 것은 변두리 소극장을 찾은 가난한 문인들이었다.(베티 블루와 관련한 시가 상당하다는 점이 그것을 반증하고 있다.)나는 다만 이 영화의 포스터에 쓰인 블루가 맘에 들었기 때문에 속는 셈치고 보았었다. 원래 기대하지 않고 보면 감동도 큰 법이다.

다 불살라 버리고 나면 무엇이 남지?

누군가를 치열하게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상상 이상으로 피곤한 일이다. 누군가를 아주 오랫동안 골똘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면 알 수 있다. 그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그것은 마치 110V 전용 전구를 220V 전기에 연결해 사용하는 것과 같다. 순간 굉장히 환한 빛을 내다가 그것은 새까맣게 타 버린다.

롤랑 바르트가 『사랑의 단상』에서 말하고 있듯이 "사랑의 부재는 일방통행이다. 그것은 남아있는 사람으로부터 말할 수 있는 것이지 떠나는 사람으로부터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항상 현존하는 나는 끊임없이 부재하는 너 앞에서만 성립된다. 그러므로 부재를 말한다는 것은 곧 주체의 자리와 그 사람의 자리가 교환될 수 없음을 단번에 상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을…>."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 <베티 블루>와 <쥴 앤 짐>에서 나는 옛 사랑의 얼굴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나에게 있어 '바람같은 베티'였다. 잡을 수 없었고, 7년을 사랑했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녀의 흔적을 피하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지방의 한 도시로 이사했고, 성냥곽 같은 방 안에서 매일 다양하게 죽는 방법을 연구하고 상상했다. 개처럼 울부짖었고, 헐떡였다. 그녀를 알고 있는 모든 친구(당연히 나의 오랜 친구들이 모두 포함된다)와도 소식을 두절한 채 거의 3년여의 시간을 보냈다. 나에게 사랑이란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독소인지 깨우치게 되었던 것이다.

사랑에는 사랑이 특효약이었던지 나는 이제 '젤소미나' 같은 여자를 만나서 말 잘 듣는 잠파노가 되어 살고 있다. 그러나 사랑은 반복하면 지루해진다. 이제 두 번 다시 사랑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나의 젤소미나는 끊임없이 이 못난 사내를 의심한다.

베티의 광란은 의미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던, 그럼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한 여성의 자아찾기와 관련있다고 생각한다.

베티 블루의 줄거리는 의미가 없다?

이 글은 영화 <베티 블루>에 대한 정보를 주기 위해 쓰여진 건 아니다. 그런 건 다른 사이트들을 뒤지면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을 것이고, 동네의 웬만한 비디오 가게에는 다 갖추고 있는 컨텐츠가 되었으므로 직접 보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 영화에 대한 간략한 정보는 있어야겠기에 몇 줄 적어본다. 바닷가 방갈로를 관리하며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조르그(장 위그 앙글라드)에게 어느 날 술집 여급으로 일하며 한 두차례 섹스를 즐긴 적 있는 베티(베아트리스 달)가 무턱대고 찾아와 한 집에서 살게 된다. 베티의 좌충우돌하는 성격 탓에 방갈로 관리 일에서 조차 쫓겨난 조르그가 과거에 써둔 소설을 우연히 읽게 된 베티는 조르그의 천재성을 확신한다. 베티는 조르그의 소설을 출판하도록 하기 위해 자신이 며칠밤낮을 꼬박 새우며 타이핑을 해 여러 출판사들에 보낸다. 그러나 조르그의 소설은 번번이 출판을 거절당하고 베티는 자신의 삶이 의미없다고 느끼게 된다.

절대로 영화화될 수 없다고 했던 필립 지앙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하면서 장 자크 베네는 이 소설의 중심을 베티와 조르그의 사랑에 맞추었다고 한다. 영화의 원래 제목도 <Betty Blue>가 아니라 처음에는 <아침 37.2(Le Matin 37.2)>였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앞에 <Betty Blue>가 더 붙게 된 것이었다. 이 영화가 국내에 개봉된 것은 1986년의 일로 당시로서는 꽤나 신속하게 이루어진 것이었다. 지금처럼 영화가 직배되던 시기가 아니었으므로.

의미없는 삶. 자기존재감을 느끼며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런 자기존재감을 인생에서 중요한 덕목으로 의식하고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이 영화에는 물론 남성 중심의 여성 판타지로서의 베티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단순한 시각으로 이 영화를 보는 것은 <베티 블루>를 지나치게 과대 평가하는 일만큼 재미없는 일이다. 그렇게 평하는 몇몇 평론가들의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남성적인 판타지로 가득찬 이야기 구조를 따르다 보면 ‘베티 블루 37.2’는 캐릭터에 대한 안배가 살아있거나 작품 자체가 빼어난 경우가 아님을 간파할 수 있다."(영화평론가. 김의찬) 이 영화가 과대 평가되고 있다는 점에는 일정 부분 동의하지만 단순히 남성 판타지에 의존하고 있는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르그가 베티의 희생을 통해 행복했을 거라고 믿고 싶은건가? 조르그의 연속되는 실패와 불임으로 충격을 받고 자신의 눈을 찔러 정신병원에 감금된 베티. 어째서 당신들은 이런 베티의 이미지에서 고흐와 까미유 클로델의 이미지들은 보지 못하는가? 조르그가 정신병원에 갇힌 베티를 베게로 눌러 죽일 때 여성복장을 한 것은 단순히 범죄를 은폐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바람같은 베티, 남성 중심 사회의 장애에 가로막힌 여성들

영화 <베티 블루>는 결코 명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베티의 캐릭터 만큼은 너무나 생생하다. <베티 블루 37.2>의 베티는 프랑수아 트뤼포의 61년작 <줄 앤 짐> 이후 프랑스 영화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 캐릭터였다. 나는 이 영화 속의 '바람같은 베티'가 중요한 까닭은 여러 영화 카피들에서 볼 수 있듯 단순히 폭풍 같고 해일 같은 사랑을 꿈꿔보기 마련인 열혈 청춘이라서도 아니고, 전부가 아니면 무를 택하는 여자, 주먹으로 유리창을 깨고, 집에 불을 지르고 자신의 눈을 찌르고 미쳐버린 여자이기 때문도 아니다. 광기와 격정, 우울과 관능으로 뒤범벅인 베티는 펄펄 날뛰는 생명력 그 자체이기 때문도 아니다. 만약 이 영화가 단순히 남성 판타지에만 충실히 복무하는 영화였다면 그토록 많은 여성 관객들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가브리엘 야레 Gabriel Yared / 레바논 출신의 영화음악가 가브리엘 야레는 <그랑블루>의 에릭 세라와 함께 프랑스 영화의 새로운 조류를 반영하고 있는 작곡가이다. 그는 베이루트에서 법학을 공부하다 갑자기 브라질로 건너가 이방인으로서 방랑자 생활을 하다 다시 프랑스 파리에 안착, 파리의 한 음악학교에서 청강생으로 음악을 공부했다. 한때는 미레이유 마띠유나 실비 바르땅같은 유명 샹송가수들과 편곡자로 작업하기도 했고 한때는 광고음악을 했다. 1980년경부터 본격적인 영화 음악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누벨바그의 기수 장 뤽 고다르 감독을 거쳐 바로 장 자크 베네를 만나며 세계적인 영화음악가가 되었다. <베티 블루 37.2Le Matin>(1986) , <연인 L'amant>(1992) 등을 거치며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가 있는 영화음악가로 자리매김했다.

장 자끄 베네
Jean-Jacques Beinex / 한때 누벨이마쥬의 천재 감독처럼 국내에 소개된 장 자끄 베네. 그는 1946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약학을 전공했으나 5월 혁명에 참여하며 영화계에 입문했다. 르네 클레망, 클로드 베리, 클로드 지디와 같은 감독들과 함께 스태프로 참여하였다. 베넥스에게 가장 큰 명성을 안겨준 영화는 그의 첫 연출작이었던 <디바>였다. 느아르풍의 스릴러물 형식을 띠는 이 영화를 통해 그는 누벨바그와 사회분위기의 영향으로 점차 무거워지던 프랑스 영화의 흐름에서 그의 영화는 참신한 자극이 되었다. 하지만 <베티블루>를 정점으로 스타일과 이미지만으로 가득찬 그의 영화는 점차 내리막을 걷게 되었고, 관객과 평론가들의 외면을 당한다.

참고사이트 & 참고 도서

『시네21 영화감독사전』 / 한겨레신문사/1999년

베티블루 공식 홈페이지 - 베티블루의 국내 공식 홈페이지이다. 무삭제판 상영을 위해 준비한 페이지인데 여러 스틸 장면 이미지 등과 동영상 그리고 무엇보다 가브리엘 야레의 영화음악을 들을 수 있다. 바람구두는 특히 <그것은 바람이야, 베티 cest le vent betty>라는 곡을 좋아한다. 조르그와 베티가 피아노 가게에 앉아서 이중주로 연주하던 곡이다.(리뉴얼 중인 현재 가보니 불행히도 이 사이트는 사라지고 물품 판매 사이트로 포워딩 되고 있었다.)

영화 포스터 - 영화포스터 모으는 취미를 가진 적이 있다. 지금은 인터넷 상으로 모으는 것이 훨씬 더 손 쉽다. 베티 블루 포스터는 특히 인기가 많았다. 이 사이트는 온갖 영화들의 포스터들로 가득하다.(영문)

디지털 조선일보 - 조선일보 이동진 기자가 <베티블루 37.2>의 재개봉 당시 쓴 기사를 볼 수 있다.(조선일보다. 사본 거 아니다.)

디지털 조선일보 <졸작 열전> -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영화평론가 김의찬의 <베티블루>에 대한 글의 전문을 볼 수 있다. 참고 해보시고 여유가 된다면 다른 평론가들이 언급하고 있는 다른 졸작들도 한 번 살펴보기 바란다. 나름대로 의미있는 것들이 많다.(위와 마찬가지로 조선일보다.)

이 영화의 숨겨진 힘은 창조를 꿈꾸는 여성 캐릭터에 있고, 그것을 위해 희생하는 베티에게 노력하고 안배하는 조금은 새로운 남성 캐릭터(조르그)에 있다. 다분히 순정만화적이기도 한 이들 캐릭터를 보자. 영화평론가 김의찬은 무슨 생각에서 이 영화가 캐릭터에 대한 안배가 없다고 생각한지는 몰라도 이 영화만큼 캐릭터에 집중하고 있는 영화도 드물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단적인 예로 이 영화에 등장하는 다른 캐릭터들, 가령 방갈로의 사장이나 베티의 친구, 교통 경찰 캐릭터들을 보자. 그들의 코믹한 캐릭터는 이 영화를 휘감고 있는 무겁고 파멸적 분위기에 영화 전체가 함몰되는 것을 방지해주면서 동시에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 속의 주인공 캐릭터에 집중하도록 해준다.

우리는 예술사에 등장하는 많은 여성 예술가들의 이름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여성 예술가들의 이름이 등장한 것이 얼마나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에밀리 디킨슨 - 지금은 영미문학사의 가장 중요한 여성 시인 중 하나로 평가받지만 그녀는 살아 생전에 자신의 작품을 거의 출판해보지 못했다. 까미유 클로델 - 그녀는 살아있는 동안 내내 오귀스트 로댕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도둑맞았다고 주장했고 결국 정신병원에서 최후를 마쳐야 했다. 실비아 플라스 - 남편인 테드 휴즈는 계관시인이란 영예를 안았지만 자신은 그만큼 주목받지 못한다는 피해의식에 시달리다 끝내 자살하고 말았다. 이외에도 미처 조명되지 못하고 주목받지 못한 여성 예술가들의 비극적인 생애는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것이 더욱 많다. 이것이 단순히 여성 예술가라는 특이한 위치의 여성들에게 쏟아진 남성 중심 사회의 장애물은 아니었다. 그것은 여성 일반에게 똑같이 작용하는 장애물이었다.

영화 속 베티가 처음 조르그의 방갈로에 와서 한 말은 카페에 찾아오는 남자들이 모두 자신의 몸에만 관심있고, 자신에게 치근덕거린다는 것이었다. 베티가 그토록 조르그의 문학적 성공과 자신의 임신에 집착을 보이는 이유, 그리고 결국 자신이 임신할 수 없는 불임의 몸이란 사실을 알게 되어 히스테리 증세를 보이다가 결국 광란하게 되는 이유를 나는 알 것 같다. 그녀는 창조를 통해 이 세상에서 자기존재감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원제의 숫자 37. 2도는 여성이 가장 임신하기 쉬운 체온, 혹은 섹스를 할 때의 체온을 가리키는 말이란 것도 같은 의미이다.) 그러나 조르그도 처음엔 베티를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베티를 만난 지 1주일째다. 매일밤 우리는 섹스했다.”조르그의 회상은 그렇게 시작된다. 나는 여성 관객들이 베티를 보면서 공감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 자신 안에 내재된 폭발할 것 같은 광증과 폭력성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 앞에 가로막힌 장애들을 통과하지 못하고 결국 갈갈이 찢겨 산화하는 베티의 이미지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사랑이 지나간 뒤의 사랑은….

나와 '바람같은 베티'의 사랑은 1989년 10월 26일 시작되어 정확하게 1996년 10월 26일 끝이 났다. 그리고 그로부터 정확히 3년 몇 개월 후 나는 나의 새로운 연인과 2000년 8월 19일 서울 한 극장의 개봉 기념 상영작으로 무삭제 오리지널 디렉터스 컷으로 개봉된 영화 <베티블루 37.2 Le Matin>을 보았다. 얼마 살아보지 않은 인생이긴 하지만 인생에는 나름의 전기(轉機)란 것이 있는 모양이어서 나는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바람 같은 베티'는 내가 결혼하기 1년 쯤 전에 결혼해서 내가 결혼할 무렵엔 예쁜 딸을 낳았다고 한다. 내가 그녀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나의 결혼 청첩장을 친구들에게 전하기 위해 친구 아들 녀석의 돌잔치 행사장에 지금의 아내와 함께 방문했을 때였다. 나는 그녀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자리를 서둘러 빠져나가려고 했었다. 계단과 엘리베이터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는데 나는 그 자리를 빨리 빠져나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택했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우리 부부는 그녀와 딱 마주쳤다.

영화 속 베티를 연기한 여배우 '베아트리스 달'은 이 영화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던 나머지 이후의 영화들에서는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고, 현재는 그녀의 소식조차 잘 알 수 없게 된 데 반해서 내 주변을 바람처럼 떠돌았던 '바람 같은 베티'는 친구들을 통해서 간간이 그 소식이 들려오곤 한다. 그녀와의 이야기들이 빠져나간 내 청춘은 의미가 없다. 연극 배우를 꿈꾸었고, 라디오 성우가 되고 싶었던 '바람 같은 베티'와 나는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조르그에게 작가로서의 성공과 조르그의 인생이 있었다면 베티에겐 베티의 성공과 베티의 인생이 있었다. 영화 속 조르그가 결국 베티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면 다른 많은 연인들은 이별을 택한다. 어쩌면 영화 속 두 남녀의 인생은 그렇게 보기에 따라 각을 달리하며 현실에서 반복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감독의 디렉터스 컷 영화를 보고 난 뒤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예전 영화 혹은 비디오판 영화 편집자가 편집을 참 잘했다는 것이다. 3시간짜리 영화를 보면서 재미있는 부분이나 새롭게 알게 된 부분도 있었으나 이미지만 넘쳐날 뿐 디렉터스 컷의 이야기들은 때로 산만하고 지루하기 까지 했다. 사랑을 반복하면 어째서 지루해지는 지 그대는 혹시 아는가? 그 까닭은 동어반복이기 때문이다. 모든 연애는 과거와 같은 수순을 통해 진행된다. 나를 설명해야 하고, 이해시키고, 손목을 잡고, 키스하고, 애무하고 그리고 섹스한다.

생텍쥐페리는『사막의 도시』에서 이렇게 반문한다.

우리가 정말 사랑하고 있을까?

흘러가는 세월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한 줌의 모래처럼,
혹은 우리를 노쇠하게 만드는 어떤 것으로 보인다면 우리는 불행하다.
반대로 생각을 바꿔 흘러가는 세월이 우리를 완성시키고 있다고 여기면 큰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

운명이 바람처럼 우리 사이를 빗겨갔던 바로 그 순간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바람같은 베티'와 나의 인연은 그렇게 운명의 바람을 빗겨갔고, 우리들은 각자 새로운 사랑을 찾아 안착했다. 이미 많은 것을 지불하고 건너온 청춘. 뒤돌아보는 모든 자는 반성문을 써야한다고 어느 평론가는 말했지만 반성하지 않기 때문에 청춘이 아니더냐. <천장지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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